모닝콜 소리에 눈을 떴다. 시간을 보니 새벽 5시 이불 밖 공기가 차다. 조금만 더 자고 싶어 이불을 끌어당겼지만, 두 번째 알람이 울리기 전에 일어났다. 사과와 토마토를 다듬고 냉장고에서 그릭요거트를 꺼내서 가볍게 아침 식사했다. 스트레칭은 무리였을까? 밤새 뻣뻣하게 굳은 몸이 비명을 지른다. 폼 롤러 위에서 뒹굴뒹굴하는 모습이 마치 재주 부리는 곰 같다. 6시 5분 통근버스에 몸을 싣는다. 회사에서는 어제와 같은 오늘이 반복된다.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사람을 만났다. 달라진 건 구내식당 점심뿐. 15시 45분 퇴근 후 헬스장으로 발걸음을 옮겨 운동을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와 환기하며 청소기를 돌리고 나서야 침대에 누웠다. 넷플릭스에서 드라마 하나를 틀어 백색 소음을 만들고 ‘물을 끓여서 찜질해야 하는데….’ 생각하다가 잠이 들었다.
종일 어색한 느낌이 들었다. 해야 할 일은 다 했는데 무엇이 빠진 걸까? 곰곰이 생각했다. 스마트폰이 시계가 되었다. 카톡으로 아침에 일어났다고 안부를 전할 사람이, 오늘 점심 맛없다고 사진 찍어서 보낼 사람이, 헬스장에서 운동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전화해서 시시콜콜하게 이야기 나눌 사람이 사라졌다. ‘맞다 나 헤어졌지.’ 4년을 만났고 헤어진 지 1년쯤 되었다. 가끔 헤어짐을 인지하지 못했다. 서로 너무 바빠서 연락이 뜸하다는 생각이, 그런 느낌이 들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을 지냈다. 가끔 웃기도 하고 화도 냈다. 그런데 혼자 있을 때 내 방에 콕 박혀서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극단적으로 한쪽으로 쏠렸을 때 마음의 소리가 들렸다. ‘현수야 너 그러다가 큰일 나.’ 무작정 집 밖으로 나왔다. 도서관에 가서 손 가는 데로 책을 집어 읽고 영화, 연극, 전시전을 관람했다. 그때마다 과거에 함께 걷던 거리, 밥 먹던 식당, 손잡고 쇼핑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다음에 와서 이거 먹자고 했었지. 방 탈출 같이하자고 했었는데.’ 같은 기억이 현재와 오버랩되자, 가슴이 먹먹해지고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해준은 이런 말을 했다. ‘슬픔이 파도처럼 덮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물에 잉크가 퍼지듯 서서히 물드는 사람도 있는 거야’라고. 딱히 아픈 곳은 없는데, 마음 어딘가 구멍이 뻥 뚫린 느낌이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운전하다가 사고가 날뻔했다. 그 순간 오래전에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자기야. 몸의 아픔이나 마음의 아픔이나 같은 통증이어서 타이레놀을 먹으면 그 아픔을 잊을 수 있대.” 약국에 들어가 타이레놀을 사서 먹었다. 약 기운이 몸에 퍼지자, 거짓말처럼 통증이 사라졌다. 다만 효과가 떨어지면 아픔이 찾아왔고, 억누를 수 없을 때만 진통제를 먹으며 하루 일주일, 일 년을 버텼다.
사람이란 동물은 멍청하다. ‘아, 내가 그때 좀 더 잘할걸.’ 이별하고 나서야 내가 못 했던 것들이 그제야 보인다. 헤어지고 나서야 그 사람의 마음이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잘해주면 미련이 남지 않으리라고 생각했지만,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지나고 나면 왜 그랬는지 후회하며 배우는 게 있다. 마음 한편으로 재회도 떠올려 보지만, 너무 이기적이란 생각이 든다. 미운 기억보다 미안한 것밖에 없다. 좋은 기억은 추억으로 남기고 그 사람이 잘되기를 기도한다.
헤어짐에 저마다의 이유가 있지만 확실한 건 정말로 사랑하면 사랑한 만큼 아픈 건 어쩔 수 없다. 팀 <사랑한 만큼>이란 노래를 듣는데 가사가 너무 와닿았다. ‘좋은 사람을 만나 그대를 잊겠지만, 사랑한 만큼만 아플게요.’ 사랑했던 사람을 잃어야 얻는 게 있다. 여기에 사랑과 이별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