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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유 Feb 23. 2024

손톱에 가시가 박혔다

1부 버킷리스트

“그래서 저는 이제 모임에 탈퇴할게요.”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회원들 머릿속에서 맷돌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어색한 분위기를 만든 내가 한 번 더 말했다. 

“저번 주에 줌으로 강의를 듣자고 할 때부터 마음이 불편했어요. 감정이 정리되지 않아서 이야기하지 않았거든요. 이제 말씀드리는 거예요. 8개월 동안 행복했습니다. 더는 모임에 함께하지 못해서 아쉬워요. 그럼 들어가 보겠습니다.” 

새순이 돋는 계절에 시작했던 모임이, 잎이 떨어지는 계절에 끝났다.   

  

지역 커뮤니티에서 회원모집 공고를 보았다. 학교, 직장을 다니며 책 읽기 힘든 사람들 함께 해보자는 취지라고 했다. 이전부터 느슨한 유대의 대인관계가 필요했다. 처음 시작하는 모임이라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더욱이 또래 친구들의 필요성을 느낄 때였다. 양식에 맞춰서 신청서를 작성하고 전송을 눌렀다. 연고 없는 광주로 발령받아 10년간 일만 했다. 모든 대인관계가 끊어졌고 오롯이 혼자가 되었다. 독서 모임을 통해 통찰을 얻고 시작의 디딤돌이 될 것 같다는 희망이 생겼다.     


일요일 오후 3시에 카페에 모였다. 처음이라는 어색함은 잠시였다. 나이대가 비슷해서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독서 모임에서 첫 번째 책을 정했다. 고전소설 「데미안」이었다. 나이별로 보이는 것과 느끼는 게 달라진다는 고전 명작. 데미안의 도움으로 싱클레어가 알을 깨고 성장하는 소설이었다. 다양한 고전문학을 읽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샤롯데가 악녀인가? 그녀는 베르테르에게 여지를 주었는가로 열띤 토론을 했다. 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괴테의 변론을 보기 위해 서울 혜화역에 다녀왔다. 「싯다르타」를 읽고 열반에 오르기 위해서 그와 같은 길을 걸어야 하는지 혹은 다른 길을 통해 열반에 올라야 하는지 토론했다. 「신곡」을 읽고 나는 이탈리아어를 몰라서 원어의 아름다움을 감상하지 못하고 해석본을 읽어야 하는 애석함을 토로했다. 「파우스트」 도입부에 있는 ‘인생의 절반을 산 그때 길을 잃었다.’ 한동안 페이지를 넘기지 못했다. 「동물농장」을 읽었을 때 찰진 의인화와 당시 시대상을 그려낸 조지오웰에게 찬사의 박수를 보냈다. 새로운 통찰을 얻는 일요일 3시가 기다려졌다.    

 

가끔 독서 모임 말고 다른 활동도 했다. 소극장 연극을 보러 가거나, 방 탈출 게임을 했다. 문화 전시 공연이 있을 때 함께 관람하러 갔다. 여름에는 계곡에 평상을 빌려 고기를 구워 먹었다. 초봄 시작된 모임은 여름의 중순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처음에는 느슨한 유대를 원했는데 어느 순간 끈끈한 라포르로 바뀌어 있었다.     


“우리가 읽은 고전문학 전반에 성경이 깔려 있잖아요. 우리도 한번 읽어보는 거 어때요?” 

‘???!!’

마음속으로 화들짝 놀라 주변을 살폈다. 어느 사람도 놀란 표정이 없었다. 당연하다는 듯이 좋은 의견이라 맞장구쳤다. 그냥 따라가기에는 마음이 불편했다. 

“저도 어려서 천주교 다녔는데 성경이 해석하기 어렵잖아요. 그냥 읽으면 재미도 없고요.”

“코칭 멘토이며 심리상담가인 형이 성경을 잘 알아요. 마침 독서 모임 가입하고 싶다고 말했어요.” 

나 빼고 모든 회원이 성경 공부에 동의했다. 마음이 불편해졌다. 

‘독서 모임을 지속해야 할까?’ 

원초적인 질문이 머릿속을 채웠다. 이때 관점을 바꿔보기로 했다. 신앙심이 아니라 단순한 지적 욕구의 충족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독서 모임에서 성경 공부가 시작되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성경을 읽고 공부했다, 흥미로운 점도 있었다. 초등학생 때 배운 성경 이야기가 인과관계로 엮이는 것이 재미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성경을 읽고 공부를 지속하며 잊고 싶은 기억이 떠올랐다. 이것은 내 몸과 정신을 좀먹어 갔다. 하지만 8주만 참으면 된다고 믿었다. 내색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던 그때였다. 

“성경 공부를 조금 더 심도 있게 배워보지 않을래?” 

무료 온라인 강의를 보고 공부하자는 제안 했다. 그때 확신했다. 내가 표적이었구나. 나의 바람은 산산이 조각나버렸다. 

    

동의는 필요하지 않았다. 마음은 요동쳤고 심란해졌다. 정리하지 않은 감정을 토해내고 싶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생각을 정리하고 다음번 모임에 참가해 이야기했다. 

“지금 여름성경학교에 다니는지, 독서 모임에 참가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안식을 얻기 위해 모임에 참여했다. 그런데, 손톱에 박힌 가시처럼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우울감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발점이라 생각했다. 히키코모리처럼 회사, 집, 헬스장만 다녔다. 루틴을 벗어나 모임에 참여해 사람을 만났다. 고전문학을 읽고 서로의 의견을 나눴다. 이것을 통해 부정적인 모습에서 벗어날 기회라 생각했다. 모든 게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언제쯤 좋은 날이 올까?’

솔직히 모르겠다. 너무 어둡고 깜깜해서 앞이 보이지 않는다. 동트기 직전이 가장 어둡다고 생각해도 감흥이 없다. 이제는 너무 낡고 해졌다. 지금이 해 질 녘 아닐까? 가장 어둡다고 생각하는 이때가 가장 밝은 순간인지도 모른다. 삶은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머리로는 인정하는데 가슴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언제쯤 나는 어른이 돼서 이것을 인정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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