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 가진 얼굴들

[Diary of Japan] 일본 산골마을 다이어리 #3

by 지후


내가 지금 있는 곳은

온천으로 유명한 유후인이라는 마을이다.


관광지라 해도 마을 자체는 그리 크지 않다. 기차역에서 킨린 호수까지 상점가가 쭉 이어져 있어, 특별히 지도를 보지 않아도 앞만 보고 걷다 보면 어느새 마을을 한눈에 둘러볼 수 있다.


식당 앞에 앉아, 모두 같은 방향으로 나란히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다 보면, 깃발을 든 단체 여행객에 휩쓸려 황급히 빠져나오는 사람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여행객이 많이 온다고 해서 모두 우리 식당에 오는 것은 아니다. 상점가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골목에 있어서일까, 어딘가 사람들의 시야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듯했다.



앞으로 계속 직진만 해도 관광할 수 있는 마을 구조에서 굳이 옆길로 새는 여행객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어디를 가든 옆길로 새어가는 사람들만이 이 식당을 찾게 되는 것인지 손님 중에는 꽤나 독특한 사람들이 많았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 농사를 지어보고 싶어 땅을 알아보러 왔다는 미국 여자라던가, 열렬한 채식주의자로 벌레도 죽여서는 안 된다고 말하던 홍콩 여자처럼.


짧은 대화만으로는 단번에 이해할 수 없는 신비한 사람들이었다. 유독 사람이 적은 날이면, 우리는 손님과 함께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누가 손님이고 누가 직원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풍경이었다.



오후가 지나고 해가 서서히 질 무렵, 상점가의 가게들은 하나씩 문을 닫고 여행객들은 기차를 타고 이곳을 떠난다. 저녁이 되면 유후인은 평범한 시골 마을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사람들이 거리에 하나 둘 나타나면, 우리는 항상 저녁을 먹으러 오는 단골손님들을 기다리며 몇 가지 음식을 더 준비한다.


나는 배추 전을 부치고, 캐나다에서 온 에밀리는 엄마가 자주 만들어 주었다던 어느 중국 음식을 만들기로 했다. 류지 아저씨는 언제나 그렇듯이 가라아게(닭튀김)를 튀겼다.



매일 주방에 있다 보니 일이 손에 익어, 수다를 떨며 요리를 할 여유까지 생겼다. 배추를 썰던 나는 문득, 이 마을이 언제부터 관광지가 되었는지 궁금해졌다.


맞은편에서 닭을 튀기던 류지 아저씨에게 물었다.


“류지 아저씨는 여기가 고향인 거죠?”

“그렇지. 태어날 때부터 계속 여기서 살았지.”

“그럼 유후인이 지금처럼 관광지가 아니었을 때도 다 기억하시겠네요?”

“그럼. 온천과 논밭밖에 없는 평범한 시골이었어.

마을 안쪽에 있는 킨린 호수 있잖아, 어릴 땐 친구들이랑 수영하고 놀았지. 깊지도 않고 온천물이 섞여서 차갑지도 않아. 이제는 더러워져서 들어갈 수 없지만.”


빛이 지나간 자리처럼, 오랜 세월을 살아온 사람에게 과거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그들의 눈빛이 반짝이다가 갑자기 어두워지는 걸 느낀다. 류지 아저씨 역시 그랬다.



아무도 없던 마을, 친구들과 뛰어들었던 깨끗한 호수.

잊고 있었던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을까, 아저씨는 잠시 말이 없었다가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자, 슬슬 저녁 영업 시작해 볼까-“라고 말하며 주방을 떠났다.


식사를 마친 사람들이 “오늘도 잘 먹었어요. 좋은 밤 보내세요” 인사를 건네고 떠나면, 난장판이었던 주방을 깨끗이 정리한다. 그 사이 거리는 몇 대의 자동차만 지나갈 뿐, 마을은 순식간에 고요해진다.



모두가 잠에 들 무렵,

뒤늦게 나도 잠에 들 채비를 한다.

바로 따뜻한 온천물에 몸을 데우는 것.


집에서 걸어서 8분 남짓 떨어진 곳에, 류지 아저씨 가족이 운영하는 작은 온천이 있다. 대부분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이용하기 때문에, 온천은 거의 혼자서 즐길 수 있다.


천장이 뚫린 조그마한 노천탕. 물 위에 낙엽과 작은 벌레가 둥둥 떠다니지만,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면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게 된다.



개구리울음소리와

따뜻한 수증기 냄새,

반짝이는 하늘.


이 마을이 얼마나 변해왔는지 알 수 없더라도, 이 소리와 냄새, 하늘은 여전히 그대로일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쏟아질 듯 별로 가득한 하늘에 고개를 치켜들고 걷다가 몇 번이고 다리를 휘청였다.

언제나 그렇듯, 별을 보면 누군가가 떠오른다.


내일은 따뜻한 된장국을 끓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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