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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Book치는 책 리뷰]
살인자의 기억법

완벽한 사기

by 꿈꾸는 엽형

완벽한 사기

-살인자의 기억법-


이번 소설 역시 전적으로 작가를 보고 선택하여 읽게 됐다. '김영하' 작가님. 예전에 '알쓸신잡'이라는 즐겨보던 TV 프로그램에서 처음 알게 된 작가님이었다. 그 프로그램에서의 이미지는 매우 호감이었고, 그의 다양한 수상이력과 어우러져, 그가 쓴 글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후 '기회가 되면 읽어봐야겠다.' 생각을 했었는데, 어제 그 기회가 찾아왔다.


소설이 시작된 후 한동안은 어리둥절한 상태로 책을 읽게 된다. 책이 생소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30쪽 정도를 읽은 후 방식이 이해되는 순간, 이 책은 그 어떤 책보다도 술술 읽힌다. 책이 쉽다거나, 그런 이유에서가 아니라, 그만큼 깊게 몰입이 된다는 것이다. 보통 소설의 시점을 이야기할 때, 1인칭 주인공 시점이면 주인공에 몰입이 잘 된다고 흔히들 이야기한다. 이 책 또한 따지고 들면 1인칭 주인공 시점이겠지만, 같은 시점의 다른 소설들보다 더 주인공에 몰입하게 된다.


이러한 몰입은 주인공의 감정이 고스란히 오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 감정들은 공감할 수 없는 감정들이다. 애초에 주인공은 사이코패스라 감정이 없으니 감정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 수 도 있다. 어쨌거나 주인공의 생각을 비롯한 모든 것들이 내 앞으로 와서 그 앞에 멈춘다. 내가 주인공인 것처럼 이 아니라, 내가 주인공을 눈 앞에서 관찰하고 있는 것처럼. 이는 오히려, 내가 주인공이 된 것과 같은 기분일 때는 느끼지 못하는 신뢰감을 준다. 그렇게 한 노인을 관찰하다 보면 나는 치매 걸린 70대 노인을 누구보다 신뢰하는 사람이 되어있다.


이런 신뢰감은 예상치 못한 결말에 깨지게 된다. 결말부에 도달할 때는 이 책을 시작할 때처럼, 다시 어리둥절해진다. 오히려 시작보다 더 어리둥절해진다. 노인에 대한 깊은 신뢰감 때문에 소설 내의 진실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 후 점점 그 현실 혹은 진실을 받아들이면서 받는 느낌은 단순히 뒤통수를 맞는 느낌이 아니다. 농구공만 한 야구공이 직구로 날아와 묵직하게 뒤통수를 밀어내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 느낌으로 책을 마지막까지 읽으면, '와'라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이 책을 더 쉽게 이해하는데에는 뒤에 첨부되어있는 해설의 도움이 컸다. 내가 신뢰감에 빠져 미처 보지 못했던 복선들과, 내가 그토록 신뢰했던 그 노인에 대한 실체까지 더욱 쉽게 알 수 있었다.


저번에 읽은 '지금 이 순간'을 쓴 기욤 뮈소 작가의 책이 친구들과 룰루랄라 여행가는 재미라면, 김영하 작가의 책은 혼자 여행가서 바다를 보는 재미와 같았다. 이 말을 들으면, 혹자는 '에이 재미없겠네.'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은 꼭 한번 읽어보길 권한다. 다 읽고 난 후에는 거대한 파도가 나를 집어삼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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