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빅.. 불치병입니다
여행이 아닌 호주 살이를 하고 있는 명희 이모는 최근 골치 아픈 병에 걸렸다. 이름하여 ‘아무것도 하기 시러시러병’ ••• 이는 불치병이며 오로지 나 스스로가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꽤엑 꽤엑! 이봐 명희 이모! 오늘은 뭐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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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누워있기? “
“푸핫! 맨날 누워만 있는군! 이 게으른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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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누워있는 게 어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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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다. 누워있는 게 어때서.. 뭐 문제 될 건 없다. 다만 나 스스로가 만족스러워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패기 넘치게 호주에 왔으나 서울에서의 생활보다 더 멍하게 보내는 날이 많은 것이 함정이다.
워킹과 홀리데이의 조화가 적절하게 잘 이루어지곤 있으나 사실 시드니에서의 생활이 너무너무 너~무 편하다 보니 자꾸만 늘어지게 된다. 매일 늦잠을 자고 뒹굴 거리다 보면 하루가 지나있다.
"어휴 또 누워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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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절레절레) 명희 이모는 게으름뱅이구만. 떼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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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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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뱅이가 맞는 것 같다. 수요일마다 브런치 스토리에 올리기로 한 글도 미루다 보니 토요일에 올리게 되었다. 블로그에는 매일매일 일기를 올리고 있다만 그것도 딱히 쓸 말이 없어서(왜냐하면 별 다른 일을 안 하거든•••) 거의 비슷한 내용만 올린다. 다시 한번 더 느끼는 거지만 게으름뱅이가 맞는 것 같다.
"이봐 명희! 그래도 다시 마음 잡아야 하지 않겠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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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고개를 저으며) 아휴••• 싫음 말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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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야! 아니라니까! 아니라느뇽! 오라가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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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농장에서의 한 달은 사실 단조롭지만 늘 새로웠다. 하루하루가 퀘스트를 깨는 듯한 느낌이었다.
시드니에서의 두 달은 단조롭고 새롭지 않다. 하루하루가 그냥 살아가는 느낌이다.
물론 시드니에 와서 요리도 하고 글도 쓰고 이것저것 다양한 경험을 한 건 정말 높은 가치가 있다. 허나 요 근래 나는 즐거운 척하는 느낌이 강하다. 그래서 더 누워있는 듯하다. 누워있는 건 진짜 즐겁게 느껴지거든•••
“그래서... 계획은 뭐야 명희 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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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없어.”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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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없어요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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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은 없지만 다짐은 있다. 24년 1월 7일에 지역 이동 전까지는 게으른 생활을 즐겨보자.. 이 정도?
아니, 생각해 보니까 모두가 꼭 갓생을 살 필요는 없잖아? 사람이 쉬어가기도 하고 그래야지.. 안 그래? ‘아무것도 하기 시러시러병’은 내게 주어진 방학이라 생각할래. 사람마다 기준이 다를 뿐이지 나도 열심히 살았다고..!
"그래도 지켜보겠어, 명희 이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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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아무것도 하기 시러시러병에 걸린 명희 이모는 마음껏 누워있다가 하루를 마무리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