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인상이 좋으시네요

by 여래

약간 처진 눈매에 멋쩍은 듯 자주 웃는 얼굴. 튀지 않는 수수한 옷차림. 아주 어려운 것이 아니라면(당신이 예의를 지키는 한) 당신이 말하는 것들을 수용할 의지가 있다는 제스처와 눈빛.


차가운 말, 싫은 소리, 상대의 서늘한 시선에 대비한 방어 3종세트 쯤 된다. 방어력이 소진될때마다 부작용도 많았지만 도연에게 가장 큰 무기이자 힘이며 사회생활을 지탱해 나갈 수 있었던 방편이었다. 그로 인해 생기는 균열에 대해서 돌아볼 여유는 없었지만. 이 위험한 방어력은 차근차근 계획하고 준비해 쌓아 올린 결과물이라기보다 한대 맞고 생긴 어이없음, 두대 맞고 생긴 슬픔, 세대 맞고 생긴 화, 네대 맞고 생긴 나와의 타협의 덩어리라 보면 되겠다. 주로 맞서 대응해 볼 생각은 '머릿속으로만' 수만 번 해본 것 같다.


도연과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은 보통의 사람들은 도연에게 말한다.

"참 인상이 좋으시네요."


특히 수수한 민낯의 얼굴은 어설픈 짙은 화장보다 어려 보이게 마련이다. 참고로 도연은 만사가 귀찮아 메이크업을 거의 안한다.

" 서른아홉이요? 난 삼십 대 초반인줄 알았는데.." 나이보다 동안이라고 까지 추켜세워준다.


진심이 담긴 선의라고 담백하게 받아들이고 싶다.

찰나에도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사는 도연은 늘상 두려운 것이 곧 다가올 '마흔'의 얼굴이다. 마흔 이후 얼굴은 살아온 모습이라 했던가? 이십대에도 듣던 말이다. 수십만 번의 미세한 찡그림, 미간 찌푸림이 빚어내고, 오만가지 고민과 답없는 생각들의 파편이 얼굴 모공까지 박혀 있을 것같은 도연의 서른아홉 인상은 결코 편할리 없다. 어느 한축이 일그러져 있지만 않아도 다행이다. 내 인상은 스스로 거울치료 할 수 없다. 오직 '다른 이가 내 얼굴을 보고 느끼는' 인상만이 유효하다. 나를 보는 내 얼굴은 온갖 요소가 침입해 스스로 보는 눈마저 바꿔버리기 때문이다. 마음이 슬픈 날엔 한없이 불쌍한 내 얼굴을 보며 슬퍼하지만, 스스로 격멸하던 날엔 그만한 괴물은 어디서도 본 적 없다.


그런 도연에게 다행스럽게도 아직까지 아르바이트, 취업 면접에서 불합격해 본 적이 거의 없다. 물론 불합격한 적 있다. 하지만 이미 서류에서 탈락한 경우다. 적어도 면접까지 간 상태에서는 99.9% 합격했었다. 대놓고 인상이 마음에 든다고 말하는 화끈형, 원래 마음속으로 내정하던 이가 있었는데 더 좋은 분 같아서 마음이 바뀌었다 말하는 진솔형 등 다양하게 호감을 표하는 사업주도 많았다. 도연은 가진 재주와 능력에 비해 인상으로 먹고 들어가는 이른바 '인상파'라 할 수 있겠다.


도연은 잠깐 희망을 가져본다. 아주 찰나의 희망이다. 살아온 대로 얼굴에 드러난다는 마흔의 나의 인상도 냇가 물살에 떠내려가다 가까스로 건져 올려진 물기 가득 품은 빨랫더미쯤 되지 않을까? 이제라도 바구니에 건져담아 물도 좀 빼고, 있는 힘껏 비틀어 물기를 더 짜내고 난 뒤 건조기 힘도 빌리고 섬유유연제 덕도 좀 보면 보송해질지도 모른다. 그 확률이 얼마나 될지는 남은 구 개월에 달렸다고 생각하지만 이내 잡념이 그녀를 사로잡는다.





가끔씩 도연은 헷갈렸다. 그리고 또 생각했다. 나란 사람은 그들 앞에서 긴 세월 화려한 거짓말을 해온 것인지 아니면 나는 좋은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중간에 어떤 암초를 만나 그들을 미워하고 증오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왜 모든 생활의 끝이 실망이고 이별이고 실패여야만 했는지 묻는다. 그 집단을 떠나는 것 역시 자신의 선택이었다고 자신있게 말하기엔 더 버텨보지 않고 이내 잘라내고 떠나는 '회피'성이 곳곳에 다분하다. 그렇다고 그 상처와 마음까지 싹둑 잘라지는것은 아니기에 지저분한 마음만 남았다.


도연은 언젠가 자신에게 실망하고 말 그들이 어렵다. 특히 이제는 인상이 참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 가장 두렵다. 주로 이해관계나 종속관계가 얽힌 사업주, 파트너, 그 누구든.


"내 인상 좋게 좀 봐주세요! (그저 있는 그대로만 봐주길 )"라는 부탁을 한 적도 없다. 먼저 그녀를 좋은 인상으로 보고 말도 행동도 그런 인성을 갖춘 사람이라 평가해 둔다. 그 기준에서 몇 가지 삐그덕 거리는 균열이 발생할 때마다 첫인상과 다르다거나 실망스럽다거나 하는 말들을 서슴없이 할 테다. 특히 화끈형 사업주에게서 자주 보이는 모습이다. 그래서 여전히 도연은 인상에 집착하게 되면서도 두렵다.


물론 서른아홉 인생 전반에 있어 '인상덕', '인상복'마저 없었다면 도연은 월 백만 원 구경도 힘들었을지 모른다. 대부분의 회사나 사업주가 요하는 스펙은 거의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대학 중퇴부터 시작할 수 있겠다.


차라리 오늘 만나고 또 만나도 상관없지만 다시 만날 일 없어도 괜찮은 사람들이 훨씬 편하며 좋은 마음마저 느낀다. 마음에 담아둘 일 없지만 오고 감이 자유로운 사람들.





내면의 구멍을 들키지 않기 위해 무척이나 애를 써왔다. 먼저 선수치고 집 주변에 철옹성을 쌓는다. 돌이켜보니 도연 자신보다 부족한 사람의 능력을 더욱 돋보이게끔(더욱 낮아 보이게) 밑밥을 깔았고, 그런 혜안을 가진 나는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듯 그들을 사선의 시선으로 내려본다. 때때로 주변사람들과 결합해서. 그렇게 절벽에 매달려온 삶이 행복할리 없었을 테다. 언젠가 그 사선의 끝에 자신이 있게 될테니까. 그렇게 버텨온 9년의 삶도 지겨울 만큼 오래 버틴 거겠지.


삶의 곳곳에서 이상한 시선, 남다름을 느낀 도연은 서른 중반에 들어서며 도연은 자신이 경계성 지능 또는 성인 ADHD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수없이 해왔다. 검사하면 큰 이상이 없다는데 이상이 없다는 게 더 이상한 삶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외부에서 부족함을 들키지 않기 위해 이해보다 암기의 삶을 살았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암기과목은 90점아래로 내려가본적 없지만 수학,과학은 70점을 넘어본적이 없다.

고등학생 시절 학교에서 IQ검사를 한적이 있다. 결과를 알려주지않는 방침상 정확한 수치는 듣지 못했지만 엄마의 집요한 요청에 못이긴듯 힌트를 던지는 담임교사의 입에서 들은 것이 '두자리수'라는 것만은 알고있다. 도연을 향한 엄마의 걱정어린 표정이 그제사 스쳐지나간다.


그랬기에 늘 외우는 삶을 살았고 깊은 대화는 피해왔다. 특히 일하는데에 있어서도 이해하면 5초 걸릴일을 외워서 5분 이상 쓰는 방식으로 살았다. 차라리 그게 빠를거라 생각했다. 누군가는 1시간 고민해서 10시간 단축할 때 도연은 7시간 걸려 몸으로 떼우고 만다. 그리곤 자기위안을 한다.


'저 사람은 게으르기에 어떻게든 일 안할 생각만 하는'거라고.


도연은 늘 깊이 생각하기를 꺼려왔고 빨리 넘어가기만을 바랐다.답을 도출할 생각도 없이 모든 것에 생각이 많고 고민이 많은 도연의 방식과는 또 다른 문제 였다. 생각을 깊게 하는것과 의미없이 많이 하는 것과는 다르다.


특히 누군가와의 세네마디 대화면 까발려질 깊이 없음이 두려웠다.

곧 마흔이고 오래지 않아 오십이 된다면 이제는 자신이 살아온대로 정당성을 부여하는게 정답 아닐까? 지금 다시 '정상인'들의 궤도에 오르고 싶은 꿈은 시간낭비 아닐까? 서론아홉해를 그리 살았다면 '정상인'들의 궤도에 서기 위해 서른아홉 해를 더보내야 하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출처: Gemini






최근 시, 도를 옮겨 멀리 한적한 곳으로 이사를 한 도연은 지난 화요일 학원 면접을 보고 왔다. 여전히 유해보이는 '인상' 덕에 어렵지 않게 합격했다. 늘 그렇듯 도연보다 스펙 좋고 준비된 완성형 인재는 열트럭도 더 된다. 오직 인상덕이라 믿는 이유다.


이제 6일 후 출강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출강 전 미리 업무파악차 들렀던 첫 예비출근 후 3시간 만에 집으로 돌아와 구토 증세 및 어깨근육 쏠림, 극심한 두통을 겪었다. 한의원을 가서 온갖 친절한 설명과 최신식 장비를 갖춘 시스템 원리로 구동되는 기기들로 어깨 뒷목에 검붉은 흔적들을 남겼지만 증세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맥을 한참 짚은 한의사는 말했다.

"맷집이 너무 없으세요." 맷집이라니,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싶다. 한의사는 이어서 말한다.

"심하게 곤두서있는 신경이 문제고, 그렇다보니 자율신경계의 이상도 의심됩니다. 교감,부교감신경 균형을 잘 맞춰야 할 테고 그러려면 기력보충도 해야 하고요. 아주 작은 일에도 심적으로 기력을 과하게 소진하시기 때문에 .... "


이내 한의사의 말은 배경음으로 바뀌고 도연의 머릿속으론 오전에 학원에서 일어난 일들을 떠올려본다.


"아고, 아직 이해가 안 되셨구나? 그냥 나와요. 오늘은 밥이나 먹고 들어가게. 허허"


양손을 겨드랑이 사이에 껴고 무릎 한쪽을 짝다리 짚으며 반발쯤 다리를 내밀고 서있는 안경 쓴 이사와 다정한 말로 두세 번 설명해 주는 젊은 강사가 도연 양 옆에 서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식은땀과 긴장으로 온몸을 지배당해 버린 도연에겐 어떤 말도 들리지 않는다. 뒷목으로 쏠리는 혈류와 압이 느껴지고 금새 주눅 든 도연의 표정을 그들은 간파한다. 이내 표정이 바뀐다.


"조금 더 익혀어 오겠습니다."라며 애써 웃음 지으며 인사하는 도연을 본 그들의 표정은 더욱 굳어진다.

마침 근무가 off라 학원 앞에 도연을 데려다주고는 그 앞에서 두시간정도를 기다렸던 남편이 말한다.


"점심 먹으러 갈까? 칼국수 먹으러 가자."

"................"


"(옅은 한숨과 함께) 아니다, 집으로 가자."


집으로 가는 15분간 대화한마디 없다. 학원업무가 끝나면 함께 점심 먹기로 약속하고 온 그이지만 왜 약속을 안 지키느냐 물을 수 없다. 그냥 이게 영수와 도연의 계속된 부부 삶이자 십 년째 끊이지 않는 단절의 모습이다. 이런 도연의 모습이 영수에게 지금 당장 큰 피해를 주지는 않지만 서서히 행복이란 씨앗조차 갉아먹어 마침내 그 마음밭을 피폐하게 만들고 있음을 둘은 알고 있다. 어디부터 다시 대화하는지 방법을 둘은 잊어버렸다.


만성증상이지만 어떤 상황일 때 극심해지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남편 영수는 말한다.

"도연아, 이런 증세 겪을 정도면 너한테 일하기 어려운 곳 같은데.. 꼭 가야 할까?




이런 식이다. 좋은 인상 이면의 구멍이 드러날 때마다 도연은 온몸이 굳어지며 세상의 어느한 면이 접혀진 공포를 느끼며 한숨으로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올 것이다. 그런 도연을 긴장상태에서 맞아야 하는건 늘 그렇듯 도연의 식구들이다. 그 어떤 이유로도 아무죄가 없는 영혼들이다.




keyword
이전 02화유난하지 않은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