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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에 대한 이야기

by 여래


'스스로' 결심해서 마침내 '완주'해낸 것에 대한 이야기다.


그녀는 뒷심이 약하고 끈기가 없다. 마음의 문제이기도 한데 체력도 상당한 문제다. 이것은 도연의 얘기다. 오래 걸리더라도 끝까지 견디고 버텨가며 무언가를 해낸 성과가 거의 없다. 곰곰이 떠올려보면 있을 텐데 굳이 헤짚어 보아야만 기억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도연의 삶에 큰 영향력을 끼치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그리된 것에는 완주를 위한 시간이나 계기조차 주지 않은 채 도연이 어떤 부류의 사람인지 그녀 자신만의 속도로 정의 내려버린 이유가 크다. 또한 그녀만의 고정 레퍼토리가 4~5회 정도 반복되고 나서야 잔소리 행진이 끝이 난다. 여기서 그녀란 도연의 엄마다.


그녀의 딸을 향한 답답함과 안타까움에서 파생, 왜곡된 감정인지 모르겠으나 그때나 지금이나 도연에게 별반 도움이 안 되는 언행이었음은 분명하다. 그러는 당신은 왜 평생교육원에 비싼 돈 주고 등록한 피아노 과목을 수강하다 중도하차 했는지, 직접 본사에 전화 걸어 방문판매원을 호출까지 해가며 오래된 오성식 영어 테이프를 한 질이나 사고선 왜 중도하차 했는지 앙칼지게 따져라도 볼 텐데 그 어린 날에 도연에게 그런 깡은 없었다.


서른아홉의 도연은 흐트러지다 못해 두어 차례 갈아엎어 볼품없어지고 회생 불가해진 밭대기처럼 온갖 것이 섞여 정리할 마음조차 나지 않는 신심을 재차 다잡기 위해 108배를 했다. 근력 없는 다리 상태에 맞추어 느린 호흡으로 천천히 절을 하려니 급하디 급한 마음이 버티지 못하고, 속도를 올려서 하자니 딱 스물두 번째 절을 할 때부터 허벅지 근육이 갈라질 것 같다. 절대 그 정도 다릿짓으로 허벅지 근육이 파열될 일은 없다. 하지만 도연은 정말 근육이 파열될 것 같은 고통을 느낀다. 이내 방석대신 깔아놓은 이불 위에 걸터앉는다.

"

' 아, 내가 20년 전만 해도...'


절을 자주 하시는 스님들, 불자들에게 108배는 약간 워밍업 같은 거다. 그분들에게 108배는 8~15분에 끊는 게 일반적인데 도연은 쉬지 않고 해도 정확히 25분 걸린다. 재활치료에 가까운 속도로 절을 겨우 해낸 도연에게도 라떼 시절은 존재했다.


20년 전 열아홉 살 가을, 정확히 3,000배를 해낸 적이 있다. 확실히 기도발을 받기에는 산사 그것도 법당 내부가 아닌 야외에서 하는 게 최고라 생각하며 나이답지 않은 기도의 '영험함'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 이어 내가 지금 있는 이곳이야말로 삼각산 중턱에 자리 잡은 서울 강북에서 가장 유명한 사찰이니 여러모로 문제없다 여기며 석불전 끄트머리에 앉아 김밥 한 조각을 마저 입에 넣는다. 기도터에서 대놓고 먹을 순 없지만 머지않아 개발될 것 같은 밥대신 먹는 캡슐알약 마냥 김밥 한 알 마저 입에 넣어주지 않으면 곧 기절할 것만 같다. 그나마 중간중간 산들바람이 나를 응원하고 바위 정면에 새겨진 마애불 부처님이 눈을 커다랗게 뜨고 지켜보고 있으니 어쨌든 남은 염주알 수만큼이라도 의무감에 마저 절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만 그 이후 다시는 할 수도 하지도 않을 삼천배가 되었다. 정말이지 너무나 고되다. 보통의 마음으로는 할 수 없다. 간절한 무언가가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애초에 스스로 3,000배를 다 해낼 거라곤 생각지 않았다. 대략 1천배선에서 너무 힘들면 이만하면 됐다는 자기 위안하면서 정리하려던 마음도 있었다. 사실 1천 배만 해도 대단하지 않은가? 이 마음은 정확히 7~800배를 할 때 까지도 그러했다. 정말 신기한 건 1,000배를 넘어서 2,000배 직전까지는 자신의 다리가 아닌 게 된다. 그냥 공중에 떠있는 것처럼 다리가 가볍다. 그러다 2,000배를 넘으면 숨겨있던 통증이 다시 밀려온다. 약간 깔딱 고개 같은 거다. 그러다 2,500배를 넘으면 아까워서라도 중도하차할 수 없다. 절 3,000배에도 불자들을 조련하듯 설계한 불교의 수행법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모든 절을 마무리 할 시간대면 산사 입구까지 내려갈 셔틀버스 막차 운행시간을 한참 지난다. 따라서 30분 거리의 산길을 걸어 내려가야 한다. 30분이면 충분히 걸을 만하지만 그것은 쉬지 않고 빠르게 걸어갈 때의 이야기고 후들거리는 다리로 비탈길을 내려간다는 것은 한번 시동 걸면 꺼지지 않는 자동차와 같다. 한 발 한 발 힘줘서 걸기엔 통증이 너무 커서 그냥 중력에 몸을 맡긴 채 저절로 내려가는 것과 비슷하다. 이런 다리상태를 신심 깊은 불자, 노보살님 들은 절의 가피라고 표현했다.


그렇게 개운한 마음으로 삼천배를 마치고 집에 와서 샤워를 하기 위해 질끈하게 묶여있던 머리를 풀으려 머리끈을 손가락으로 낚아챘다.


'팅'


그 순간 노란 문구용 고무줄이 뚝 끊기며 바람 빠진 풍선이 날아가듯 어디론가 날아가버렸다. 손에서 놓친 것만이 아니라 완벽히 끊어졌음이 분명했다.


'아, X 됐다'


그때 도연은 발원하던 바가 분명히 있었다. 고3, 2학기 수시지원을 통해 가고 싶던 대학교가 있었고 이미 지원을 한상태라 결과를 기다리며 온 마음 담아 절을 했던 것이다. 그리곤 직감했다.


'아 떨어지겠다'


그깟 노란 고무줄 하나에 나의 열세시간의 노력이 헛것이 된 것만 같아 아주 께름칙했다.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한 수행으로서 절을 한 것이 아니라 기복신앙처럼 허락지 않은 소원을 부처님께 무턱대고 떼쓰듯 빌어놓고 왜 안 들어주냐고 생떼 부리는 마음과 비슷했다.


나름 도연에게도 이유는 있었다. 무턱대고 명문대 입학 같은 허왕된 꿈을 꾼 것은 아니었다. 서울 내 불교재단 대학교의 불교학과를 지원했다. 도연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불교계 신행단체에서 오랫동안 활동 해왔다. 덕분에 사찰 주지스님의 추천서까지 받았던 터라 어느 정도 기대가 컸던 것도 사실이었다. 일각에서는 대형 사찰 신도회장의 손자,손녀 대학 입학을 위해 웃돈을 얹어주고 주지스님 접견을 의뢰하기도 한다. 주지스님 추천서 악이용의 예다. 드문 사례지만 없는 일은 아니다. 이를테면 주지스님은 생판 처음 보는 불자의 자식, 손녀 추천서 작성을 직접하는 것은 고사하고 당사자 이름, 공적 사항조차 살피지 않고 사찰 종무실장 대리작성한 문서에 직인날인만 해주는 그들과 비교한다면 도연은 너무도 억울했다.


도연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아주 진지하게 출가의 꿈을 가졌었다. 이런 사연을 알게 된 지도법사 스님은 도연에게 고등학교 졸업은 필수며, 대학교까지 공부를 다 마치고 그때도 같은 마음이면 다시 생각해 보자고 하셨다. 무조건 출가를 장려하지는 않으신 현명한 스님이셨다. 불교학과를 졸업하지 않아도 출가는 가능했지만 도연 나름의 플랜대로 준비하려면 불교학과 이수는 필수적인 것이었다. 그만큼 진심이라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기도 했다.


이후 출가의 꿈은 쉬이 접히지 않았다. 그러나 그 다음해 1월 예상치 않던 벽을 만나 꺾이게 된다. 아니 완전히 태워지게 된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려 한다.



출처: Gemini

삼천배를 한 이후 다리, 배에도 알이 배겨서 웃을 때마다 멍든 것같이 배가 아팠다. 허벅지도 단단한 알이 박혔고 온전히 다 풀리기까지 약 10일 정도가 더 걸렸다. 같은 반 친구는 도연의 얼굴을 좌우로 쳐다보며 자꾸만 뭔가 이상하다 했다. 얼굴이 예뻐진 건지 하얘진 건지 모르겠지만 뭔가 바뀌었다고 말했다. 아마 절에서 이런 이야길 한다면 노보살님 들은 말했을 것이다. 이것도 부처님의 가피라고. 가피를 입어 인상이 환해 진 것이라고.


여전히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 언제든 새로운 마음을 꾀하고 싶을때마다 3천배의 계획을 세우지만 19년째 자꾸만 없던 일이 된다. 그렇게 두 번 다시 못할 것 같은 3,000배 수행은 여전히 도연의 머릿속에 무언가를 '완주'해낸 기억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듯하다.


그러부터 20년이 흘렀다. 이번만큼은 정말이지 일상곳곳에 숨쉬는 마음의 어둠을 깨부수기 위해 또 다른 완주를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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