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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마음으로 산다는 것

by 여래


"도연아."


영수는 단전에서 올라오는 깊은 음성에 힘을 살짝 덜어낸 톤으로 도연의 이름을 두어 더 부른다. 상태에서 자칫 미간 쪽 근육을 조금이라도 일그러뜨리면 영락없는 푸념, 짜증의 모습이 된다. 다만 그 선을. 넘지않는 미세한 경계를 영수는 알고 있다. 영수라는 이름만큼이나 성격마저 교과서 같다. 좋은 의미로 말이다.


영수의 방금 그 음성은 상대에게 최대한 예의를 갖추되 사실은 조금 실망했거나 속상할 때 또는 다소 격해진 감정이지만 최대한 정제하여 표현할 때 제격이다. 고함을 친다거나 짜증 가득 치받는 음성으로 말해봤자 좋을게 하나도 없음을 영수는 알고 있다. 벌써 도연과 함께 한지 십 년의 세월을 맞는다. 그 사이 터득한 것들이다. 영수에게는 도연을 변화시킨다거나 교화시키려는 불가능하면서도 건방진 목적은 일절 없다. 단지 조금이나마 자신의 마음을 살펴주길 바랄 때 그런 식으로 이름을 부른다.


'나 이렇게 널 위해 애쓰고 있어. 우리 더 힘내자. 지치지 마. 하지만 나도 너무 힘들어."





사실상 자신을 시발점으로 하여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거나 두세 번 말해도 말귀를 못 알아 들었을 때 자주 듣고 있음을 도연은 안다. "야!" 또는 "그게 무슨 말이야"라며 말 뒷꼬리를 쭉 올리며 앙칼지게 따지는 모습보다 훨씬 다정한 듯 하지만 도연을 가장 복잡한 감정에 빠져들게 하는 표현은 다름 아닌 "도연아!" 그 말 한마디다.





도연은 안 해본 검사가 없다. 아닐 거라 믿으면서도 누구보다 불신했던 도연 스스로 결정한 행동이었다. 그러기까지 수차례 결정적인 일들이 누적되어왔다.


도연은 자신이 생각해 온 '정상인'의 범주가 있다.


무엇에 대해 말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으면 하지 않는 그 당연한 행위를 실천해 내는 것, 귓속말은 때와 장소를 가려할 것, 목소리 톤을 높이지 않을 것. 이중에 도연이 몰라서 못하는 것은 한 가지도 없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 유시진 대위처럼 그 어려운걸 자꾸 해내는 사람도 있지만, 도연은 보통 그 당연한 걸 모른다거나 그 쉬운 걸 못해낸다. 그렇게 흘러가기도 참 힘들 것 같은데.


이를 테면 굉장히 작은 목소리로 말했지만 작은 목소리의 기준이 도연에게만 좀 특별하다. 도연의 '속닥속닥'으로 인해 주변이 정적에 쌓이는 형국. 또 아이들이 TV를 볼 때에도 주변 배경음 정도로 느껴지는 데시벨과 실제 또박또박 알아듣게끔 이야기하는 일반적인 데시벨 그 중간의 간극조차 미세하게 감지하며, 정확히 귀에 꽂히는 데시벨을 절대 넘지 않도록 아이들에게도 " 칸만 더 줄여줘, 두 칸만 더 줄여줘"라는 부탁을 몇 번이고 해왔다. 하지만 자신의 몸에서 내는 목소리는 얼마큼 큰지 정확히 본인만 모르고 있다.


목표라고 부르기에도 거창한 일상에서의 당연한 에티켓이자 암묵적 룰과 같은 것들이 도연에게는 조금씩 어긋나거나 과잉되는 모습으로 바뀌어 가고있다. 처음부터 어려웠던 것이 아니라, 세월이 흐르니 그렇게 변해간다.


그런 변화를 우리들은 긴 세월 동안 그저 나이 먹은 아줌마의 주책이자 '목소리만 큰 여편네'쯤으로 치부해 왔지만 그로 인한 여파를 자각하게 되면서 도연은 점차 겁이 나기 시작했다.




뇌에서 생각하는 목표값과 도연의 몸을 거쳐 도출되는 결과값이 다소 다를 때가 많아 자율신경계 문제인가 싶어 뇌파 검사를 받았다. 직장 내 스트레스가 극심했던 시기 중증도 우울에피소드, 경조증 등 진단을 받아 단기간 약도 복용했지만 시도때도 없이 쏟아지는 잠에 일상이 불가능 할 만큼 불편을 겪었다. 결국 약치료도 중단했다. 이후에도 방법을 찾다 MMPI 검사를 통해 '불안이 매우 심한 편'이라는 사실 정도를 알아냈지만 끝까지 치료를 병행할 의지가 없었다거나 그럴만한 재정적 여력이 없었던 도연은 그저 자신에게 '그런 증상적 문제가 있다는 점'만을 인지한 채 더는 손을 쓰지않고 살아가기로 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마음이 아픈 것도 돈이 많아야 치료할 수 있겠구나. 치료받는데 돈이 신경쓰이는거 보면 나는 덜 급했네.'


최근에서야 도연은 여실히 느꼈다. 이런 자신으로 인해 가장 힘든 건 도연이 아니라 그 주변사람 특히 십 년째 그런 그의 무너짐을 바라보고만 있는 영수였다. 그리고 무방비로 흡수하고 있는 두 명의 자식들. 영수는 도연을 처음 만난 순간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그때의 몸, 건강, 마음, 표정, 모든 것을 기억하는데 지금은 어느 것 하나 스스로 온전히 제어할 줄 아는 게 없어진 아내 도연을 볼 때면 자꾸만 눈물이 난다.


차라리 뭐라 속상함을 표현하거나 화라도 낼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러기엔 도연 스스로 문제점을 너무도 잘 알고 이미 심한 자기비하를 하고 있기에 그저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것 밖에 더 되지 않는다는 것을 영수는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가끔씩 영수는 도연이 너무 창피하다. 사랑하기에 귀엽게 봐줄 수 있을 정도의 민폐는 애저녁에 지난지 오래다.


그럼에도 영수는 도연을 포기할 수가 없다. 사지멀쩡하게 잘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의 엄마이자 자신의 아내다. 몸보다 정신이 건강한게 더 중요한 일인걸 안다. 영수는 도연이 얼마큼 욕심도 많고 생각도 싶고 활기찬 사람이었는지 기억한다. 할 수 있는 자신의 정성과 노력을 쏟아 가정을 일궈왔는데 점점 도연은 나락으로 내려가고 있는 기분이다. 도연을 보면 자꾸만 두 마음이 든다.


도연 역시 조금 다른 의미의 두 마음으로 살아간다. 오늘은 인생이 무기력한 사람이었다가, 내일은 모든 걸 이겨내 다시한 번 잘 살아보고 싶은 의욕과다인 사람으로. 어제와 오늘은 완전히 다른 사람인 것처럼 행동하며 기분이 태도가 되지말자던 20대 첫 회사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잊지않고 있던 자신의 결심을 누구보다 빠르게 잊어버리고 파묻어 버린채 살아가고 있다. 그런 자신에게 현타를 느끼는 순간 도연은 살고 싶지 않아진다. 특히 자신의 두 마음이 꼭 두개의 인격같이 느껴질 정도로 이질감을 느끼는 순간을 직접 목도할 때 마다 그 둘다 한 인간 같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출처: Gemini




2024년 12월 크리스마스가 되기 몇 일 전, 기가막히게 미래를 잘 맞춘다고 소문난 포항의 어느 무속인이 도연에게 말했다. 점사앱에서 탑티어로 소문난 영매사다. 생년월일을 넣자마자 지금 무슨고민을 하는지, 어떤 사람인지, 부모는 어떤지 줄줄 외던 사람이다.

"있잖아.. 우리 도연님은 두 마음이야. 근데 그게 어쩔 수 없는 거거든?우리 도연씨를 두고 양쪽에서 신싸움을 하고 있는거야. 신줄이 너무 강해서 외가쪽 친가쪽 신들이 서로 싸우다보니 도연씨가 흔들리고 있는거야. 그래서 하루에도 변덕이 죽을듯 하다는 소릴 듣는거거든..."


그리고 몇주뒤 그런줄로만 알았던 도연은 최근 무속에 심취해 일상이 흔들리기 일보 직전의 자신을 스스로 구해냈다. 구해냈다는 표현이 딱 알맞다.


스스로를 구했다고 생각하는 도연에게 이제 남은 숙제는 자신의 마음을 구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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