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고 해박한 지식과 넓고 얕은 지식 중 어떤 부류의 삶이 자신에게 더 큰 도움을 될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앉은자리에서 골똘히 생각하며 우열 가림의 끝을 내보려 한 적도 있지만 주로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마음이 다르듯 매일 변덕이 반복될 뿐이었다. 아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것처럼.
도연은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후에서야 넓고 얕은 지식이 대화의 폭을 넓혀줌은 물론 여러 업무 적응에 두루 도움이 됨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이후 관심 있는 분야의 일을 스스로 개척해 보고자 작게나마 일을 벌여보기도 했고 영상촬영이나 편집 기술을 독학하기도 했다. 주로 회사교육훈련비, 자기 계발비 명목의 지원을 받아 두루 얕은 몇 개의 관심사를 헤쳐보기도 했다.깊지않은 습득의 시간들을 보내고 그놈의 '일신상의 사유'로 회사의 문을 십 삼 년간 두 번 스스로 열고 바깥으로 나온 도연은 그제야 약간의 후회를 하게 된다.
'깔짝거리다 죽도밥도 안된다는 게 이런 거구나.'
끝을보는 끈기까지는 없고 내실도 없고 그저 이력서에 한 줄 적어내기에 좋을 말장난 정도로 결론 난 자신의 이력에 대해 속이 상한다.
십수 년간 몸에 익은 습관은 경력과 자존심이라는 무형체의 그것과 버무려져 몸을 많이 쓰는 힘들고 어려운 일은 하지 못하리라 믿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 하던일을 계속하고 싶은 타성과 더는 힘들지 않고 싶다는 바람, 나이만 먹어가 짬으로 비유되는 경력이 새로움을 붙잡고 만다.
얕은 지식과 경험만 가지고서 "아~ 그거? 나도 해보니 엄청 오래 걸리더라고. 쉬운 게 아니야." 정도의 한 번의 핑퐁으로 끝나는 대화. 그러니까 상대는 별관심 없는 나의 감상 따위를 몇 마디를 뱉어놓을 순 있지만 질문의 깊이가 한 두 걸음만 더 깊어져도 이쯤에서 제발 대화가 끝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긴 직장생활에의 끝에서 얻은 건 화병 내지 우울증과 같은 어쩐지 가볍지 않은 우중충한 것들이었지만 그런 와중에도 확실한 한 가지의 얻음은 있길 바랐다. 웬만하면 남들에게도 통용되는 객관적이고 증명화될 수 있는 그런 것들.
하지만 그런 게 없다는 사실은 도연을 힘들게 한다. 도연에게 유리할 것 같은 직장생활의 것들은 유형적이지 않은 가치에 대한 것들이 대부분이고, "제가 그 분야에 대한 일을 새로 시작하게 된 이유는..."로 시작하는 등 세 마디 이상의 부연이 필요한 것들이 더 많았다. 부디 명사형 표기 또는 간결한 한 문장으로 끝나는 것들이 남기를 바랐지만 그렇지 못한 자신의 게으름 때문이려니 한다. 사실은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다. 스스로가 너무 짜증이 난 나머지.
이른바, 껄떡대다 끝을 못 보고 마무리한 것들을 그 시작과 과정에 대해서 잘 설명하도록 하는 게 도연의 급선무이자 이력서 작성의 방법이었다. 물론 대체적으로 그 정도까지 설명이 가능해진 상황에서의 관계는 그 내용도 상대에 대한 인식도 긍정적 반응도 있긴 했다. 객관화된 자료보다는 그 간의 사실들을 긍정적으로 해석해 줄 준비가 되어있는 이들에게 도연은 더없이 좋은 사람이었지만 보통 그런 회사 또는 인사담당자가 거의 없다는 것을 도연은 안다.
도연이 주로 들어왔던 말들은 최선을 다하는 사람, 성실한 사람, 한 직장에 제법 오래 머물렀던 사람, 그래서 책임감과 끈기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사람, 눈꼬리가 처져 순해 보이는 인상을 가졌고 그렇기에 인성도 좋을 것으로 기대되는 사람 등 이다. 오히려 십삼 년의 화병의 결과가 얼굴에 오롯이 드러나게 될 나이 마흔 줄을 바라보지만 인상이 아직까지는 좋아 보일 수 있어 다행이라고 도연은 생각했다. 절대화된 수치가 없지만 그래도 그런 류의 사람이라면 일을 잘 해낼 것이라고 믿게 만드는 사람. 그것도 하나의 능력이자 매력이라 자기 위안을 해가면서.
이 모든게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이유가 10%라면 생계유지가90%다. 돈을 좇아온 삶은 아니었는데 십삼 년 직장생활 끝에 남은 건 이천 사백만 원의 빚. 그러니까 아이러니하게도 도연은 누구보다 돈을 좇아온 삶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거대 금융권에서 십 년 만기 대출을 받았을 테다. 도연은 요즘 돈 걱정에 잠을 이룰 수 없다. 풍족하지만 아끼고 사는 삶은 모든 절약적 행동들조차 재정적 여건이 충분한데도 절약까지 하는 사람으로 인식되며 스스로 자존감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자신처럼 그럴 수밖에 없어서 아껴야만 사람에겐 궁상이라고 도연은 믿는다. 그런 삶을 어린시절부터 살아와서 너무 잘 알고있다. 너무 잘 알아서 문제다. 마트에 갈때마다 스트레스를 받고 그저 안된다고만 말하는 엄마를 미워하는 두 아이들을 보며 그 물건을 사면 안된다는건지 자기 자신에게 넌안돼! 라며 절규하는건지 헷갈리는 날들이 많다.
이것저것 많은 것을 정리하고 새로이 시작하겠다며 공기 좋은 경기북부 한적한 곳으로 가족들과 이사를 온지 두달즈음 되간다. 살던 집을 전세 주고 이곳에 전세로 살게 되면서 정확히 손에 이천 사백만 원이 남았고 순리대로면 그것으로 대출빚을 갚아야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말이 성립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먹고살 돈이 없다. 이천사백 아니라 이억 사천이어도 돈이 돈을 갉아먹고 아이들 앞으로 가정경제로 들어가는 돈이 수입 없이 지출만 있는 상태에서의 소비속도는 체감도 되지 않을 만큼 쏜살같다는 걸 알고 있다. 도연의 남편이 벌어오는 돈으로는 정확히 8,000원이 남는 예산대비 지출시스템이다. 즉 마이너스나 다름없다는 말이다. 삼사백쯤은 사인식구에서 디폴트 값이다. 짜여진 예산안대로 살지않으면 안된다. 그게 얼마나 사람을 옥죄는지 도연은 누구보다 잘알고 있다.
결국 이곳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정서적 안정감을 주겠다던 다짐은 이 개월 만에 막을 내리고 도연은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한다. 그토록 좋아했던 글쓰기도 생계 앞에선 사치가 되어가고 있음을 안다. 도연에겐 아무것도 없다. 글쓰기 수업을 열어 운영하고 싶고 그렇게 하겠다며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었다. 다만, 글쓰기 공부방을 열기위해서는 개인교습소 법에 따라 대학입시 출발선에서 50m까지 달렸으나 결승선을 통과하지 못한 이에게는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방문 교육도 마찬가지다. 다시 9t 06의 세계로 진입하자니 두 아이가 여기서 더 망가지게 둘 순 없다는 생각에 쉽지 않다.
회사일은 필요이상으로 철두철미하면서 자신의 인생과 갈길이 대해 이토록 덤벙거리고 정보력도 없는 스스로에게 더는 놀랍지도 않다.
요며칠, 도움은 일절 주지 않으면서 아이옆엔 엄마가 있어야 하며 하교 후 집에 와 아빠가 없는 것은 문제가 안되지만 엄마가 없는 것은 문제가 될 것이라는 뉘앙스로 일장 연설을 해대는 도연의 시아버지로 인해 뒷골이 뻐근하다. 며느리가 돈을 벌겠다고, 그래서 자신의 아들도 덜 고생하고 마음의 짐도 조금 가볍게 덜어주겠다는데 이렇게까지 아이들 정서 운운하는 시아버지가 별로 달갑지 않다. 시아버지의 제일 어이없는 포인트는 그런 걸 도연은 몰랐을 거라 생각한 다는 점, 내게는 그런 고민이 없었을 거라 단정 짓는 점들이 도연의 마음을 더욱 어지럽게 만든다. 그런 이야기들을 도연없이 아니, 도연이 아이들과 있는 바로 옆방에서 문은 조금 열어둔채로 아들과 부모 이렇게 셋이만 이야기 한다는 것들. 속닥속닥하는 소리는 들리리지만 전체적 분위기는 모르기에 들리는 단어 문장 조합해 알아듣고 서운해하니, 그런 의미는 절대 아니라고 하면서도 그래서 대체 무슨 뜻이었는지는 설명하지 못하는 남편.
도연은 그런 시아버지의 모멸감 서린 눈빛이 싫다. 무시받으면 받는대로 참아왔고, 뒷담화를 하더라도 남편 그 이외의 사람에게 한 적 없다. 그래놓고도 남편에게 늘 미안해했고 화가나도 겉으론 웃으며 늘 대접해드리려 노력했지만 도연은 어른들과 함께있는 그 몇일이 지옥같다. 그런 서운함을 내비치기라도 하면 "나도 말을 안해서 그렇지..."로 시작하며 더 잔인한 잔소리들을 해댈것이 그려진다. '그저 이틀만 더참으면 되지' 라고 도연은 생각한다.
한 집에 여섯명이 몇일째 살고 있는 오늘, 겹칩을 몇일 앞둔 봄이지만 도연은 집안공기가 서늘하게만 느껴진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려고 해도 아무 여건이 허락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다시 직장인의 세계로 돌아가려 하는데 일절 도움 안 되는 연설만 늘어놓으며 흔들리는 마음을 더욱 갈기갈기 찢어놓는 사람 속에서 도연은 허우적거리고 있다. 그 흔한 설거지, 서빙 알바조차 자신이 제출한 이력서에는 답변이 없다.
적은 돈일지라도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늘리며 죄책감을 덜려한 파트타임 알바자리 역시 직장생활 십삼 년의 이력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시 회사생활로 돌아가려니 도연의 실력은 변함이 없음에도 사회적 암묵적 룰에 따라 월급여와 예상연봉은 점점 하락한다. 스마트폰 스크롤을 맨 아래까지 내려다 보게된다. 그마저도 어서 오라며 반기지도 않는다.
겨우 찾은 일자리에서 안 맞는 몇 가지 조건들을 어떻게든 남편과 함께 이겨내보려 하지만 손주들의 입학과 새 학기를 축하해 준다며 5개월 만에 집에 들러서는 도연의 귓가에 들릴 듯 말 듯 옆방에서 소곤소곤하는 "엄마에의 자격"에 대해 운운하는 말이 도연을 더욱 무너지게 만든다.
도연은 엄마로서도 아내로서도 며느리로서도 직장에서도 뭐 하나 확실한 것이 없는 어설픈 인간일 뿐이란 사실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