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량 보존법칙과 로기완
'고통스러운 순간을 견디는 마법의 주문!'
이 나에겐 있다.
치트키.
삶이 게임 같을 수 있다면 죽지 않고 게임을 계속할 수 있게 해주는 만능 키.
2025년 10월. '창밖은여름' 글쓰기 모임이 끝나고 교육실습(유치원)을 앞둔 사이의 시간.
봄의 보육실습(어린이집)이 내겐 너무 힘겨웠던 경험 때문에 실습이 시작되면 내 하루가 어떻게 될지 예상이 되었다. 다른 무언가를 하려면 그전에 하나라도 해두어야 했다. 왜 이런 주제가 생각났는지 모르겠지만, 제목을 정하고 머릿속에 이야기를 굴리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쓰지 못하고 실습에 돌입했고, 주중의 피곤함을 달래던 주말 우연히 기사 하나가 눈에 박혔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저자 백세희씨, 뇌사 장기기증으로 5명에 새 삶‘
?!...
"... ... 나는 살아있는데?"
뭐라 말할 수 없는,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흔한 추모의 댓글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 어떤 기분.
간신히 버티다가 '운 좋게' 서울에 근무하게 되었고, 살기 위해 먼저 찾은 (사내)도서관에서 제목만 보고 제일 먼저 집어든 책. 그렇게 날 위로한 책. 나의 첫 떡볶이 책. 내가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책.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나를 지탱해 주었던 작가의 부고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내 주문처럼 다가온 '행운'이었는데.
그런 작가의 죽음을 만난 순간... 어떤 표현이 가능할까? 뭐라고? 왜? 아니 그런 질문도 아니었던 것 같아.
그냥 마음의 정적? 다른 유명인이나 존경하는 인물의 죽음과는 당연히 다른, 하지만 그런 슬픔과도 다른.
여러 가지 감정과 의문들이 떠올랐지만, 그 이상의 기사를 찾아보지는 않았다. 대신 마음속 인사와 함께 스스로를 견디어내게 해 주었던 나의 치트키를... 다시 떠올렸다.
어릴 적 (어머니의 표현으로) 사춘기 없던 사춘기, 법적으로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던 시절. 나라고 힘든 일이 없었겠나 -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맞다. 별로 힘들지 않았어. 그 정도면 정말 평온하게 어른의 나이가 된 거지 - 소심하고 조용했던 나에겐 스스로 견딜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과학자를 꿈꾸던 나는 고통을 견디는 나만의 법칙을 만들었다. '행운량 보존 법칙'
사소한 실패들에서부터 고통이란 단어가 떠오르는 경험들까지.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행운량 보존 법칙에 따라 내 행운이 쌓여가고 있는 거야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게다가 좋아하던 <에스카플로네>라는 애니메이션에서도 행운(운명)이 중요한 소재였는데 주인공의 거대한 상대 악역이 바로 뉴턴이었다. 사과나무 아래의 바로 그 아이작 뉴턴! 운명 같은 만남이 나의 법칙에 힘을 실었다.
이런 생각을 나만 하는 건 아니구나. 어쩌면 이 법칙은 진실일지도 몰라.
그렇게 좋은 일, 행복한 순간들이 오면
'거봐, 내 말이 맞잖아. 오늘을 위해 그날들이 있었던 거야'라며 이를 증명했다
그렇게 '행운량 보존 법칙'은 오랫동안 날 지탱해 줬다.
몸과 마음의 상처, 만남과 헤어짐, 실패와 좌절. 그 순간에는 정말 힘들고 눈물이 쏟아지더라도 거기에 잠식당하는 기간은 오래지 않았다.
그러던 나의 만능 키는 언젠가부터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사회의, 인생의, 고통과 행복의 경험이 쌓여가면서 행운량 보존 법칙은 마음의 소품 같은 것이 되어갔다.
생각해 보면 그건 법칙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데.
세상에는 그런 불운의 반작용이 일어나기도 전에 사라지고 잊히는 사람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잖아.
그런 것에 의지하지 않을 정도의 '어른'이 된 것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겠으나
아니다. 그걸로는 부족했지만 나름대로 발버둥 치며 버텨온 것이지.
아이를 볼 수 없게 되면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불행을 맞닥뜨리게 되면서,
도대체 이 불운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어떤 행운이 기다리고 있다는 거지?
그런 행운이 존재하기는 해?
그렇게 법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을 통과하면서 '행운량 보존 법칙'은 그냥 이름뿐인 과거의 추억으로 남겨져 갔다.
그러다가 법칙이 작동한 걸까? 견디어 냈기에(지금 내가 여기 있다는) 볼 수 있었던 걸까?
새로운 치트키를 만났다.
<로기완을 만났다>
그래, 그때도 여름이었어.
동네 도서관의 독서모임 프로그램이었다. 여느 기획과는 다르게 이건 도서관에서 장소만 제공하고, 운영은 스스로 하는 모임이었다. OT에 참석은 못했지만, 단톡방에서 책이나 영화 관련 소식을 조금 공유했던 '적극적(?!)'인 회원으로 보셔서 그랬는지 사서님이 모임 이끄미를 해줄 수 있겠냐고 연락을 주셨다. 이것도 경험이랄까, 뭐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해보겠다고 했다. 그렇게 첫 책(<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모임에서 서로 소개를 하면서 나의 상황을 공유하고 리플릿을 전달하며 시작했다. 우리끼리 이야기를 하며 함께 읽을 책을 정했고, 여름의 마지막 8월 모임 책은 <로기완을 만났다>였다.
로기완을 찾아 나서는 이유나 이야기의 한 줄기, 한 줄기. 나에게는 각각이 하나의 큰 강으로 다가왔다. 그중 내 뇌리에 가장 깊숙이 박힌 이야기는 의사 '박'의 죄책감이었다. 그 아내의 선택을 조력했던 박의 이야기가 나에겐 힘을 주었다. <소년이 온다>나 <사람이 사는 미술관> 등에서 인류의 잔인함을 마주하면서 나는 과연? 나는 그럴 수 있을까?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나는 추락의 몇 초, 찰나의 고통조차 두려워 상상밖에 하지 못하는데, 작은 상처에도 '아프다'는 느낌을 생생하게 느끼는 나에게.
고통을 견디는 방법. 동면을 취하듯 모든 것을 멈추고 잠이 드는 것.
박선생님, 이제 그만해도 됩니다.
난 이제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 선택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편해졌다.
무슨 일이 닥치든, 부딪히고 깨져도, 정말로 '상처'입더라도
내 마음대로 게임을 종료할 수 있으니까.
그렇기에 오히려 두려움은 줄어들고, 용기는 더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이제 무적이니까요. 저에겐 삶의 치트키가 있어요.
※ 더하는 이야기
2025년 12월 18일 @책읽는고양이
<초록을 지닌 채 우리는> 이주영 작가님의 북토크가 있었다.
복직을 앞두고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처럼 매일같이 북토크나 책모임, 글방 등의 일정을 잡는 바람에 책을 다 읽지 못했다. 그나마 8개의 단편 중 세 번째 단편 '이터널 선샤인'을 읽고 있었다. 내 취향인데?! 그러면서 <로기완을 만났다>가 떠올랐다.
내 인생의 치트키를 가져다준 책
그런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작가님이 수록 작품들 중에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꼽으라면 '이터널 선샤인'과 '북해서가'라고 하셨다. 왠지 모를 반가움과 친숙함. 그런데 또 내게 운명 같은 느낌을 주는 일. 북토크에 조해진 선생님이 계신데 자신의 선생님이라고 하셨다. 바로 내 앞에 앉아 계신 분!
바로 <로기완을 만났다>의 작가님!
끝나고 예상대로(작가님의 지인분들이 많이 오셨어서) 뒤풀이가 있었고,
매우 많이 많이 함께 하고 싶었지만, 지인 모임에 너무 생뚱맞잖아. 그동안 내가 너무 눈치 없이 끼어든 것 같기도 하고 마감이 코앞인 글도 있어서 그냥 뒷정리를 조금 도와드리고 조선희 작가님께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그래도 이주영 작가님이나 조선희 작가님이 놀다 가라고 하셨으면 아마 눈치도 없이 날름 '네, 감사합니다!'를 시전 했을 거다. 아, 작품을 읽으면서 왠지 리플릿을 전달해드리고 싶은 분이었는데... 그래도 이주영 작가님은 책읽는고양이에서 조만간 다시 뵐 수 있을 것 같으니... 요새는 작가님들께 무작정 리플릿을 드리는 것도 조금씩 주저하게 된다. 민폐... 오히려 너무 많은 북토크나 작가님들과의 만남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걸까? 삶의 치트키가 생겼는데 주저하다니... 아직 멀었다.
https://www.bbc.com/korean/articles/cj419gp9yrvo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475687.html
@창밖은겨울
#로기완 #에세이 #삶 #죽고싶지만떡볶이는먹고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