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악어 여경 Mar 24. 2022

최종면접, "공무원은 대체 왜 관두셨어요?"

공무원 퇴사의 숨겨진 이유를 깨닫다

앞부분에 대한 수정이 이루어져, 1,2탄으로 나뉜 것이 하나로 합쳐졌습니다.

직전 편을 읽으신 분들은 중복된 내용이 있을 수 있음을 미리 양해 구합니다.







“그런데 공무원을 왜 관두셨어요?”



면접 준비 시 경력사항을 정리하면서 가장 예상 가능한 질문이면서 가장 걱정했던 질문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인내심이 없는 인상을 주어 이직해서도 오래 버티지 않을 것 같다는 이미지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답변에 대해 사전에 많은 고민을 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답변을 해야 할까. 외국에 나가서 살려했다는 말부터 주저리주저리 꺼내야 할까, 코로나 시대를 살아내기엔 프리랜서의 삶이 아직은 팍팍했다고 표현해야 할까 아니면 '역시 나와 보니 밖은 춥더라 나랏밥 먹는 게 최고더라'라고 마음에도 없는 거짓 아첨을 해야 할까.







_


_


면접 날 아침. 눈을 뜨고 숙소 창문 너머로 보이는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두 마음이 공존했다. '빨리 끝나버리면 좋겠다.' 아니 '면접 시간이 안 오면 좋겠다. 피하고 싶다.'

하지만 부딪혀야 한다. 어제 그렇게 아팠던 몸도 약을 먹고 푹 자서인지 괜찮아졌다. 핑계 대거나 도망갈 명분도 없다.   


첫 이미지는 언제나 중요하다. 코로나로 인해 마스크를 쓴 상태라 얼굴의 반절이 가려진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일단 '눈'이 관건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눈으로 웃는 표정 연습'에 공을 많이 들였다. 그럼에도 작은 눈은 그 짧은 시간 내에 키울 수 없어서(물론 나는 쌍꺼풀 없는 내 눈을 사랑한다) 아침에 피 같은 돈을 내고 면접 메이크업을 받았다. 조금이라도 크고 또렷하게 보이려는 발버둥이었다. 면접 들어가기 10분 전 화장실에서 마지막으로 거울을 보며 눈웃음 연습을 했다. 면접 준비를 하며 거울을 보고 꾸준히 연습한 게 효과가 있는지, 처음보다는 많이 나아진 것 같아 뿌듯했다.


내가 받은 번호가 5번이었고 총 다섯 명이었기에, 상대적으로 가장자리에 앉아 불리한 위치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코로나로 지원자들과 면접관들 각각 거리를 많이 띄어놓아 시선을 주기 어려운 자리에 앉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분위기를 풀어주기 위해 건넨 질문 하나하나에도 얼버무리지 않고 또렷하게 대답하여 좋은 인상을 주자고 마음먹었다.



“만나서 반가워요. 오후 면접이라 오래 기다렸죠? 점심은 든든히 먹고 왔나요?”



면접장에 막 들어가 어수선하고 긴장감이 흐르는 순간, 가운데 면접관이 웃으며 질문을 던졌다. 나는 곧바로 “네. 맛있게 먹었습니다.”라고 미소 띠며 큰 소리로 대답했다. 그제야 가운데 면접관님이 처음으로 내 쪽으로 시선을 주었고 살짝 웃으셨다.



'잘 들어. 면접 시작되면 가운데 앉아있는 사람이 제일 중요해. 그 사람이 주요 결정권을 갖고 있다는 썰이 있어.'



일단은 안심이었다. 면접 내내 미소 띤 자세를 유지하되 내가 답변을 할 차례에는 질문한 면접관과 눈을 마주치고 진지한 표정으로 입사에 대한 간절함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반면 다른 지원자들의 답변 차례에는 그들이 말하는 내용을 듣는 자세를 취하고자 상체를 약간 돌려 고개를 중간중간 끄덕거렸다. 계속 미소만 짓지 않고 다른 지원자들의 답변에 귀를 기울이다가, 실패나 슬픈 경험담 등을 이야기할 때는 진지한 표정을 취하는 등 전반적인 흐름에 몰입하고자 노력했다.


나는 사기업과의 면접과 공기업 면접은 철저하게 포인트를 다르게 잡아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혼자 답변 잘하고 잘난 척한다고 붙는 것이 아니라 '조화로움'을 중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면접 준비를 할 때도, 다른 면접 지원자들과 어떤 식으로 비언어적인 소통을 하는 지도 눈여겨 본다고 했다. 영업처럼 구성원들의 경쟁을 통해 시너지를 내는 직군도 분명 있지만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쪽은 서로의 업무성과를 가늠하기가 사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쉽지 않다. 2-3년마다 근무지가 바뀌기에 오히려 내가 혁신이랍시고 내 마음대로 업무내용에 변화를 주면 후임자가 곤란해질 수 있다. 그래서였을까. 면접 질문 중에도 창의성을 요하는 것보다는 청렴, 공정이나 도덕, 고객지향 마인드 등에 관한 내용이 많았다.


조원들 중에 몇 명이 함께 붙을지 알 수 없으나 한 가지 확실한 건 전반적인 분위기가 좋지 않으면 다 같이 떨어진다는 거다. (실례로 다른 조 중에서 전체 다 떨어진 경우도 접할 수 있었다.) 특히 개인 pt나 토론이 아닌 토의면접에 가중치를 두는 기업의 경우 입사했을 때 내부고객인 직원들과 잘 어우러져 일하는 지도 채점 항목으로 보는 경우가 있다.




첫 번째 질문은 자기소개였다.




1. 자기소개

1번 지원자부터 시작했다. 애초에 1분 자기소개를 준비했으나 5번인 내가 마지막 순서라 지루해질 거 같아, 중간에 한 줄 빼고 짧게 했다. 자기소개의 내용을 30초, 40초, 1분으로 다양하게 준비해 연습했다. 어떤 식으로 나와도 당황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첫 문장에 임팩트를 주어 뒤 내용에 궁금증을 유발할 수 있게 하는 데 특별히 신경을 썼다. 이는 프리랜서 활동할 때 강연을 했던 경험이 도움이 되었다. 청중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처음에 집중하게 하는 힘이 중요하다. 프레젠테이션을 위한 첫 장을 어떻게 구성하는지도 중요하다. 계속 자리에 앉아 몇십 명의 지원자들이 하는 비슷한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얼마나 지겹겠는가.  회사를 위해 일할 사람을 뽑는 것이지만 일단은 '나라는 인간'에 대해 관심이 가야 다음 이야기도 듣고 싶어질 것이다.  



2. 지원동기

자기소개와 지원동기는 가장 흔한 예상 질문이면서도 가장 치열하게 고민하고 준비해야 할 항목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지원자들은 기출 되었던 예상 질문들을 최대한 많이 모으고 일일이 답을 달아 준비하는 것에 혈안이 되어 중요한 질문에 더 집중하는 것을 잊기도 한다. 내가 경계한 게 바로 그 점이다. 질문에도 배점이 큰 게 있고 작은 게 있을 터. 제한된 시간을 가진 면접 특성상 중요한 질문들은 앞쪽에 포진되기 마련. 첫인상이 3초면 판가름 나듯 나의 강점을 초반 질문들에 답변으로 녹여내는 게 관건 이리라.


예상대로 지원동기는 첫 질문과 반대로 5번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홈페이지를 뒤지고 온라인 기업 자료 스터디 모임을 통해, 그 기업의 핵심사업들과 향후 주력사업들을 미리 확인했고 그중 참여하고 싶은 사업이 있어 지원하게 되었다는 식으로 말했다. 그리고 이 사업을 위해 내가 쌓아 온 경험들을 나열했다. 나름 막히지 않고 잘 대답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 내가 예상했지만 피하고 싶었던 질문이 결국 던져졌다.   




"공무원을 몇 년 하고 관뒀어요?"

- 네. 3년 차에 퇴사했습니다.


그때 다른 면접관이 고개를 오른쪽으로 갸웃하며 말했다.


“그런데 왜 관두셨어요?”



가슴이 두근거렸다. 필기 합격 이후부터 매일 연습했던 눈웃음도 순간 사라졌다. 아마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내 합격 당락을 크게 좌우하리라,

그런 직감이 들었다.



**



퇴사 후 수십 번은 들어온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해가 거듭되고 곱씹을수록 조금씩 바뀐다. 신기할 정도로.

나 자신에 대해 더 깊이 알아갈수록, 냉정하고 솔직해질수록.



'저는 외국에 나가서 살 거예요.' 그 당시 퇴사의 표면적인 이유였다.

실제로 인사계에서도 그렇게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엔 공무원이라는 직업이 나와 맞지 않다는 남모를 어려움이 있었다.

이 역시 인사계에서 예상했을 것이다. 예상했으니 따로 불러 퇴사를 말리며 부서를 옮겨주겠다고 했으리라. 직장 동료들에게 그리고 친구들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괴로움이 있었다.

(이건 내 유튜브 채널 여경 랜드에서 언급했기에 생략한다)



난 도망쳤다. '지금의 나'가 전혀 행복하지 않으니 '미래의 나'도 행복할리 없다는 게 결론이었다.





대한민국에서 그래도 나쁘지 않은 직업이 공무원인데

나는 그것조차 버티지 못하는 사람이니 외국에 나가야겠다는 (지금 돌아보면 외국살이에 대한 어려움을 1도 모르기에 할 수 있는) 이분법적 생각을 했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 사이로 숨고 싶은 마음도 강했다.



아무리 말로 듣고 간접경험을 해도,

겪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땐 진정한 나를 찾고 자아를 실현한다는 게 단순히 직업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고 여겼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세상에 완벽하게 나랑 맞는 직업은 없다. 머리로는 안다. 아마 20대 때도 머리로는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럼에도 불고하고 <퍼즐을 맞추듯 나에게 완벽히 맞는 직업>을 찾고 그 일을 하면 행복해질 거라 생각했다.


한 번뿐인 인생,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덜 고통스럽지 않을까 싶었다. 실제로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하고 사는 건 즐거웠다. 하지만 그 이면에 포기해야 할 것들도 있었다. 재능이 실력과 성공으로 꽃 피우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이라는 자양분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 어느 한 분야에서 10년만 올인하면 전문가가 된다고 하지 않던가. 하지만 세상에서 당장 환영받지 못하는 일들일 경우(특히 예술 분야) 그 사이에 경제적인 뒷받침이나 사회적 시선을 이겨내는 무심함도 필요할 거다. 특히 결혼을 앞두거나 가족 중 아픈 사람이 있을 때, 현실적인 이유로 많은 이들이 자신의 이상을 포기하기도 한다.   





**


**


그날의 면접 이야기로 돌아와서 나는 면접관에게 공무원 퇴사 이유와 이후과정을 전부 다 솔직하게 말하지는 못했다. 아마 면접의 정석에 맞게 제한된 시간, 매우 짧게  줄로 설명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곳에 입사하고 싶어서입니다."

"여기에 입사하기 위해 공무원을 퇴사하고 나서, 중소기업으로 옮겨 경력을 쌓았다는 뜻인가요?"


짧은 침묵이 흐르고

나를 주시하는 면접관의 눈과 그의 눈빛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려는 내 눈이 교차한다.

여기서 눈을 피하면 안 된다. 모호하고 꺼림칙한 태도는 고스란히 면접관에게 전달된다.



"네 그렇습니다."

아니, 사실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은

"네 그런가 봅니다. 흘러 흘러 저는 결국 이곳에 오게 되었습니다." 였지만.



면접관이 이 말을 믿어주었는지 아니면 다른 면접 답변들이 마음에 들어 그러려니 한 것인지 당사자인 나는 알 수 없다. 면접 점수나 뽑힌 이유를 설명해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아예 틀린 말은 아니다. 돌고 돌아 나는 이곳에 있으니까. 자기소개서에 썼던 내용과 면접장에서 했던 많은 발언들이 결국 공무원 퇴사 이후 쌓은 경력이나 경험 사항들 속에서 뽑아낸 것들이니까.


하지만 전체 인생을 놓고 볼 때 여기 입사하고 일하면서 겪는 일들도 모두 지나가는 과정일 뿐이다. 내가 이 최종 면접장에 있는 건 남편의 폐업이자 실직이라는 큰 위기에서 출발했지만, 세상엔 우연을 가장한 필연들이 얼마나 많은가. 프리랜서의 삶이 팍팍해서 중소기업에서 힘겹게 버텼지만 결국엔 그 경력이 기반이 되어 최종 면접장에서 쓰였으니 이것 또한 신기한 일이 아닌가.


살면서 만나는 수많은 인연들, 그리고 경험들을

그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대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이전 09화 최종면접 D-1, 나약한 멘탈을 간신히 부여잡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