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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악어 여경 Mar 24. 2022

대통령이 슈퍼카를 타고 나온 꿈은 로또 당첨이 아니었다

최종 합격, 그리고 그 후 변화된 생각들

면접이 끝나고 레스토랑에 가서 그동안의 고생을 위로하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

끝났다. 하지만 안도감도 잠시. 그날 밤을 꼴딱 새우고 말았다.


'아 그 질문에는 이렇게 답할걸.'

'거기서 그런 말은 하지 말걸.'

'왜 바보같이 그때 버벅거렸을까.'


막상 자려고 누우니 면접 때의 일들이 끊임없이 복기되면서 정신이 또렷해졌다.

도무지 잠이 오지를 않았다. 평소 불면증이 있어 깊게 잘 못 자긴 하지만 이 날은 한숨도 자지 못한 채

어둠 속에서 눈을 말똥 말똥거리면서 천장만 바라보다가 아침을 맞았다.



"뭐야 한숨도 안 잤어?"



남편은 자다가 이상한 기운이 느껴져 눈을 떴는데

바로 옆에서 내가 그 어느 때보다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어 소스라치게 놀랐다고 한다.

"응. 잠이 안 와."




그 이후 결과 발표를 기다리는 시간은 너무 더디게 흘러갔다.

틈틈이 가까운 곳으로 여행도 가고 친구들도 만났다.

사실 잊는 것은 그때 잠깐뿐, 집에 돌아와 혼자 있으면 다시 면접 때가 생각났다.


취업 커뮤니티에는 면접장에서의 일들을 복기하면서 후회를 하거나 빨리 발표가 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글로 가득했다. 이전의 면접 합격후기를 모조리 찾아 읽으면서 실수한 건 없는지 아무리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본데도, 합격자조차 정확히 무엇 때문에 합격했는지는 짐작만 할 뿐이기에,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자신이 답변을 술술 잘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오히려 떨어지기도 하고,

망했다고 생각하며 다음을 위해 필기 준비를 다시 하던 사람들이 붙기도 한다.  



**



합격자 발표를 앞둔 일주일 전. 꿈에 대통령이 나왔다. 곧 임기를 마치는 그분은

군중 속에서  연설을 한 뒤 레드카펫 위에서 슈퍼카를 타고 홀연히 사라졌다.

꿈에 대통령이 나온 적이 처음이었다.

당시 신혼이었던 나는 "혹시 태몽인가? 아직 안 되는데."라는 순진한 걱정을 했다.

그리고 인터넷에 검색을 했다. 대통령이 나오는 꿈과 슈퍼카가 나오는 꿈 둘 다 엄청난 길몽이라 한다. 에이. 주변에 말을 하니 호들갑이다.


"대통령이 나오거나 슈퍼카가 나오거나, 그 하나만 꿈에 나와도 대박 꿈이잖아. 두 개가 같이 나왔으니 엄청난 꿈인데?"


심지어 꿈을 팔라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과연 뭘 했을까?

그렇다. 평소에는 지나가면서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던 로또 명당 가게에 가서 로또를 샀다. 사람 마음이 어찌 간사한지 좋은 꿈이라고 하니 당장 로또를 사면 될 거 같기도 했다. 로또 당첨된 사람들이 그렇게 허망하게 망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으면서.





"대통령이 나왔으니 공직에서 다시 일하게 될 꿈 아닐까?"

"글쎄. 그럼 슈퍼카는 뭔데."





남편은 로또를 사러가는 내게 장난식으로 물었다.

"로또가 당첨되면 좋겠어? 아님 최종 합격했으면 좋겠어?"

"음...... 당연히 최종 합격이......"라고 말은 했지만,

말끝을 흐린 나는 '역시 그래도 돈 많은 백수가 최고 아니겠어?'라는 속마음을 읽히고 말았다.





일주일 후.

예상대로 로또는 되지 않았다. 5000원도 안 되었다.

나는 그날 이후 로또나 복권의 행운에 대한 기대는 완전히 버렸다.  





일주일 그리고 이틀이 더 흘렀다. 합격자 발표 날 아침. 합격 여부를 확인하라는 문자를 받고 조용히 방으로 가서 컴퓨터를 켰다. 내 수험번호를 입력하고 비밀번호를 입력한 후 엔터를 쳤는데, 화면이 바뀌었지만 차마 무서워서 볼 수가 없었다. 손바닥으로 일단 합격 여부가 적힌 부분을 가리고 새끼손가락부터 천천히 들어 올려 확인했다.



!!!!!!!



합격이었다.

눈물이 났다. 안 울 줄 알았는데. 서류부터 필기, 면접까지 몇 달간에 걸쳐 이어진 피 말리는 시간들이 스치면서 눈물이 펑펑 쏟아져 나왔다. 그냥 연신 감사하다고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


**



그로부터 1년 후. 나는 무탈하게 잘 지내고 있다.  

무사히 임용식을 마치고 스펙터클한 수습 시절을 거쳤다. 사원증을 목에 걸고 깔끔하게 옷을 입고 매일 사무실에 출근한다. 최근에는 코로나 때문에 재택근무를 할 때가 많았기에, 더욱 무탈하게 잘 지낸다.




"네 팀장님. 급히 출장 나왔는데 차가 퍼져가지고요. 레카 불렀어요. 금방 갈게요."




다만 급히 시험을 치르느라 한 가지 간과한 것은,

전 국민이 아는 회사에 다닌다는 건 전국에 지사가 있기 때문이고

사람들이 많이 살지 않는 곳은 희망 지역이 아니기에 신입들이 주로 배치된다는 것.   

살면서 한 번도 방문해보지 못한 곳으로 나 역시 발령날 수도 있다는 것.

그렇다. 결국 신혼이었던 나는 강제 주말부부가 되어 신혼집에서 멀리 떨어진 오지에서 

1인 가구가 되었다. 





이십 대 중반. 처음 공무원이 되었을 땐 "드디어 취직했다! 행복해!"라며 세상을 다 가진 기분으로 시작했고, 그래서 행복하지 않은 내가 참 이상하고 특이했다. 그것이 나를 더 괴롭게 했다. 하지만 지금은 취직의 기쁨으로 인한 설렘이 얼마 안 갈 거라는 걸 알기에 '왜 이렇게 안 행복하지?'라는 고민을 멈추고 내일을 차근차근 준비하게 되었다. 물론 직장생활은 언제나 쉽지 않다. 여전히 매 순간 인간관계가 어렵고 막내이기에 모든 게 조심스럽고, 퇴근 후 일할 때 필요한 법령이나 바뀐 정책을 공부해야 하니 정신없지만. 분명 달라졌다.






‘20대에 앞으로 내 40년 인생이 결정되어 버리는 건 싫다.’라는 생각.      


예전에 유튜브에서 ‘과연 미래에도 공무원들에게 계속 지금과 같은 정년이 보장될까요?’라는 의문을 언급했다가 엄청난 댓글 폭격을 맞은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 안정적이라는 직장들도 비정규직 파업 사태를 맞으며, 벌써 정규직조차 구조조정에 들어갈 수도 있다는 불안이 암암리에 불고 있다. 비정규직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일에 왜 반대하겠는가. 하지만 한정되어 있는 예산 속에서 파이는 정해져 있고 그 안에 차지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뜻밖의 피해가 갈 수 있다.      


아마 이제는 더 이상 정규직이라고 안전하지는 않을 거다. 그렇게 피땀 흘려 내가 힘들게 경쟁률을 뚫고 공기업에 들어왔는데 내가 또 안전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모르겠다. 물론 그건 불공평해 보이지만 코로나가 터진 이후, 자신이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지 않았는가. 아니 그보다 우리가 코로나로 전 세계가 뒤집어질 거라는 걸 예상이나 했는가. 역사적으로 봐도 미래를 읽지 못하는 사람들은 뜻밖의 타격을 입었다. 우리에게라고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는가.       


공무원이 되었을  내가 놓쳤던  직업과 나를 동일시했던 거다. 지금이야 퇴사를 해보고 자유를 가져 봤기에, 자유 이면의 책임의 무게를 배웠기에 할 수 있는 말이지만, 그땐  직업이 아니고서는  자신을 설명할  있는 방법을 몰랐다. 나에 대한 당당함을 스스로에게 납득시킬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공무원 준비생일  낮은 자존감에 휩싸여 살았고 공무원이 되고 나서는 자신감이 올라갔다. 주변 환경에 휩쓸렸던 거다. 남들이 직업으로 나를 판단해주니 나도 당연히  자신을 그렇게 대접해야 한다고 생각했나 보다. 물론  역시 출퇴근 전후로 취미활동을 해보고 자기 계발도 해보며 나름 인생의 밸런스를 찾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겉으로 어떤 행동을 하든 ‘내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귀하게 대접해주고 있는가 중요했다. 


지금의 나는 내가 공기업에 합격했다고 해서   나은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정년이 보장되었다고 해서 안주하거나 나 잘 났소, 라고 자만할 수가 없다. 나는 직업과 상관없이 여전히 나답게 사는 삶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작은 도전을 하나하나 해나가고 있다. 더 이상 외부요인이 나를 흔들 수 없게 할 거라고 다짐해보면서. 그

      


“직장에서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정년이 보장되는 곳에 다닐 수 있게 되어 감사합니다. 하지만 거기까지.

 이곳은 나라는 사람을 설명하지도 책임져 주지도 않습니다.

 나의 정체성은 직장에 있지 않습니다.”      


<끝>














  





이전 10화 최종면접, "공무원은 대체 왜 관두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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