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처럼 안 된다는 건 잘 알지만
등원 길에 만난 어린이집 원장님께 아이가 요즘 자주 삐치는 것 같다고 여쭤보니 그건 아이가 혼난다고 느끼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가뜩이나 찔리는 게 많은 엄마인 나는 귀가 이만큼 커지고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원장님 은 갈등 상황에서 아이에게 안 되는 건 왜 안되는지 설명해주고,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이런 상황을 반복해서 규칙으로 만들어줘야 한다고 하셨다. 어떤 성격의 아이로 키우고 싶냐는 물음에 답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아이에게 훈육이라는 말로 화내지 않고, 이유 없이 안된다 말하지 않고, 아이를 존중하며 모든 상황을 설명해주고도 그게 안되면 계속 반복해서 설득하고, 달래도 보면서 지내보기로 노력한 첫날 아침. 역시나 만만치가 않다. 잠자리에서 눈 떠서 일어나자마자 울고불고 투정을 시작해서, 겨우 겨우 어르고 달래서 준비하고 회사에 도착해서도 주차장을 벗어나는 것이 왜 이렇게 힘든 것인지. 자동차, 아스팔트 바닥, 맨홀 뚜껑, 건물 벽면, 조형물, 소화전 같이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는 모든 걸 다 만져야만 눈물 바람 없이 그곳을 통과할 수 있는데, 손바닥은 새카맣게 더러워진 지 이미 오래전.
당연히 오늘도 어린이집 정문으로 직행할 리 없는 우리 집 꼬마는 계단에 올라가겠다고 고집부터 부리니, 휴우 심호흡 한번 깊게 하고 아이의 의견을 일단 수용한다. 시계를 찬 왼쪽 손목을 자꾸만 들여다보게 된다. 신이 나서 춤을 추거나 뛰어다니는 걸 가만히 지켜본다. 찻 길로 뛰쳐나가려 하거나, 큰 유리문을 만지려고 하는 위험한 상황만 아니라면.
손목의 바늘은 9를 향해 달려가니 마음이 급해진다. '빨리빨리'라는 말이 목구멍에서 차오르지만 겨우 삼켜본다. 통사정해서 다시 계단 앞 까지 돌아왔는데, 20분 정도 노는 건 성에 차지 않는지 결국 계단에서 내려오지 않겠다고 버틴다. 국가대표 축구팀 골키퍼도 이 정도로 뚫기 어려운가. 어쩔 수 없이 결국은 꺼내 든 나만의 비장의 무기를 장착하고 외친다. 어으아(어부바)! 어부바로 겨우 협상해서 계단을 내려온다. 하필 오늘은 아기 기저귀며, 낮잠이불, 내 가방까지 짐이 한가득이라 한 팔로 짐을 들고, 다른 한 팔로는 업힌 아이의 엉덩이를 부여잡고 내려와 어린이집 정문까지 단숨에 입장한다. 원에 들어가서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집에서 아침을 안 먹겠다고 우겨서 어쩔 수 없이 싸온 아침 도시락(오늘의 메뉴 맥반석 계란에 오이)을 뚝딱 먹이고, 부리나케 아이의 짐을 정리하고, 담임 선생님에게 인계를 하고도 오늘처럼 웃으며 쿨하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선생님에게 안겨 들어가는 날은 Lucky!!! 그래도 나는 지각이다.
매일이 아슬아슬 복권 긁기, 외줄 타기, 복불복 같지만 생각하는 것(머리)과 행동하는 것(입)의 거리는 우주 한 바퀴만큼 머나먼 거리지만, 적어도 오늘 아침은 성공했다. 그리고 또 마음으로 기도한다. 적어도 오늘 밤엔 자는 아이 옆에서 반성과 후회 같은 건 하지 않기를.
#내째끠의예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