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빨간 실로 연결된 우리
며칠 전 밤, 결국 탈이 나고 말았다.
며칠 전 밤, 결국 탈이 나고 말았다.
그동안 꽤 버거웠던 모양이다. 아이를 재우면서 한 시간쯤 같이 잠들었다 일어나니 어금니가 부딪히도록 온몸이 덜덜 떨리고 오한이 들었다. 분명 잠들기 전까진 멀쩡했었는데 이불을 덮어쓰고 30분이 지나도 닭살이 돋을 만큼 추위가 가시지 않아서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집에 남아있던 타이레놀 두 알을 삼켰다. 체온계는 37.4도로 그리 높은 체온은 아닌데 손발이 차갑고 팔다리에 닭살이 돋아나고, 얼굴은 화끈 머리는 지끈 온몸은 욱신거렸다. 이불로도 오한이 해결되지 않아 수면잠옷을 위아래로 걸치고 간신히 벽에 기대앉아 출장 간 남편에게 연락을 했다. 그러는 사이 체온은 38.4도 조금 더 있으니 38.7도 무섭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혼자라면 응급실을 가든 당직병원을 가든했겠지만 아이와 단둘이 밤을 보내야 하니 그것도 여의치 않고, 그렇다고 남편이 멀리서 해결해 줄 수 있는 노릇도 아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아마도 이건 원인미상의 코르티솔 때문이 확실하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니까.
그날 아침에 나갈 채비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그냥 툭, 그동안 팽팽하게 잡아당기고 있던 끈 하나를 놓치자마자 온몸에 피가 도는 느낌이 싸르르,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가 주체가 안 되고 가슴속에 뜨거운 마그마 같은 것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러자마자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닫고 벽에다 대고 소리를 왁 지르고, 채기를 내리 듯 주먹을 쥐고 가슴팍을 세게 쾅쾅 쳤다. 가슴을 치면 그 혈 자리가 풀린다고 어디서 들은 것 같아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서. (그 와중에 살아보겠다고.) 화장실에서 문을 열고나오니 옷 입기 싫다고 발가벗고 도망갔던 아들 녀석(놈)이 동그랗게 눈을 뜨고 상태를 확인하러 왔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또다시 줄행랑을 쳤다. 다시금 마음속에 시커멓고 시뻘건 무언가가 끓어올랐지만, 아침부터 화장실에서 사자후 까지 외친 마당에 습습후후 이너 피스를 되뇌며 한 번만 더 참아보기로. 어차피 화내고 금방 후회할 거 다시 한번 깊게 심호흡을, 휴우. (아이의 잘못에 대한 꾸지람이 아닌 단순한 화풀이로 아이를 혼내지 않겠다는 다짐. 지키기 어려운 다짐.)
복직 후 세 달 동안 꽤 무난하게(괜찮은 척) 지냈는데 남편의 부재가 생기자마자 견고하지 못한 내 씩씩함은 곧바로 와르르 무너졌다. 게다가 지난주 어린이집에 수족구가 돌아 수요일부터 가정보육을 했던 탓에 온 가족이 모두 비상모드로 지냈다. 평일 동안 친정에서 하루, 시가에서 하루, 그리고 휴가를 내고 내가 하루 아이를 돌보고 주말을 지내면 월요일에 등원을 시킬 작정이었다. 그러나 육아라는 녀석이 순순히 내 생활을 계획대로 흘러가게 내버려둘 리가 없는데 내가 그 사실을 잠시 간과했었다. 지난 토요일 새벽 불덩이가 된 아이의 체온은 38.8도, 아뿔싸. 작년 말 아이는 열성경련으로 119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에 다녀온 적이 있던 터라 우리 가족에게 고열은 너무나 끔찍하고 무서운 것인데 또 고열이라니. 그래도 지난 경험이 학습으로 남아 나와 남편은 당황하지 않고 일사불란하게 해열제를 먹이고 상태를 체크하는 일을 주말 내내 반복했지만 차도가 없어 또 휴가를 내고 아이와 동네 병원에 가서 월요일 아침 첫 진료를 받았다. 요즘 소아과에 많이 오는 환자 유형이 수족구, 장염, 열감기라는데 우리는 수족구를 면한 대신 열감기를 얻어 또다시 가정보육을 연장하게 된 것이다. 아이가 아프니 내가 챙겨야 할 건 늘어났지만 아이가 뜻대로 따라줄 리 만무했다. 입맛이 떨어지고, 떼가 늘고, 싫다는 게 많아져서 내가 해주는 모든 걸 거부했다. 특히나 약 먹이기는 고역 중에 고역이었다. 날이 더워 창문을 열어 두는 요즘 같은 초여름 날씨에 악을 쓰고 우는 아이 울음소리가 온 아파트에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어느 집에서 이렇게 애를 잡나, 죽어라 울어대는군, 대체 어느 집이야, 엄마가 누구야 할 것 같았다. 사실 얼굴을 모르는 이웃들은 크게 신경이 쓰이지 않았지만 안면을 트고 지내는 같은 연령의 여자아이를 키우는 바로 옆집에서도 아마 다 들었을 텐데. 이 상황에 그런 생각을 하다니 나도 참.
복직을 하고 나서 깊은 잠을 잘 이루지 못하는데 특히 최근 며칠은 알람 맞춰놓고 중간중간 깨서 체온을 체크하느라, 그리고 밤중 수유 끊은 지 1년도 넘은 요즘 다시금 새벽 세네시쯤 일어나 우유를 마시고 잠드는 습관이 생겨버려서 더욱 피곤에 시달렸었다. 그게 화근이었을까. 잠이 부족하니 체력이 바닥나고 면역력이 떨어진 내 몸을 돌아볼 여유 없이 지냈는데 그렇게 차근히 시커멓고 시뻘건 무언가 내 몸 구석구석 쌓여간 것 같다. 사실 지난주 월요일부터 목이 따끔따끔 불편하고, 콧물이 많아졌는데 병원에 들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분명 시간을 내면 만들 수 있는 물리적 여유가 있음에도 마음에서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아이 키우면서 일하는 거 남들 다 하는 일인데 뭐 그리 대단한 거라고 몸에서 보내는 신호를 애써 외면하다 급기야는 목요일쯤엔 목소리가 아예 나오지 않자 그제야 퇴근하는 길에 이비인후과에 들렀다. 매일 지나가는 길에 잠깐만 짬을 내면 될 일을. 참 미련도 하다. 요즘의 나는 서커스에서 접시 돌리는 사람 아니면 저글링 하는 사람 같다는 상상을 자주 하는데 한 번이라도 박자를 놓쳐 손에 닿지 않으면 모두 와장창 땅에 떨어지는 그런 일이 아이가 이렇게 갑작스레 아플 때 벌어지는데, 매일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데 급급하다 아이가 아플 때면 온 가족 발등이 활활 타고야 만다. 나는 아이가 나으면 2-3일쯤 후에 항상 같은 증상을 겪는데 이번 고열이 지나가고 난 뒤 마를 새 없이 콧물이 흐르고 복근이 생길 만큼 기침을 하고 있다. 이 글을 쓰면서도 계속.
내 삶을 나의 통제하에 꾸려가던 시절이 그래도 꽤나 길었음에도 엄마가 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내 삶을 통제하며 계획대로 지낸 적이 있긴 했었을까. 앞으로 내가 그렇게 다시 살 수 있기는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