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100일의 노력이 한순간의 무너짐

죽고 싶을 때는 성형을 해.

by 정혜영작가


#14. 100일의 노력이 한순간의 무너짐


그렇게 나는 답장을 보냈다.

"연락 고마워. 나는 잘 지내고 있어." 그게 전부였다.

냉정하고 차갑게. 나는 이제 그와의 연락이 오더라도 흔들리지 않을 거라 믿었다.

그런데 그가 전화를 했을 때 나의 굳은 결심은 물거품처럼 녹아내렸다.

"오빠야. 왜 이렇게 연락이 없어."

그의 목소리. 한때는 그렇게나 증오하고 미워했던 그가 너무 보고 싶었던 것이다.

손은 떨리고 목이 메어서 말이 안 나왔다.

참, 나 어지간히 사랑했었나 보다.

"만나자." 그가 말했다.

나는 거절해야 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다음에" "바빠서"라고 미루던 내가 아니던가.

하지만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나는 대답했다. "응, 어디서?"

오랜만에 만났다.

석 달 만이었다.

그는 달라지지 않았다.

익숙한 향수 냄새, 익숙한 목소리, 익숙한 미소.

나는 그동안 마시지 않던 술을 마셔버렸다.

맨 정신이면 하지 않았을 일들을 했다.

뒤에서 그의 허리를 감싸 안고 엉엉 울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그가 말했다.

나는 울기만 했다. 통곡은 그날 내가 한 것 같다.

그 순간은 정말이지 좋기도 했다.

내가 그토록 기다렸던 말.

내가 그토록 듣고 싶었던 사과.

그의 품은 여전히 따뜻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이불을 걷어차며 후회했다.

말 그대로 이불킥 하고 천장에 하이파이브할 지경이었다.

어제 일을 생각하니 너무 창피스럽고 수치스러웠다.

아, 정말. 베개를 껴안고 또 울어버렸다.

거울 속의 나는 지난밤의 흔적으로 초라해 보였다.

눈은 부어있고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다.

립스틱은 번져있고 옷은 구겨져 있었다.

이게 그 당당했던 내가 맞나?

석 달 동안 운동하고 다이어트하고 시술까지 받은 내가 이런 꼴이라니.

100일 동안 쌓아 올린 노력이 이렇게 한순간에

무너져 버렸다는 생각에 눈물이 쏟아졌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저 남자는 나를 언제든 전화하면 나올 쉬운 여자로 생각하겠네.

나의 모든 노력은 결국 나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나."

핸드폰을 봤다. 그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어젯밤 고마웠어. 역시 너밖에 없어." 역시 너밖에 없다고?

그럼 왜 떠났던 건데?

그럼 왜 나를 버렸던 건데?

화가 났다. 그에게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왜 또 무너졌을까? 왜 또 달려갔을까?

왜 술을 마셨을까?

왜 울었을까? 왜 안았을까?

며칠 동안 나는 헬스장에 가지 않았다.

거울도 보지 않았다.

팩도 하지 않았다.

그냥 침대에 누워서 천장만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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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 문예 등단 작가 주영. 감성과 상징, 인간의 내면의 이야기를 쓰며 글로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상처와 회복 사이의 여정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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