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똥차 가고 벤츠 대신, 내가 벤츠가 되기로 했다

죽고싶을때는 성형을 해

by 정혜영작가

#16. 똥차 가고 벤츠 대신, 내가 벤츠가 되기로 했다


술이 깼을 때 나는 쓰라린 후회에 몸부림쳤다.

어제 만난 그 사람과의 밤은 좋았지만 그만큼 치욕스러웠다.

나는 스스로에게 '내가 그런 게 아니야,

술이 그랬어'라고 위로했지만 마음은 쓰라렸다.

100일 동안 쌓아 올린 내 노력이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졌다는 사실.

역시 난 안 되나 보다. 자괴감까지 밀려왔다.

이불킥을 하며 곰곰이 생각했다.

나는 누구인지,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건지.

이 관계를 다시 시작하는 것이 나에게 좋은 일인지.

결론은 명확했다.

다시는 만나면 안 된다는 것.

다시 만나면 헤어짐의 패턴은 분명 반복될 것이다.

그와의 관계에서 그가 나에게 나쁘게 했던 행동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나에게 무례하게 굴었던 일. 내 앞에서 서슴없이 막말하고 무시했던 일.

그리고 내가 가장 싫어하는 행동이었던 전화와 카톡을 수시로 차단했던 일.

나는 그럴 때마다 피가 거꾸로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는 내가 언제든지 전화하면 나올 여자로 나를 규정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 말이다. 너무도 슬프게 '전화 오면 다 받고 부르면 나갔다.'

지금 생각하니 너무 바보 같은 여자였다.

나는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똥차 가니 벤츠 온다'는 말. 사람들은 그렇게 말한다.

나쁜 남자가 가면 좋은 남자가 온다고.

나는 그 말을 믿고 싶었다. 하지만 문득 깨달았다.

왜 나는 차를 기다리고 있는가?

자존감이 완전히 무너지고 내가 추하고 별 볼일 없는,

나는 사랑도 받을 수 없는 그런 여자인가 보다는 자괴감까지 들었다.

한없이 우물속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거울을 봤다.

거울 속의 나는 젊고 예쁜 편이었다.

몇 군데 마음에 안 드는 곳은 좀 많았지만,

다이어트와 시술로 외모는 한창 물이 올라 있었다.

실제로 많은 남자들이 대시를 했다.

헬스장에서도, 카페에서도,

SNS에서도.

하지만 나는 연애를 시작하면 다른 사람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는 성격이었다.

주위에서는 '도도하다'는 소리나 들어가며 콧방귀를 뀌었다.

문제는 내 성격이었다.

한번 친구는 영원한 친구,

한번 동생은 영원한 동생. 내 주변 지인들은

모두 '연애 대상'이 아닌 '친구'의 영역에 갇혀 있었다.

이 좁은 인맥 속에서는 건강한 연애 상대를 찾기란 나에겐 불가능이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나는 왜 벤츠를 기다리고 있는가?

내가 벤츠가 되면 되는 거 아닌가?

'똥차 가고 벤츠 온다'가 아니라, '

똥차 가고 나는 벤츠가 된다.' 그게 답이었다.

좋은 남자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내가 좋은 사람이 되는 것.

누군가 나를 선택해주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내가 나를 선택하는 것.

나는 내 성격의 한계를 인정하고 새로운 방법을 택했다.


살도 다시 빼고 외모도 가꾼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됐다.

나는 SNS를 켰다.

오랫동안 방치했던 계정.

마지막 게시물은 1년 전 그와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삭제했다.

그리고 새로운 사진을 올렸다.

헬스장에서 찍은 사진. 땀 흘리며 웃고 있는 나. 캡션은 간단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정혜영작가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신춘 문예 등단 작가 주영. 감성과 상징, 인간의 내면의 이야기를 쓰며 글로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상처와 회복 사이의 여정을 기록합니다.

87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26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121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16화#15. 다시 일어선 후, 달라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