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복수는 끝났고, 삶은 시작됐다

by 정혜영작가

#20. 복수는 끝났고, 삶은 시작됐다


나를 찾고 나니 세상이 달라 보였다.

같은 거리를 걷는데 다르게 보였다.

같은 하늘인데 더 예뻐 보였다.

같은 나인데 더 사랑스러워 보였다.

어느 날 친구가 물었다. "너 요즘 왜 이렇게 좋아 보여?"

"그래?" "응. 뭔가 달라. 예전엔 화려했는데 지금은 편안해 보여."

"편안하다..." 그 말이 좋았다. 화려한 것보다 편안한 게 더 좋았다.

나는 더 이상 복수를 생각하지 않았다. 복수는 끝났다. 아니, 완성됐다.

그를 후회시키는 것도 아니고, 그에게 보여주는 것도 아니었다. 나를 찾는 것. 그게 진짜 복수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복수가 끝나고 나니 오히려 삶이 시작된 것 같았다.

지난 1년은 복수를 위해 살았다. 운동도, 다이어트도, 시술도, 사람 만나는 것도 전부 복수였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나를 위해 살았다.

운동할 때도 '그가 보면'이 아니라 '내가 기분 좋으니까'였다.

립스틱을 바를 때도 '예뻐 보이려고'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색이니까'였다.

밥을 먹을 때도 '살찔까 봐'가 아니라 '맛있으니까'였다.

작은 변화 같지만 완전히 달랐다. 모든 것의 중심이 '그'에서 '나'로 옮겨졌다.

그리고 그 중심이 바뀌자 세상이 바뀌었다.

헬스장에 갔다. 거울을 봤다. 땀 흘리며 뛰는 나. '예쁘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누가 봐서가 아니라 내가 봐서 예뻤다. 열심히 사는 모습이 예뻤다.

카페에 갔다. 혼자.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창밖을 봤다. 사람들이 지나갔다. 바쁘게. 나도 예전엔 저랬다. 늘 바빴다.

누군가를 만나고, 무언가를 증명하고, 끊임없이 움직였다.

하지만 지금은 멈춰 있었다. 커피를 마시며 그냥 앉아있었다.

아무것도 안 했다. SNS도 안 봤다. 핸드폰도 안 만졌다.

그냥 커피 향을 맡고, 창밖을 보고, 음악을 들었다.

이게 평화구나. 처음 느꼈다. 평화가 뭔지.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은 것.

누구에게도 보여줄 필요 없는 것.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것.

어느 날 길을 걷다가 그를 마주쳤다. 우연히. 정말 우연히. 1년 만이었다.

그는 나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너...?" "응, 안녕." 나는 웃었다. 진짜 웃음으로.

"너 많이 달라졌다." 그가 말했다. "그래?" "응. 예뻐졌어."

"고마워." "요즘 어떻게 지내?" "잘 지내." "만날 수 있어?" "아니." 나는 웃으며 말했다.

"나 바빠."

그의 표정이 굳었다. 예전의 나였다면 무슨 일이든 제쳐두고 달려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정말 바빴다. 나를 사랑하느라.

"그럼... 연락할게." "응, 좋은 하루 보내." 나는 돌아섰다.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상관없었다. 나는 내 길을 갔다.

집에 돌아와서 거울을 봤다. 웃고 있었다. 진짜 웃음. '나 진짜 달라졌구나.' 그를 만나도 흔들리지 않았다.

아프지 않았다. 그냥 '아는 사람' 정도였다.

복수는 끝났다. 그를 후회시킨 건지 모르겠다.

어쩌면 그는 아무렇지도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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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 문예 등단 작가 주영. 감성과 상징, 인간의 내면의 이야기를 쓰며 글로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상처와 회복 사이의 여정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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