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기록(1)
아침저녁의 바람은 여전히 차지만 낮의 공기는 확실히 지난달과 다르다. 따뜻한 햇살이 기분 좋으면서도 조금은 답답하다. 서늘하게 퍼지는 바람으로 가을이 시작되었고 겨울을 지나 포근하게 뭉치는 공기를 통해 봄을 맞이한다. 걷기 좋은 날씨가 되었다.
내 몸은 삐그덕거린다. 작년부터 시작한 필테로 괜찮아졌다고 여긴 허리가 다시 약해진 모양이다. 허리가 약해지며 오른 손목과 무릎 발바닥에도 동반증상이 나타났다. 이유는 아직 모르겠다. 오래간만에 결제한 ott를 열심히 보겠다고 앉아있는 시간이 길어졌기 때문인지, 더 잘하고 싶어 욕심을 부린 스트레칭이 문제였는지, 날이 좋아졌다고 걷는 시간이 늘어서인지. 울적한 마음으로 수많은 경우의 수를 떠올려본다. 작년만큼은 아니니까 지금부터 조심하며 잘 관리하면 괜찮을 거야, 스스로에게 응원의 말을 던져본다. 그다지 소용은 없다.
이어폰을 귀에 꽂아 가볍고 경쾌한 노래를 찾는다. 이럴 땐 바로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불리는 노래가 좋다. 마침 딱 맞는 플레이리스트가 있어 재생을 누른다. 적당히 산뜻하고 차분한 멜로디가 울적한 감정 위를 덮는다.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덮는 것이니 답답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더 가라앉지 않게 해 준다.
폰을 열어 장바구니를 살핀다. 지난 주말부터 고민하던 아트토이 하나를 결제한다. 사기로 확실히 맘먹었지만 이번 주 지출이 계획보다 많아 결제를 미루고 있었다. 모아둔 포인트를 쓰니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이 되었다. 배송이 빠른 쇼핑몰 주문이 아니라 개인이 파는 중고라 다음 주가 되어야 받을 것이다.
문득 오늘 햇빛을 거의 쬐지 못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일기예보와 달리 비가 내리지는 않아 출근길이 수월했지만 날은 흐렸다. 카디건을 걸치고 바깥으로 나갔다. 탁 트인 풍경과 공기 환한 햇빛을 마주하자 바로 기분이 나아진다. 길게 늘어진 느티나무 가지가 바람에 흔들린다. 연한 빛깔이다. 흔들리는 느티나무 잎은 초점을 잘 맞춰 찍기가 어렵다. 여러 번 버튼을 눌러 맘에 드는 사진을 남긴다. 화단의 어떤 식물은 꽃망울을 부풀리고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이미 활짝 꽃을 피운 가지도 있다. 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자니 지나가는 어르신이 무심하게 툭 말을 던진다. '앵두꽃'이라고.
벽돌로 쌓아 올린 화단 모퉁이에 앉아 햇빛을 쬔다. 가만히 햇빛을 쬐고 있으면 건조대에 널린 빨래가 된 기분이다. 아직은 날이 흐려 햇빛이 간접적으로 닿는다. 걸치고 나온 카디건이 텁텁하게 느껴진다. 이번 주말에는 겨울 아우터를 정리해야겠다.
바깥의 환함에 눈이 조금 피로해질 정도로 앉아있다 안으로 들어온다. 기분을 가라앉게 만든 실내의 서늘함과 인공빛이 한결 편안하게 느껴진다. 울적함의 삼분의 이 정도가 날아가고 딱 필요한 정도의 걱정만이 남았다. 산책에서 본 봄을 떠올리며 오후의 일을 시작할 에너지를 끌어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