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안고 갈지, 말아야 할지
지각
아직도 이해가지 않는 나의 행동이 있다. 쓰임새도 없는, 이상한 물건들을 모조리 가방 속에 넣고 다녀야 마음이 편하다. 내 꿈은 손과 어깨에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은 채 간편하게 돌아다니는 것이다. 29년째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가방의 크기와는 상관없이 엄청나게 많은 것들을 구겨 넣는다. 하지만 막상 밖에 나가면 단 한 번도 꺼내지 않은 채 어깨만 침몰되어 집으로 돌아온다. 안 그래도 없어지고 있는 내 어깨는 무거운 가방을 매일 짊어지고 다녀서 더 소멸되고 있다.
가끔 방 안에 없어진 물건들을 찾다가 포기한 적이 있는데, 그것들은 종종 내 가방 안에 잠들어 있었다.
아까 나온다며?
10년 지기 단짝 친구가 어느 날 나에게 크게 화를 낸 적이 있었다. 그녀는 단 한 번도 약속시간에 늦은 적이 없지만, 생각해보니 나는 제시간에 도착한 적이 없었다. 이유는 이러했다. 출발한다고 말을 해놓은 뒤, 신발을 신으려고 앉으면 '내 가방에 꼭 들어가야만 하는 어떤 것들'이 그제야 하나둘씩 생각나서 신발을 신은 채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내 방은 블랙홀이다. 정리되지 않으니, 물건을 찾기도 힘들다.
이것을 가져갈까, 말까, 아니야 쓸모없어. 그래도 혹시 몰라. 그러는 사이에 시간을 아예 잊어버린다. 어느덧 현관문을 열고 나오면 그녀로부터 전화가 온다. 나는 그녀가 기대하는 대답을 늘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날 그 친구가 나에게 불같이 화를 내는 모습을 처음 봤다. 땀을 뻘뻘 흘리며 사과를 했는데, 그 마음을 풀어주느라 꽤 용을 썼다.
지각쟁이의 변
내 물건들은 모두 나의 선택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마음이 약해진다. 가장 많이 고민이 되는 것들 중에 하나는 '책'이다. 보통 책은 집에서 읽을 때도 있지만, 늘 밖에서도 읽고 싶은 마음이 강하다. 문제는 어떤 '책'을 가방 안에 넣느냐이다. 나는 책을 많이 빌리거나 많이 사서 조금씩 오래 읽는 편이다. 그때 나의 감정에 따라, 기분에 따라 책은 선택된다. 편의점에 들어가서 음료를 선택하는 데에는 5초도 걸리지 않는데, 책을 선택하라고 하면 무척 고민이 된다. 그리고 나의 선택은 언제나 동일하다.
전부 가져가는 것
그냥 처음부터 다 가져가면 되는데, 무게를 줄이고 싶은 마음에 고민을 하게 된다. 그다음 단계는 노트북이다. 친구와 일찍 헤어지게 되면, 근처 커피숍에 가서 시나리오를 쓸 것이라고 계획한다. (항상 이런 착각 속에서 살고 있다) 노트북까지는 빠르게 선택하는데, 왜 마우스를 넣느냐, 마느냐로 고민을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 글만 쓸 것이라면, 굳이 마우스가 필요 없다. 그러나 마우스가 없을 때의 불편한 점과 있을 때의 편리한 점을 그 찰나에 저울질을 하게 된다. 그렇게 마우스를 가져간다고 결정을 내린 뒤에는 '마우스 패드'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법인데,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내 방에 마우스패드가 보이지 않는다.
청소
이 모든 것은 평소에 청소를 하지 않고 사는 나의 생활 습관에 문제가 있다. 청소를 하지 않으니, 필요할 때 원하는 물건을 바로바로 찾지 못한다. 그것이 매일 늦을 수밖에 없는 원인이다.
정말 그럴까?
그냥 게으른 겁니다
저번 주부터 영어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오전 8시부터 시작하여 4시간 동안 스터디와 수업을 병행하는데, 일부러 그 시간대를 선택한 것은 오후 시간을 잘 보내기 위한 나름의 부지런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나는 오늘 20분 정도 지각을 했다. 나의 생활 습관을 알고 전날부터 미리 들고 갈 가방을 싸고, 입을 옷도 정해두고 잠에 들었는데,
그것과는 상관없이 늦잠을 자버렸다. 최소한 오전 6시 반에는 일어났어야 했는데, 알람을 듣지 못했다. 지각을 할 때마다 가는 여정이 고통스럽다. 스스로 게으른 사람, 돈을 바닥에 버리는 사람, 한심한 자로 정의 내린다.
지각쟁이는 변명을 안 하는 법이 최고다. 미안합니다. 사과하자.
내가 일어나려고 하는 시간보다 훨씬 일찍 일어나자.
출발하려고 하는 시간보다 훨씬 일찍 출발하자.
그리고 나는 가방을 없애버리자(?)
글/사진 여미
yeoulhan@nate.com
인스타그램 : @yeomi_writer
사진은 필름카메라로 제가 직접 찍었습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시립공원입니다. :)
" 시시때때로 몰려오는 고난에 울더라도 뒤로 가지는 말자고, 천천히 한걸음씩 나아가자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동시에 그대에게 말을 건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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