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호흡과 좋은 결심
몸에 힘을 빼고, 눈을 감고 심호흡 크게.
요가를 시작한 지도 벌써 3개월을 지나고 있었다. 올해 스물다섯인 영지는 최종 면접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아직 뭘 하고 싶은지 진로를 결정하지 못한 채 1년이 지나가고 있었다. 나름 모 대기업의 인턴생활도 하고, 대외활동도 열심히 하고, 때때로 동기들과 협업해서 작은 공모전에서도 입상을 했지만 현재의 박영지는 그저 아무것도 아닌, 그저 그런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인 것 같았다. 스물다섯, 누구는 좋은 나이라 하고, 누구는 늦은 나이라고 했다. 취업을 해서 경력을 꾸준히 쌓아야 한다고 일렀고, 연애도 지금 시작해야 20대 후반에는 결혼 준비를 시작할 수 있다고 했다. 무엇을 먼저 시작해야 할지, 어떤 방향으로 삶을 시작해야 할지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 채 결국 겨울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2년 전에는 작곡을 배우고 싶어서 휴학을 하고 학원을 다녔다. 학자금 대출에 갚아나가아 할 빚이 많았지만, 음악은 꼭 배우고 싶어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원비를 내고 다녔다. 영화를 보고, 영화에 맞는 음악을 만들어내는 일이 어떤 일을 하는 순간보다도 뿌듯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이 일은 돈이 되지 않았고 마땅한 일자리도 없었다. 꾸준히 온라인 사이트에 내가 만든 음악을 올리곤 했지만, 연락은 오지 않았다.
요가를 하면 이 불안한 마음들이 모두 사라졌다. 동네라 가격도 저렴했고, 원장 선생님의 목소리는 늘 긍정적이고 활기차서 기분이 좋아진다. 혹시 모를 면접 연락에 대비해서 요가를 할 때도 매트 옆에 반듯이 놓았다. 선생님의 목소리를 들으며 몸을 움직이고 고개를 돌리고, 잔잔한 음악에 정신을 맡겼지만 시선은 늘 핸드폰 액정화면에 가 있었다. 꼭 가고 싶은 회사란 무엇일까. 그런 것도 없었다. 성적에 맞춰 대학에 왔는데, 또다시 성적에 맞춰서 기업을 선택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라는 회사는 모조리 지원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충분히 괜찮지 않았나 보다. 1년 동안 면접까지 본 회사는 고작 세 군데에 불과했다. 올해의 마지막 면접이라고 생각하고 임했다. 공지를 보고, 서류를 제출하고, 면접 날짜를 확인하는 일마저도 길면 한 두 달까지 걸린다. 이제 눈여겨본 기업도 없을뿐더러, 영지는 많이 지쳐있었다.
그때였다. 머리꼭지를 바닥에 놓고 허리를 구부리는, 토끼 자세를 하고 있었을 때 낮은 음의 진동이 울렸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옅은 불빛으로 곧바로 면접 결과의 문자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박영지 씨, 들어오세요.
음반 발매를 관리하는 회사고, 크지도 작지도 않는 중견 정도의 기업이었다. 영지는 홍보팀으로 지원을 했다. 음악을 만드는 일은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다. 우선은 밀린 학자금 빚을 청산해야 했기 때문에 실오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왔다. 머리는 깔끔하게 하나로 묶었고, 재킷은 친구에게 빌렸으며 구두는 작년의 신던 구두를 억지로 구겨신느라 이미 상처가 나고 있었다. 세명의 지원자가 한꺼번에 면접을 보았다. 그중의 한 명에게 모든 질문이 쏟아졌고, 그녀는 대답을 곧잘 해내었다. 그녀의 유창한 스피칭에는 이상한 점이 단 한구석도 없었다 적당히 겸손했고, 문장의 길이도 장황하지 않았으며 눈빛은 초롱초롱 빛났다. 면접관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그녀의 대답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이미 속마음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게 되었다. 영지에게는 단 두 번의 질문밖에 하지 않았다. 휴학을 했을 때 어떤 것을 공부했느냐는 것과, 좋아하는 음악이 무엇이냐는 간단한 질문이었다.
“재즈 아카데미에서 공부를 했고요, 기타와 피아노를 칠 줄 압니다. 특히 영화를 보고 음악을 선곡하거나 작곡하는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소프트 뮤직을 좋아하고, 사람들에게 좋은 음악을 알려주기 위해서 홍보팀으로 지원했습니다.”
말을 하는 순간 영지는 후회를 했다. 뮤지션의 이름을 말했어야 했을까? 작곡과 홍보의 연관성을 제대로 말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작곡을 했다는 것을 숨겼어야 했을까? 여기는 영리를 추구하는 회사인데? 흔들리는 동공 사이로 면접관들의 눈치를 살폈는데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완전히 망했다는 확신이 들기 시작하면서 불합격 통보를 해도 좋으니 당장이라도 이 곳을 뛰쳐나가고 싶었다. 이때, 30분 내내 단 한 명의 지원자에게도 말을 걸지 않았던, 팀장으로 보이는 젊은 면접관이 고요한 적막을 깼다.
저도 작곡을 해요. 영화 작업도 몇 번 했고요.
나는 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그가 작곡하는 음악의 선율이 들리기 시작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목소리의 톤, 표정, 억양만으로도 그의 밑에서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도, 그가 좋아하고 그가 좋아하는 음악도 내가 좋아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이 면접의 결과는 아무것도 예측이 되지 않았다. 솔직하게 내 이야기를 잘 말했다는 생각도 들면서, 나를 위로해주기 위해 그가 배려를 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악마의 외침이 들리기 시작하면서. 그렇게 정신이 혼미해질 때는 곧바로 요가학원에 와서 정신수양을 했다.
문자를 도저히 들여다볼 수 없었다. 합격일까, 불합격일까. 일단 눈을 희미하게 뜨고 미리보기로 글자의 길이를 확인해보았다. 두줄이 넘어간 것은 확실했다. 이제는 내용을 확인할 차례다. 핸드폰으로 손을 뻗고 있는 찰나, 이때 요가 선생님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오늘 모두 수고하셨어요. 저는 좋은 일이든, 안 좋은 일이든 심호흡을 꼭 세 번 하고 생각해요. 좋은 건 받아들이고, 안 좋은 건 뱉는 거죠. 몸도 마음도 건강해야 좋은 결심을 하는 것 아니겠어요? 오늘 자기 전에, 꼭 좋은 결심들 하세요.”
모두가 일어나서 매트를 정리하고 있었을 때, 영지는 가만히 누워서 생각을 해보았다. 좋은 결심이란 무엇일까.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내가 사랑하는 삶일까. 미래의 ‘나’를 그려보았다. 따뜻한 영화를 보며, 마음에서 솟아오르는 감정들을 음표로 그리고 관객들의 감정을 도와주는 일. 감독과 프로듀서가 내게 전화해서 다음 작품에도 같이 하자는 한마디. 내 이름 석자가 영화 크레딧에 올라오는 일. 여러 가지 최악의 상황들도 생각해 보았다. 면접에 떨어지고, 음악과 더 멀어지고,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며 하루하루를 견디며 살아가는 나의 모습들.
그제야 영지는 눈을 뜨고 면접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덤덤하게, 문자를 읽고 영지는 집으로 걸어갔다. 바람이 차졌다. 걸음은 평소보다 빨라졌고, 마음은 두근거렸다.
그리고 심호흡을 세 번 크게 내쉬었다.
마음이 한 결 나아졌다.
그리고, 영지는 눈물이 났다.
좋은 결심이 가까운 미래에 이루어지리라는 강력한 믿음이 처음으로 차가운 가슴을 뜨겁게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하루 5분 소설
커버사진 여미
글 여미
yeoulhan@nate.com
여미의 인스타그램 : yeomi_@wri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