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싶지 않아도

사라지지 않는 것들

by 여미

_너는 언제 제일 행복해?


_행복이라...

하루를 바쁘게 보내고 집에 왔는데 모든 게 그대로 일 때?


_그게 행복하다는 거야?


_응, 내 예상대로 있어야 할 것들이 그대로 있을 때.

문 앞에 놓여있는 택배, 냉장고에 먹다 남은 맥주 한 병,

방구석에서 뒹굴고 있는 고양이, 친구들이 준 편지,

버튼만 누르면 바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나오는 카세트......

이렇게 익숙한 것들을 하루 끝에서 마주하고 있을 때 얼마나 편하고 좋아.

행복한 거지. 안락한 보금자리와 나와 관련된 것들이 늘 그대로 존재하니까....


_난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넌 정말 소소한 행복을 즐길 줄 아는 것 같아.


_나를 불안해하고 불행하게 하는 것은 소중한 것들이 언젠가 사라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인 것 같아.

하지만 최소한 내가 말한 것들은 그 위험성에서는 매우 벗어난 것들이잖아.

도둑이 들지 않는 이상 말이지.

아, 도둑도 저런 것들은 돈이 안되니 아마 훔쳐가진 않겠다. 하하

난 사실 다른 부분에서는 불안함을 자주 느껴. 그래서 안정감 있는 것들을 마주했을 때

행복감을 느끼는 것일 수도 있고.


_네가 불안할 때도 있구나. 전혀 몰랐어. 넌 언제나 긍정적이라고 생각했거든.


_여행이랑 비슷한 거지. 여행지에서의 변수를 누가 미리 알 수 있겠어?

내가 알던 버스 시간표가 실제와 다를 수도 있고, 숙박 주인이 화장실을 가는 바람에 짐을 도난당할 수도 있고,

우연히 만난 여행객이랑 친해져서 그날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맥주 한 병으로 날을 샜을 수도 있고.

없던 알레르기가 갑자기 여행지에서 생겨서 하루 종일 약국 찾는 데만 시간을 보냈다던가.

그럴 때마다 우리는 그 상황에서의 최선을 생각하고 행동하잖아. 조금은 틀어지거나 변경되더라도 말이지.

아무리 계획적으로 산다고 한들, 우리는 매 순간을 타협하고 조율하면서 선택하게 되니까.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고, 어떤 사람이 나를 떠날지도 모르는 거고.

좋은 일이 생기다가도 안 좋은 일이 생기는 거고.

그래서 이 모든 게 불안하지. 그런데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 같아.

두려움 없이는 용기도 없으니, 두려움을 안아야 앞으로 나아가는 거지.


_나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하루아침에 몽땅 사라지는 꿈을 꿨어.

그땐 하도 울어서 꿈에서 깼는 데도 눈물이 흠뻑 뺨위를 흐르고 있더라고.


_좋아하는 것들이라고 하면 어떤 건데?


_그냥...


_혹시 내 꿈이야? 내가 나왔어?


_너도 나왔던 것 같은데, 모르겠어. 사실 꿈에서 깨면 정확히는 잘 기억이 나지는 않거든.

그냥 여러 가지로 내가 마음을 두었던 것들이 사라졌던 것 같아.

지금 네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네가 내 곁에 계속 있을 거라는 확신이 올 때가 있어.

그때가 나는 제일 행복했던 것 같아.


_그 확신은 매일 오지는 않는다는 거야?


_매일 그렇게 생각은 하지. 그런데 유독 그런 날이 있어.

네가 나를 보는 눈빛이, 절대로 잃고 싶지 않다는 말을 해줄 때가 있거든.

되게 별거 아닌 날인데, 그날은 가슴부터 따뜻해져서 표정을 감출 수 없더라.


_한 명이 같은 자리에서 계속 머물게 되면

어긋나지 않고 만나게 되잖아.

내가 여기 계속 있을게.

그러니까 보고 싶을 때마다 보러 오면 돼.


_그냥 보고싶지 않아도, 사라지지 않는 편이 나는 더 좋은 것 같아.

갑자기 이 꿈이 깨질까 봐 불안해.


_꿈 아니야. 왜 꿈이라고 생각해?

자, 내 손 따뜻하지?


_응

_.....

_오늘도, 고마웠어.

내일 밤에도 여기서 보자.



글/그림 여미

yeoulhan@nate.com

여미의 인스타그램 @yeomi_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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