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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미 Mar 07. 2020

아침 목욕

차가워진 사랑도 전자레인지에 데울 수 있다면

아침에 목욕을 한다.


욕조에 따뜻한 물을 채우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분 정도 걸리는데, 물을 틀어놓고 다시 침대로 돌아와 눕는다. 눈을 감으면 금방 잠에 들 것 같아서 베개를 껴안고 나의 컨디션을 살핀다.


꿀 같은 잠을 잔 날에는 피로가 달아나고 개운한 느낌이 든다. 그렇게 오늘 하루는 그래도 괜찮게 시작하겠구나, 라는 생각을 할 것이고

악몽을 꾸거나 이유 없이 잠을 설친 느낌이 들면 오늘 하루는 조금은 힘들겠구나, 라는 생각을 한다. 이런저런 몸상태를 살피다 보면 금방 물이 채워지는 소리가 들린다. 느릿느릿한 움직임으로 수건을 들고 욕실로 향한다. 자주 듣는 음악을 틀고 따뜻한 욕조에 몸을 담그면 지난밤 나를 덮었던 고민들이 깨끗하게 씻겨 내려가는 느낌을 받는다.


그 잠깐의 시간이 나를 안정시키고 있다.


예전에는 시간을 효율 적으로 쓰기 위해 간단하게 샤워만 했지만, 요즘은 매일 아침에 목욕을 한다. 길지 않은 시간으로 몸을 녹일 정도로만 따뜻하게 데우고 나면 약간의 활력을 얻는다. 예전에는 아침을 싫어했다. 그저 출근을 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귀찮고 우울하게만 느껴졌다면, 지금은 아침에 내가 뭘 해야 괜찮아지는지 잘 알고 있다고 해야 할까. 훨씬 가벼워진 몸으로 집 밖을 나선다.


그렇게 미지근한 몸을 따뜻하게 데우는 일은, 나를 돌보는 일이기도 하다.

내게 시간을 투자해서 휴식을 줄 수 있는 권리를 주고, 사소한 이유로 차가워진 마음을 금세 진정시킨다.


최근에 야근을 하고 집으로 가는 길, 김밥 집에 들러 어떤 김밥을 살 지 고르고 있었다. 그때, 홀에서 김밥을 먹던 손님이 카운터 쪽으로 와서 김밥을 좀 데워달라고 했다. 사장님은 김밥을 그대로 전자레인지에 넣어서 돌리는데, 그것을 보면서 아침에 목욕하는 나를 떠올리게 됐다.


내가 김밥이 된 것 같았다기보다는 저렇게 데워지는 걸 보고 있자니 과연 이 세상에 데울 수 없는 것들이 있는 걸까, 라는 생각을 했다.

김밥도, 사람도 데울 수 있는데 차가워진 것을 어떤 것으로도 데울 수 없는 것이 무엇일까.


감정


그래도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 돌아올 수 있는데, 그중에 야속하게도 데워지지 않는 것은 식어버린 사랑이다.


그건 따뜻한 욕조로도, 가장 비싼 전자레인지로도 데울 수 없어.

저 혼자서 금세 달가워지다가, 뜨거워지다가, 식어버렸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차가워져 버리지.


차가운 사랑을 김밥 들고 가듯이 들고 가서 1분 50초만 데워주세요,라고 할 수 있다면 어떨까?


그 지속성은 과연 얼마나 오래될까, 싶으면서도.

그렇게까지 해서 뭐, 좋을까 싶으면서도,

한 번쯤 다시 데워보고 싶은.


차가워진 사랑도 전자레인지에 돌릴 수만 있다면


글/그림 여미 

yeoulhan@nate.com

여미의 인스타그램 @yeomi_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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