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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미 Apr 12. 2020

내가 중고를 안 좋아하는 이유

너의 첫 주인은 나여야 해

친구들과 우쿨렐레를 배우기로 한 날, 우리는 각자 원하는 방법으로 악기를 구매하기로 했다.

나는 당연히 새 제품으로 구매할 생각이었는데, 한 친구는 중고 가격부터 알아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 친구는 값이 꽤 나가는 전자기기 같은 것들을 중고로 구매하거나 반대로 본인이 더 이상 쓰지 않는 물건들도 판매하면서 용돈을 모으곤 했다. 사실 어차피 새 제품도 시간이 지나면 낡고 닳는 것은 똑같으니, 중고로 구매하는 방법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난 중고를 좋아하지 않는다.  


언니꺼 입어

    


막내의 서러움은 새 제품을 개봉하는 찰나를 경험하지 못한다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크레파스도, 실로폰도, 옷도, 가방도 나는 언니의 손때가 묻은 중고만을 물려받았다. 중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처음으로 교복을 사러 간 날, 언니가 졸업한 학교에 입학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너무나 다행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좋았어! 언니 교복을 물려 입지 않아도 돼, 그래도 돼!" 반대로 엄마는 같은 학교에 갔으면 교복 살 일이 없었을 거라며 아쉬움을 드러내셨겠지만.


내가 스스로 돈을 벌 때까지는 줄곧 그런 생활이 지속됐다. 무언가를 새로 살 일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언니가 쓰고 남겨진 물건부터 내게 내려왔으니까. 지 이름은 매직으로 어찌나 크게 쓰던지, 듬성듬성 지워진 언니의 이름 자국이 보기 싫어 커다란 스티커를 덕지 덕지 붙이곤 했다. 박스를 뜯거나 빠듯 빠듯한 새 제품에서 오는 냄새를 거의 맡아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새 것을 사달라고 생떼를 부렸다가는 그 날 저녁을 굶을 수도 있었기에 묵묵히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래서 남이 쓰던 물건은 이제는 쓰고 싶지 않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르면, 나도 엄마가 했던 것처럼 나눠 쓰는 삶에 익숙해질 수도 있겠지만.

친구가 더 이상 맞지 않는 옷을 한아름 주었다며 기뻐하는 날이 올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열심히 돈을 벌고 있으니, 내게 주지 못한 밀린 선물들을 주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하련다!


너의 첫 주인은 나여야 해

주말 잘 보내고 있어요?


글/그림 여미

yeoulhan@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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