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만 하게 해주세요
저는 이제 떠납니다.
당신과 추억이 담겨있었던, 이 동네를 떠나요. 매일 나를 데려다주었던, 이 곳을 떠나요.
방을 비우기 위해 짐을 정리했어요. 평소에 잘 열어보지 않았던 서랍도 열어봤어요. 하나하나 꼼꼼히, 내가 갖고 갈 것들을 고르고 있었어요. 그러다 3년의 세월이 담겨 있는 편지들을 발견했어요.
모두 당신이 내게 준 것이죠.
4년 전 나를 사랑했던 당신이 이 곳에 있었어요. 편지들 사이로 맑은 빛이 새어 나오는 것 같았어요. 만지면 열어보고 싶을까봐, 꾹 참았어요. 그 안에는 분명 뜨거울 거예요, 그래서 손을 데이고 말 거예요. 그래서 한참을 바라보기만 했어요.
이제는 버려야 할 것 같아요.
당신과 나는 더 이상 인연을 이어가지 못했으니까요. 결국에는 엇갈렸으니까요.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당신을 내가 추억해봤자 아무 소용없으니까요. 이미, 내 흔적을 지워버렸을지도 모를 당신을 내가 간직할 이유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편지 뭉치들을 꺼내려했는데, 그 사이로 사진 한 장이 툭 떨어졌어요.
내가 좋아하는 사진이었어요.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우리는 어쩐지 많이 닮아 있어서 좋아했어요. 그래서 그때도 버리지 못했나 봐요. 사랑을 하고 있는 나도 좋았고, 그런 나를 좋아해 주었던 너도 좋아서요.
나는 원래 잘 버리지 못해요.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들이 준 편지도 아직 간직하고 있어요. 내게 편지를 준 친구들 중에 절반 이상은 지금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지 조차 몰라요. 그렇다고 편지들을 일일이 읽어본 적도 거의 없어요. 그냥 갖고 있는 것이 좋았어요. 어렸을 때, 나에게 애정을 주었던 그들의 마음을 간직하는 것이 좋았어요.
당신도 내게 그런 존재로 남아있어도 괜찮을까요.
초등학교 동창들처럼, 오래전 친구처럼, 나와 굉장히 가까웠던 사람이었으니까, 그래서 조금 더 갖고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요.
그리움은 이곳에 두고 갈 거예요.
아쉬움도 이곳에 두고 갈 거예요.
내게 사랑을 알려준 당신을 추억만 하게 해주세요.
글/그림 여미
여미의 인스타그램 yeomi_writer
yeoulhan@nate.com
오늘도 비가 와서 글을 썼어요. (저 잘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