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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미 Mar 18. 2017

나무 같은 사람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나의 10대 시절, 우리 집 앞에는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 나무 근처에만 가면 마음이 편해지고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나무는 한결같았다. 세월이 그를 무기력하게 하거나 늙게 하진 않았다. 비바람이 오거나 눈보라가 쳐도 나무는 그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았다. 도망칠 수 있는 다리와 눈이 없으니 온몸으로 버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그 덕분에 더 단단해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너는 참 좋겠다. 너를 재촉하는 사람도 없고, 다그치는 사람도 없으니"

지나다닐 때마다 푸념하듯 한 두 마디 씩 말을 걸기 시작했다.


난 잘 살고 있는 것일까?


신기하게도 어떤 물음을 던질 때마다 바람이 불었다. 몇 개의 나뭇잎이 흔들리자 서서히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노력한 만큼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거나 혹은 다른 일로 속상해 있을 때, 그 나무 아래에서 한 참을 앉아 있었다. 마치 나뭇잎이 흔들리기라도 하면 나에게 응답을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괜찮다고,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내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나무는 우리가 평소에 찾는 사람과 닮아 있었다.


잃어간다는 것에 두려움이 없는 이들은 절대 상대방을 다그치지 않는다. 온전히 그 사람 자체를 이해해주고, 기다려준다.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하다 보니 커다란 그늘이 생긴다. 그늘에 함께 누워있으면 쫓기는 듯한 느낌이 들지 않아 마음이 편안하다.


나는 그런 나무 같은 사람이고 싶다. 어떤 고난이 와도 도망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묵묵히 이겨내는 사람이고 싶다. 계절이 흐르면 나뭇잎 색깔도 변하듯이 어느 곳에 가도 자연스러운 사람이고 싶다. 내 삶이 괴롭고 힘들지라도 다른 사람을 포용해줄 만큼 넓은 가슴을 갖고 싶다.


새들은 아무 곳에서나 기대어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하루 종일 노래를 불러도 나뭇잎을 흔들며 함께 춤을 춰줄 수 있는 곳을 향해 훨훨 날아간다. 나무는 그 누구에게도 부담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오는 사람을 재촉하지 않으며 가는 사람을 붙잡지 않는다.



  가슴 안에 넓고 아늑한 보금자리를 마련하면 분명 누군가가 그 안으로 쉬러 들어올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사랑이라는 것도 간절하기만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듯이.

비로소 모든 것을 내려놓았을 때, 오히려 많은 것을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그런 나무 같은 사람이고 싶다.


가끔은 한결같은 너를 닮고 싶다.

글/그림 여미

커버사진 최영미 

yeoulhan@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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