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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미 Sep 21. 2021

평범한 어른

어른이 되어 평범하다는 것은

넌 그냥 평범하지


대학교 2학년, 21살 때였을 것이다.


그때 당시 자신이 꽤나 똑똑하다고 자부하던 선배가 한 명 있었다. 이전 학교에서 철학과를 전공하다가 자퇴를 하고, 내가 다니던 예대로 재입학 한 그 선배는 본인이 학구적인 사람임을 여기저기 어필하며 다니는, 가납사니 같은 사람이었다. 지금 같으면 그런 개쩍은 말에 상대를 하지 않았을 텐데, 고작 스물 한 살이었던 나는 그 선배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수긍하며 때때로 혼자 고까워했다. 그중에 가장 충격적이었던 말은, 나를 가리키며 '평범하다'라는 말이었다. 어떤 연유로 그런 말을 들었는지는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선배는 나를 그렇게 정의를 내렸다.


그때 당시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할 법한 세계적인 유명한 리더이자 감독이 꿈이었던 나는(그때는 그랬다), 그 누구보다 특별한 사람이고 싶었고, 스스로도 특별하다고 믿어왔는데 그 선배의 말에 충격을 받았다. 다른 사람 눈에는 내가 평범해 보인다는 사실이 속상했고(그것이 사실일까봐), 그런 말을 내게 직설적으로 한 것이 기분이 나빠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소심해서 앞에서는 제대로 반론을 제기하거나 말도 못 하고, 집에 가서는 분해서 잠이 오지 않았다. 평범하다는 것은 나에게는 가장 듣기 싫은 말이었다. 나는 특별하고, 재능이 있고, 개성이 있는데, 왜 평범하다는 거야?


평범한 어른


그 후 10년이 흘렀고, 나는 현재 서른 하나가 되었다. 요즘 '행복'이라는 것과 '스스로 행복해지는 법'에 대해서 자주 고민하고, 지속적으로 찾고 있는 중이며 작은 노력들을 실천하고 있다. 그러면서 한 가지 선명해진 사실은, 우리는 평범해져야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평범하다는 것은 뭘까? 내가 갓 대학교 신입생 때 받아들였던 '평범하다'라는 의미와 지금 내가 생각하는 '평범하다'라는 의미는 사실 차원이 다르다. 예전에는 평범하다는 말이, 아무 색깔이나 개성이 없고, 심심한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평범하면 뛰어난 사람들이 있는 무리에서 묻히고, 사회에서 결여되고, 모든 혜택에서 배제되는 것이라 여기며 내가 남에게 어떻게 보이든지 무조건 돋보이려고 노력했었다. 물론 이것도 맞는 말이다. 우리는 각자 고유가 가진 능력을 어필하고, 그것을 때에 따라 강력하게 노출해야 더 좋은 이득을 취할 수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어떤 '능력'이나, 특정한 부분을 다른 사람과 비교를 해야 하는 상황이나 '정도'를 가릴 때에 표현하는 '평범'이 아닌, 그 사람 자체를 설명할 때(성격이라던가, 고유의 분위기, 내면, 생각 등)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은 매우 좋은 의미라는 것이다.


'평범'에서의 '()'에는 여러 한자 뜻이 있지만, '다스리다'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현재  스스로 정의 내리고 있는 '평범하다' 것은 인간적으로 특별함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지나치지 않도록 외부 적으로나 내부적으로나 지혜롭게 다스릴  아는 사람이다. 무릇 '어른'이라는 것은(각자 기준이 다르겠지만) 자기 자신을 스스로 얼마나 '통제할  있는가' 가름할  있다고 보는데, 갖은 유혹으로부터 절제하고, 외부에 압력에도 스스로 판단하여 통제하고, 독립적으로 살아갈  있는 사람은 미성숙한 사람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 어른이라는 것은 평범하게 살아야, 그리고 평범한 사람이어야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글 / 여미

커버사진 / 영화 '그녀의 속도'

yeoulhan@nate.com

여미의 인스타그램 @yeomi_writer


행복한 추석연휴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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