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빅 - (마음이 끊어지는 소리입니다)
본인과 맞는 사람과 맞지 않는 사람을 빠르게 마음속으로 잘 판단하며, 맞지 않는 사람과는 거리를 둔다. (출처 : INFJ 나무위키)
며칠 전에 펭귄과 함께 영화 '폴: 600미터"를 구운 치킨과 웨지 포테이토를 맛있게 먹으면서 보았다. (내 취향의 치킨이다)
주인공은 연인과 함께 암벽등반을 하다가 사고로 연인을 잃은 뒤, 지인의 권유로 죽은 연인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마지막으로 등반을 하게 된다. 그 타워는 총 600m이고, 인간이 오르기 위해 세워진 기둥이 아닌, 일반 건축물로 세워진 오래된 타워이다. 부실하고 낡은 타워를 오르다가 또다시 사고를 당해 타워 안에 갇히면서 생존과 싸우는 스토리다.
낡은 타워에는 긴 사다리 하나가 붙어있는데, 주인공은 이 사다리를 이용해 등반을 시도한다. 이 "사다리"가 마치 INFJ의 마음의 문으로 가는 다리와도 같다. 튼튼하고 잘 매달려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나사가 하나둘씩 빠지면서 부실한 사다리를 잡고 있게 된다. 분명 위험하다는 것도 알고, 튼튼하지 않다는 것도 아는데, 애써 무시한 채로 계속 오르고 오르다가 휘청거리던 사다리는 끝내 밑으로 추락하고, 꼭대기와도 한참 멀어져 있다. 분명 저 위에 밧줄이 있는 것 같고, 사람도 있는 것 같은데, 도무지 밧줄은 내려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통신도 안 잡히고, 소통도 할 수 없고....... 그저 600m 떨어진 꼭대기만 올려다본다.
아무것도 모른 채 연결이 끊어졌고, 다시는 정상에 오를 수 없게 된다.
INFJ의 도어슬램에 대하여
INFJ의 도어 슬램(Door Slam) :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방법으로 누적되어 있는 불쾌함과 불만을 표현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INFJ의 신호를 일방적으로 무시하다가 파국이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INFJ는 중재자 유형이기에 한 순간의 실수 혹은 순간적인 격분으로 관계를 끊는 경우는 거의 없다.
(*출처 : INFJ 나무위키)
내가 생각하는 INFJ의 특성 중에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다. "누구세요? 나는 이제 당신을 모릅니다" 수준으로 괜찮은 관계를 유지했던 사람에 대한 마음의 문이 끊어져버린다. INFJ는 대체로 평화주의자 성향이 있어서 그날의 순간적인 감정이나, 홧김에 관계를 끝은 경우는 거의 없고, 상대방이 나를 불편하게 했던 말과 행동들을 오랫동안 곱씹어보며 지켜본다. 누적되어 있었던 불쾌함을 묵묵히 무시하기도 했고, 나름의 방식으로 신호를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내성적인 INFJ만의 은은한 신호를 상대방은 알아차리지 못했을 수도 있다) 마지막 선을 넘어버렸을 경우, 그와 나 사이를 연결해 주던 마음의 사다리가 빛의 속도로 추락한다.
평소에는 온화하지만 상처를 크게 받았을 경우 미련 없이 인간관계를 정리한다. (*출처 : INFJ 나무위키)
INFJ는 내성적이라 상처를 잘 받지만, 누군가에게 전쟁을 선포하거나 갈등을 일으키고 싶지는 않고,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평화가 깨지는 것은 용납할 수 없으니, 그 자리에서 판단해 버리는 것이다. 여기서 INFP의 특성과 차이가 생기는데, 결정을 최대한 미루는 INFP들은 누군가와의 관계의 매듭을 지어버린다거나, 상대방에 대한 관계를 판단하는데 시간을 할애하지는 않는다(*결정을 지으면 스트레스를 받는 INFP들은, 그 상태의 관계를 "내버려 둔다")
하지만 “결정”과 “판단”을 해야 평화가 찾아오는 INFJ는 그의 도어슬램이 닫히는 순간, 상대방을 아예 없었던 존재처럼 생각하고, 관계를 없애버린다.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내 경우, 한번 끊어진 마음이 다시 원상태로 돌아온 적은 거의 없다. 상처받은 상대의 말은 아물지 않고 영원히 가슴속에 박혀버린다. 멀어진 사이에서 아쉽거나 후회가 된 적도 별로 없다. 그래서 INFJ의 도어슬램은 사람의 관계를 지우개로 지워버린다, 아예 없던 사람으로 생각한다는 것 같기도 하다.
INFJ는 어떻게 보면 참 슬프게 산다(바로 나…) 마음 편히 싫은 소리도 잘 못하고, 불편해도 꾹 참고 기다린다. 상처받았다는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철저히 방어를 한다. 그 사람에 대한 정보를 아예 없애버려야, 자신의 상처도 0이 된다는 착각을 한다.
결국엔 자신의 상처를 안고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자신이 없어서, 한번 타격받은 마음을 다시 치유할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아서, 도어슬램을 장착해 놓고 스스로 고독하게 살아간다. 이렇게 슬픈 유형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그게 바로 나라는 것......(또르르)
글/커버사진 여미
yeoulhan@gmail.com
펭귄과 함께 회사에 다녔을 때(선후배 사이였을 때) 늘 하던 말이 있다.
"여미님은 어떻게 팀장님을 그렇게 싫어하면서 한 번도 티를 내지 않으세요? 진짜X10000 전혀 몰랐어요!"
내 마음속 악마는 100명은 키우고 있었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