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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은 점이 되고 행복은 현재가 된다

by 여미

그거 생각나? 그때 말이야. 남편과 저녁을 먹고 산책을 나갈 때면, 지나간 일들에 대해 자주 이야기 한다. 그중에 가장 행복했고 즐거웠던 기억들,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기억들만 끄집어내서 공기 중에 떨어뜨린다. 그때는 그랬고 저랬고, 그랬었고, 하나 나하나 읊다 보면 이상하게 그때는 불행도 없고 나쁜 일도 아무것도 없었던 것만 같다. 우리에게는 늘 바스락거리는 낙엽소리가 가득했고, 늘 아름다운 풍경만 가득했던 것만 같다. 늘 좋은 일이 생겼고, 늘 모든 일이 잘 풀렸던 것만 같다. 즐거웠던 한 에피소드를 떠올리면, 같이 따라오는 감정들이 모든 것들을 아름답게 만든다. 우리의 기억은 그렇게 조작된다. 불안하고 힘들었던 기억들은 멀리 보내버리고, 먼지가 되어버리고, 기억 속에 점점 사라져 버린다.


불행은 점이 되고


그래서 모든 아픔은, 그리고 슬픔은, 결국 행복과 즐거움을 기억하는 세포들이 다 잡아먹어버리는 게 아닐까. 나를 너무나 힘들게 했던 그 순간들이, 시간이 지나면 아주 하찮은, 작은 점 처럼 되어버린다. 그냥 그것은 점일 뿐이다. 그 "점"들은 시간이 지나면 연민이 되고, 추억이 되고, 그리움이 된다. 그렇게 조작된 기억 속에서 늘 헤엄치면서 산다.


행복은 현재가 된다


오늘도 남편과 추억 이야기를 하다 보니 동네를 두 바퀴가 돌고 집에 들어왔다. 우리가 처음 연인 사이가 되었을 때는, 우리의 각자의 삶도 참 힘들었고, 고민도 많았고, 미래도 불안정했지만, 그보다는 호수 공원에서 오리 가족을 보며 처음으로 손을 잡았던 순간을 이야기한다. 눈이 펑펑 내린 날 집 앞 공원에서 춤추면서 뛰놀던 기억을 이야기한다. 회사 근처 족발집에서 족발을 뜯으면서 서로의 가정환경에 대해 고백했던 날을 이야기한다. 난방도 되지 않는 집에서 꽁꽁 얼어붙은 손을 후후 불며 부둥켜 껴안고 잤던 기억을 이야기한다. 나를 지하철역까지 바래다주면서, 세상 따뜻하게 안아주었던 남편의 체온을 이야기한다. 그때의 힘들었던 일들은, 현재 모두 작은 점들이 되어버렸으니까. 좋은 기억들이 덮어버렸으니까, 없었던 일이 되어버린다.


지금 이 순간도 미래에는 그리워하고, 추억하고 싶은 순간이 될지도 몰라. 매일 이야기하게 될지도 몰라. 잘 듣고 잘 먹고 잘 기억하고 싶다. 추억을 이야기할 수는 있지만 경험할 수는 없으니, 그렇게 생각하면 단 하루도 소중하지 않은 날이 없다.




글 여미

커버사진 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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