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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미 Dec 06. 2017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사랑한다는 말은 못 하여도

 https://www.youtube.com/watch?v=W_Ln5n0z_3w

첫 만남 - 조성우(8월의 크리스마스 OST)

벚꽃이 예쁘게 피는 5월이 되면 말이야


너와 손을 잡고 거닐었던 그 길목에 그 시간에 맡았던 너의 향기가 바람을 타고 어느샌가 내 콧등에 스치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구름을 요렇게 저렇게 구경하게 되지


아, 또 너 생각을 해버렸구나


긴 장마가 시작되던 날, 발끝에서부터 빗물이 스며드는 촉감을 느끼면 그 날 하루의 일과를 이미 망쳐버린 것처럼 입이 삐죽 나온 채로 터벅터벅 걷다가도


하나밖에 없는 우산을 내 쪽으로 씌어주느라 온몸에 빗물투성이었던 너는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들면서 투덜거리던 입술이 어느새 침몰한 배처럼 가라앉는거 있지.


그렇게 여름에도


가을이 되면 글쎄, 문구점에 진열해 놓은 편지지만 봐도 보고 싶어 지는 거야.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온통 쓸쓸해 보이는 것이 마치 너의 부재를 온 세상이 슬퍼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곤 해


가을에도 너를 떠올리고 말았지


그런데, 겨울이 되면 말이야


내 기억 속에 너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네가 가지고 있는 정서에는 어떤 향기가 났었는 지, 그리고 나는 왜 그 향기에 반해 한동안 헤어 나오지 못한 채 숱한 나날들을 포근한 마음으로 잠들었는지


점점 기억이 나지 않으려고 해


이제는 모든 명분이 상투적이고 시시해져버린 채 겨울을 맞이해버렸어.

 

그때의 나의 감정이, 나의 마음이

이제는 차가운 수증기가 되어 구름 위로 올라가 버린 걸까?


더 이상 지탱할 힘과 희망이 남아 있지 않아

무거워질 대로 무거워진 미련들이 떨어져 내려와


온 세상을 하얗게 만들어버리지


더 이상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해도

사랑한다는 말을 듣지는 못해도


눈송이가 되어 너의 손등에 잠시라도 머물러 있어도 될까


네가 조금이라도 나를 느낄 수 있게,

잠시만 너를 차갑게 만들어도 괜찮을까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글/그림 여미

커버사진 임경복

yeoulhan@nate.com

Music : 첫 만남 - 조성우(8월의 크리스마스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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