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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미 May 07. 2018

꿈에 대하여

조금은 느려도 괜찮지 않을까

중학교 때 나의 꿈은 시인이었다. 


아주 찰나의 기억이지만 초등학생 때 어머니께서 시를 외우게 하셨다. 거실에 놓여 있었던 큰 화이트보드에는 날마다 새로운 시가 쓰여있었다.  아마 그때의 영향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본격적으로 시를 좋아했던 것은 중학교 2학년 때 국어 교과서에 실린 윤동주 시인의 ‘자화상’이라는 시를 본 이후부터였다. 시를 설명하시는 선생님의 말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한 참 동안 읽고 또 읽어보았다. 마치 시공간이 멈춘 듯, 감상에 젖어있었다. 우물 가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고 부끄러운 마음에 계속 갈팡질팡 거리는 소년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보았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나보다 더 초라했을지도 모를 화자를 느끼며 안도를 했던 것 같다. 


다른 것을 빗대어 말하면서 어떻게 이런 솔직한 시를 지을 수 있을까, 하며 감탄을 했었다. 윤동주의 시를 알게 된 후 도서관에 가서 그의 시집을 빌려 보기도 하고 서점에서 전집을 사서 읽기 시작했다. 그가 쓴 모든 시가 잠재되어 있던 나의 감수성을 건드린 듯 나를 환상적인 세계로 인도했다. 다른 시들보다 그의 시가 유독 좋았던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자신을 되돌아보고 성찰하는 마음, 그 마음이 어디서 나오는 것이며 무엇인지 계속 들여다보고 싶어 졌다. 학교가 끝나면 시집 한 권과 작은 수첩을 들고 곧바로 독서실로 달려갔다. 내겐 독서실은 공부를 하는 공간이 아니었다. 유독 마음에 와 닿았던 시를 수첩에 옮겨 적는 일, 그 일이 나에겐 하루 중의 큰 낙이었다. 시를 보는 재미에 푹 빠지고 말았다.


시는 한 장의 그림과 같았다. 


많은 것을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화자의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 오히려 그런 방식이 때로는 슬픈 것을 더 슬프게, 그리운 것을 더 그립게 만드는 강력한 힘이 존재하고 있었다. 열다섯의 나는 그러한 힘에 완전히 현혹되어 버렸다. 나는 이토록 쉬운 통로로 그들이 고생해서 만들어 놓은 세계를 가만히 들여볼 뿐인데, 어찌 그 시간을 놓칠 수가 있을까? 창작이라는 것은 인간에게 많은 영향을 주는 놀라운 예술의 한 측면임을 깨달았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생각하는 세계를 구축하고 감정을 전달함으로써 지친 사람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엉켜있던 마음을 풀어줄 수 있는 작가가 되는 꿈을 조금씩 키워갔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나의 꿈은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감독’ 혹은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할 만큼의 위대한 예술가가 되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것이 꼭 이루지 못할 지언 정 멋있는 나의 미래를 상상하고 꿈꾸었던 것이 항상 마음속 깊이 있었기에 서툰 낙서조차도 재미있고 행복했다. 그렇게 거대한 꿈을 향해 달려갔던 나는 무엇이든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는 정신을 얻고 말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꿈은 조금씩 변해간다. 같은 영화를 보더라도 나이대에 따라 이입이 되는 인물이 다르 듯이 그때의 순정과 현재의 순정은 분명하게 다르다. 날 것 그대로의 젊음은 소중하고 또 소중한 것이다. 여행지도 마찬가지다. 어렸을 적 밤을 주우러 가족과 함께 가을산에 놀러 간 적이 있는데, 나는 어린 마음에 그 알밤 한톨에도 사연이 있다고 믿었다. 데굴데굴 굴려보기도 하고, 흙도 만져보고 나뭇잎도 하나 주워다가 쌈처럼 싸 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밤을 어떻게 하면 제시간에 많이 주울 지를 따지게 되고, 집에 와서 어떻게 삶고 구워서 먹을지를 검색하고 앉아 있다. 나이가 들 수록 실용과 정보를 따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나는 시인의 꿈을 가슴 한 구석에 품고 있다. 그리고 그 꿈은 때로는 한 폭의 그림으로 표출되고, 영화로 만들어져가고 있다. 어렸을 때 품었던 꿈, 계속 나와 연결되어있다고 믿는다. 젊고 찬란한 그대들이 내가 꾸었던 꿈보다도 더 기상천외한 꿈을 품기를 기대한다.


친구들에게 가족들에게, 혹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조차 그 꿈은 말도 안 된다는 말을 듣기를 원한다. 

그 말도 안 되는 꿈, 결국에는 모두 그대와 연결되어 하나의 좋은 성취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꿈을 꾸기에 두려움이 없다는 것

글/그림 여미

커버사진 임경복

yeoulhan@nate.com


여미의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yeomi_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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