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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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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미 May 21. 2018

원더풀 라이프

산다는 것은

의심이 가는 것은 단 세 가지뿐이다. 


옥수수빵, 초콜릿 우유, 바나나.


이 중에 범인이 숨어있다. 내 수면을 앗아가고, 내 몸을 앗아가고, 내 하루를 앗아간 녀석이.  


조금만 먹어도 금방 배가 차는 탓에 의도치 않게 소식을 하는 편이고, 짠맛을 좋아하지 않아 입에도 대지 않는 터라 근 4년 동안은 내과에 가본 적이 거의 없다. 그만큼 탈이 잘 안나는 편이다. 그러나 바로 이틀 전, 뭔가를 잘못 먹고는 끙끙 앓아눕고 말았다. 자극적이지 않은 음식을 잘 찾지 않고, 과식을 하는 것은 내 의지대로 가능할지라도, 바이러스의 냄새를 미리 맡을 방안은 없었다. 그날은 하필이면 작년에 제작한 단편영화가 서울의 한 영화제에 초청되어 친구와 함께 상영회를 보러 가기로 한 날이었고, 맛있는 점심과 커피 한 잔을 하기로 했던 특별한 날이었다. 오전 7시에는 일어나야 했는데, 새벽 내내 복통에 시달려서 단 한숨도 자지 못했다. 영화로서는 첫 초청이라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1시간이 넘는 거리를 구토가 올라오는 것을 참으며 달려왔다. 


이렇게 보면 나도 참, 질긴 인간이다. 결국 최악의 컨디션으로 관람한 나의 영화는, 오장육부의 역주행만을 느낀 채 허무하게 지나가버렸다. 아무것도 먹을 기력이 없었지만, 같이 와준 친구에 대한 미안한 마음에 점심이라도 대접해줘야겠다 싶어 근처 죽집에 들어갔다. 커피 타임은커녕 저녁에 예정되어 있었던 시나리오 스터디도 모두 취소하고 집으로 돌아가 쉬기로 했다. 도저히 이건, 견디기 어려웠다. 그날의 ‘나’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시공간이 멈춘 곳에서, 온몸이 뜨거워지고 열이 오르고 모든 의욕이 가라앉는 경험을 반복했을 뿐이다. 


나는 그렇게 하루를 날려버렸다.  


몸이 아프면 서서히 보이는 것들이 있다. 마시고, 먹고, 돌아다니고, 보고, 듣고, 말하고. 이 모든 평범한 행위들은 내 육체가 자유로움을 지녔을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이틀 동안 약을 먹고 누워 허우적거리 고서야 눈이 떠졌다. 드디어 내 몸에 피가 흐르는구나. 영화를 찍을 때도 참 힘들었는데, 보는 것도 왜 이리 힘든 걸까.  


아, 산다는 것은…. 


원더플 라이프

글/그림 여미

커버사진 임경복

yeoulhan@nate.com


여미의 인스타그램 ID : yeomi_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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