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울 Apr 18. 2023

3회기 상담: 나를 가장 모르는 사람은 나였다는 것을

나를 만나는 길목에서


_나를 살린 치유의 문장들

완벽하게 세워둔 계획 속에서 번아웃이 오고 결국 다시 고통받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거예요.

상담의 모든 과정은 결국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 될 거예요.

여울님을 여기까지 데려온 인생의 사건들 속에서 여울님은 결국 자신을 만난 거예요.

단순하게 보이는 일상의 순간들 속에서 행복을 느끼고 가치를 발견하는 사람들을 존경해요.






아침, 봄의 단비가 내려 길이 촉촉하고 공기는 상쾌했다. 강아지들과 산책을 마치고 세 번째 상담을 위해 상담소로 향한다. 한 주간 부단히 노력했지만 마음의 방향이 종종 부정적으로 흐르는 것을 느끼곤 했다. 회복의 과정이라 생각하며 마음을 조금 더 편안하게 가져보려 한다.


밝은 미소로 맞아주시는 상담사님과 마주 앉았다. 한 주 간의 안부를 나누고 오늘의 상담 주제를 함께 탐색해 본다. 오늘은 나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사람을 좋아하면서도 때때로 사람을 밀어내고 싶어 하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한 번쯤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사람을 참 좋아했다. 3-4살쯤, 지나가는 사람을 보면 밝은 미소로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인사를 하곤 했다고 한다. 사람들을 보면 그 사람의 직업이나 지위보다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 사람인지, 그 사람의 마음에는 어떤 소중한 꿈이 있는지, 그 사람은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고 살아가는 사람인지 궁금했다. 그래서 낯선 사람들과도 잘 대화를 나누고 호기심을 가지고 질문하는 나의 모습을 보며 사람들도 나를 좋아했던 것 같다.


하지만 정작 가족들이나 친구 관계에서는 조금 다른 면이 있었다. 나는 언제나 나의 삶에 경계를 단단히 만들어 놓고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누군가 그 경계를 넘어서려고 할 때, 나는 힘들어하고 예민하게 생각했다. 너무 자주 만나게 되거나 내 일상의 흐름에 방해가 되는 관계는 좋아하지 않았다. 정작 친구들을 만나면 즐겁게 시간을 보내면서도 경계가 분명한 나를 보며 친구들은 나를 참 어려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상담사님께서 내게 물으셨다.


"여울님은 어떤 사람인가요?"


상담사님의 질문이 어렵게 느껴졌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내가 하는 일, 직위, 역할을 모두 내려놓은 나는 어떤 사람일까. 떠올리기 어려웠는지 사람들이 바라보는 나를 이야기했다.


"사람들은 저에게 똑똑하다고 이야기해요. 그리고 생각이 깊다고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밝고 호기심이 많다고 해요. 그리고 때로는 굉장히 독특하고 특이한 생각을 한다고 말해요. 가족들은 저에게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해요. 실제로 내가 좋아하는 것 외에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는 것이 쉽지 않기도 하고요."


상담사님은 다시 물으셨다.


"여울님이 바라보는 여울님은 어떤 사람이죠?"

"음... 어려운 사람이요. 어려운 사람 같아요. 쉽게 살아가지를 못하는 사람이요. 무엇이든 깊이 생각하고, 정의하고, 이야기하는 사람이에요. 사회 현상이든, 관계든, 일상이든 쉽게 넘기는 일이 없어요. 그 문제에 대해서 끝까지 생각하는 편인 것 같아요. 그리고 무엇을 하든 완벽하려고 열심히 하고는 해요. 대학교 때 이후로 완벽주의는 많이 줄어들었지만, 항상 잘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정의로운 것을 좋아하고 또 자유롭기도 해요."


상담사님은 웃으며 들으시면서 정말 어려운 사람이라고 이야기를 하셨다. 무엇으로 정의 내리기 어려운 사람. 그것이 나라고 이야기하셨다. 그것이 나의 모습이라고. 아마 나조차도 나를 어려워하니 다른 사람들은 나를 더 어려워하지 않겠냐고 하셨다. 맞는 말씀이었다. 사람들은 나를 좋아하고 멋있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 벽을 넘기는 쉽지 않은 사람이라고 여기는 듯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나의 시간과 공간을 열어주어도 괜찮은 사람에게만 나는 마음을 열어주는 사람이었으니까.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왜 교사가 되었는지, 그리고 지금은 회복적 정의를 만나 어떻게 아이들과 함께하고 있는지, 그리고 왜 유학을 준비했었는지. 수많은 억압으로 아이들을 힘들게 하는 한국의 교육 시스템으로 인해 교사가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그저 예술 작품 하나에도 아이들을 세워놓고 A, B, C로 평가하는 교육. 그런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 교사가 되고 싶었고, 그래서 회복적 정의를 만나 서클을 통해 아이들을 존중과 배려로 사랑하고 싶었다. 아이들을 그 억압 속에서 지켜내고 싶었다. 적어도 우리 교실에서 만큼은 아이들이 행복하고 자유롭기를 기대했다. 그리고 유학을 준비했던 것은 예술을 통한 트라우마 치유 워크숍을 미국에서 참여했을 때, 완전히 자유로워지고 치유되고 행복한 나의 모습을 만났기 때문이었다. 미국이라는 사회와 개인의 정체성이 나에게 잘 맞는다고 느꼈고, 내가 갔던 대학교 특유의 공동체를 사랑하는 문화가 좋았었던 것 같다.


상담사님은 내 이야기를 곰곰이 들으신 후 말씀하셨다. 여울님이 만났던 것은 억압된 교육 속에서 고통받는 친구들과 아이들이 아니라 여울님 자신이었을 거라고. 그 사회와 구조라기보다는 그 안에서 한국 교육 안에서 고통받았던 '나'였을 거라고... 그래서 교실 속의 아이들을 지키고 싶어 했지만, 어쩌면 그 교육 속에서 고통받았던 나 자신을 지키고 싶었을지도 모른다고. 미국의 표현 예술 치료 워크숍을 가서, 회복적 실천가 과정에서 여울님이 자유로워지고 행복했던 것은 아마 여울님 자신을 만났던 순간이었기 때문일 거라고 말씀하셨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지점이었고 내게는 충격적으로 다가온 이야기였다. 나는 한국 교육의 구조 안에서 고통받는 아이들을 위해 교사가 되고 싶었다고 생각했고, 그 변화를 위해 회복적 정의를 공부하며 실천했고, 그 연장선에서 유학을 가고 싶은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사실 고통받고 있었고, 내가 부단히 노력했던 것은 '나'를 만나는 경험, 온전히 '나'로서 살아가는 경험, 그것을 통해 자유로워졌던 순간을 바랐던 것이다. 무엇에도 깊이 생각하는 나는 학창 시절을 지나오면서 수많은 억압과 단단한 구조가 많이 힘들었고 고통받았을 것이다. 교실 속 아이들이 자유롭고 행복할 때 사실 고통받는 나의 모습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나도 행복했던 것이다. 아이들이 억압으로 힘들어할 때는 무의식적으로 과거 고통받았던 내가 떠올랐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유학 또한 어려운 공부를 해내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나'를 만나는 경험을 하고 싶은 것이었을 것이다. 때문에 꼭 유학이라는 수단이 아니어도 '나'를 만날 수 있는 과정을 경험한다면 나는 충분히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경험을 하게 된다. 그 경험 속에서 고통을 받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를 안전하게 지키고 싶기에 나의 존재가 고통받고 기쁨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구조나 타인, 환경에 원인을 돌리고는 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같은 환경 속에서 있다고 해서 고통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가진 고유한 정체성이 아픔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희망적인 것은 그 아픔을 통해 우리는 '나'라는 존재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무엇에 아파하고 슬퍼하는 사람인지, 무엇에 기쁘고 행복한 사람인지 알 수 있다면 우리는 더 온전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은 관계에 대한 상담을 요청했지만 결국 '나'라는 존재와 만나는 것에 대한 이야기로 마쳤다. 그 이유는 숙제로 남기시겠다고 상담사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결국 '나'를 모른 채 타인의 관계를 고민한다는 것이 무의미해서일까. 숙제는 다음 주까지 더 고민을 해보아야겠다. 오늘 상담도 내게 깊은 의미를 주는 시간이었다. 결국 상담은 진정한 나를 만나기 위한 과정이란 것. 그리고 내 삶 또한 그렇다는 것. 진정한 자아와의 만남을 통해 우리는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 이 의미를 생각하며 앞으로 더 경험해 보고 살아가보자.


 









매거진의 이전글 2회기 상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아이에게 필요한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