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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May 04. 2023

5회기 상담: 깊은 관계를 두려워하는 나에게

사랑해도 괜찮아


_나를 살린 치유의 문장들

우울과 외로움은 내가 나에게 부여한 감정일 수 있어요.

사실은 깊은 감정을 나누는 것을 배우거나 교감해 본 적이 없을 수 있어요.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잘 이해가 가지 않기 때문에 주기가 어려웠던 거예요.

깊이 있는 감정까지 들어가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내면의 어떤 감정에서 걸림이 있기 때문일 거예요.


큰 비가 내리기 전 날, 하늘은 마치 비가 오리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게 하려는 듯이 밝고 화창했다. 파란 하늘에서 비치는 햇살로 봄날의 새싹들은 생기 있게 빛나고 있었다. 어김없이 한 주가 지나고 상담사님을 만나는 날이 찾아왔다. 언제나 그렇듯 기대하는 마음으로 상담소로 향했다.


오늘 내가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였다. 내 삶에서 항상 고민이 되는 주제였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참 많은 관계들을 맺고 살아간다. 그 관계에 의지하며 또는 그 속에서 슬픔과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네의 삶일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관계'는 언제나 이해가 갈듯 하면서도 이해가 가지 않는 영역이었다.


요즘 휴직을 하고 내가 많이 느끼는 감정 중에 하나는 '외로움'이다. 항상 많은 사람들 속에서 존재해야 했던 직업 특성상, 이렇게 긴 시간 동안 홀로 있어본 경험이 많지 않았다. 1년간의 시간이 주어졌을 때 막상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도 당황스러웠고, 잘 쉬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무엇을 하며 쉬어야 하는지도 막막했다. 그리고 직업을 통해 연결되었던 수많은 모임들과 관계 속에서 떨어져 있어 보면서 많이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사람들을 찾지 않았다. 막상 친구들을 만나고 가족들을 만날 생각을 하면 마음이 내키지 않았고, 쉽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을 필요로 하면서 밀어내고 있는 모습 어쩌면 지금 뿐만 아니라 평생에 걸쳐서 내 마음 가운데 일어난 일이었을 것이다. 상담사님은 나의 이야기를 들으며 엄마와의 관계에 대해서 물으셨다.


"어머니와는 어떤 느낌으로 교감해 보셨나요?"


"저는 엄마와 교감이란 것을 해본 경험이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엄마는 언제나 12시간 가까이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함께할 시간이 부족했어요. 그리고 집에 있어도 힘드시니까 쉬셔야 했죠. 때문에 내가 해야 할 일들은 스스로 해내는 것에 많이 익숙해졌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엄마도 감정적인 소통에 익숙하지 않은 분이었기 때문에 저희 관계에서 감정적인 교류가 많지 않았던 것 같아요."


"여울님은 어떤 것을 원하셨던 것 같아요?"


"엄마가 나에게 해준다고 하면 상상은 안되지만, 넓은 마음으로 저를 품어줄 수 있는 관계가 필요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엄마는 익숙하지도 않으셨던 것 같고, 그럴 여유도 없으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응석조차 부리지 않았고 스스로 내가 살아가야 할 삶을 살아왔던 거죠."


상담사님은 애착 관계에서 주 양육자와의 관계를 보게 되면 내가 왜 그런 행동의 패턴이 나오게 되었는지를 알게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하셨다. 나의 애착 관계는 불안정 애착으로 관계에서 안정감을 느끼지 못하며, 상대가 싫은 것은 아니지만 관계 속에서 감정을 깊게 느끼는 것이 쉽지 않을 거라고 하셨다. 그리고 가장 좋은 것은 안정적 관계 유형을 경험해 보는 것일 거라고. 관계에서 깊은 감정을 느끼는 것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공허함과 때로는 불편감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상담사님의 말씀을 들으며 내 삶을 돌아보니 모두 맞는 이야기였다. 엄마를 사랑하지만, 엄마가 살아가는 삶이 고되게 보였기 때문에 학교에서 필요하다고 하는 것조차 엄마한테 이야기하지 못하고 용돈을 받아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 해내곤 했던 것이다. 때문에 다가가고 싶은 감정과 그렇지 못한 감정 사이에서, 그 중간 지점에서 머무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엄마는 내가 언제나 이해하고 보살펴야 할 존재였기 때문에 여자인 친구들에게 동성이면서도 불편하거나 어려운 감정을 느꼈던 것이다. 무엇인가 챙겨줘야 할 것 같고, 도움을 주어야 하는 존재로 인식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내게 무엇을 바라고 관계를 이어나간 적은 없었다. 그저 내 삶의 역사를 통한 감정이었던 것이다.


오늘의 상담은 '알아차림'의 시간이었다. 관계에서 어려움을 느끼고, 내가 세워 둔 경계선 안에 사람들이 들어오는 것을 힘들게 느꼈던 이유는 역시나 존재했다. 그저 막연하게 나는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는 것이 힘들구나, 깊은 관계를 갖는 것이 어렵구나라고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오늘의 이야기를 통해서 내 어린 시절 삶의 이야기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나의 단단한 경계선을 조금씩 허물어가는 것, 그래서 더 많은 이들이 내 세계 속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 쉽지 않겠지만 그렇게 노력하며 사랑과 우정이라는 것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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