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버른 근교 퀸스클리프 여행
호주살이 11년 차이다. 대부분을 호주 멜버른 시티나 근처에 살다가 1년 전쯤 멜버른 서쪽으로 이사를 왔다. 본격적으로 호주 하우스 라이프를 시작하게 되었다. 평소에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멜버른에 살면서 근교 여행을 두세 달에 한 번 정도는 다닌다. 좋아하는 여행지는 와이너리가 모여있는 멜버른 동쪽이다. 그렇지만 서쪽으로 이사 오니 굳이 동쪽으로 여행 갈 필요가 있을까 싶어 가까운 서쪽 여행지 먼저 정복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1년 좀 넘게 서쪽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는데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는 퀸스클리프(Queenscliff)이다. *퀸스클리프는 호주 빅토리아주 남부 벨라린 반도 남동쪽 끝에 위치한 도시이다.
여행을 다니다보면 뜻밖의 순간을
만났을 때 기억에 많이 남는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기대 이상이고,
별 생각 없었는데 생각보다 좋은 걸
경험하면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는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누구와 함께 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퀸스클리프를 다녀온 건 2024년 8월 호주 겨울 때였다. 한국에서 부모님이 호주로 놀러 오셔서 다 같이 가족 여행으로 다녀왔다. 겨울이라 해가 빨리 지고 문을 일찍 닫는 곳이 많아서 여행 일정 짜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도 바닷가에 갔는데 해산물은 먹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구글 지도에서 해산물(seafood)을 검색해 보니 퀸스클리프 바닷가에 위치한 'Mi Shells Seafood' 해산물 가게가 나왔다. 사진 리뷰를 보니 신기하게도 요트 선착장에 있는 요트에서 해산물을 판매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약간 의심을 품었지만, 구글 지도에 사진과 리뷰가 올라와 있으니 가보면 알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지도를 따라가 보았다.
해안가를 산책하며 걷다 보니 수많은 요트가 줄지어 있는 선착장이 있었고 'Mi Shells Seafood' 간판이 걸려 있는 요트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누구 하나 선뜻 먼저 요트에 다가가지 못했다. 엄청나게 큰 펠리컨들이 요트 근처를 서성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화 속에서나 보던 귀여운 펠리컨 이미지와는 달리 당장 뭐라도 삼켜버릴 듯한 매우 큰 부리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래도 위협적으로 보이진 않아서 해산물을 사기 위해 요트에 가까이 가보았다. 우리가 내려가니 녀석들은 어느새 가게 앞으로 다가왔고 주인에게 물고기를 달라고 마치 소리치듯이 울고 있었다. 자주 있는 일처럼 보였고 가끔 팔기 애매한 물고기 있으면 먹이로 주는 것 같았다.
가까이 가보니 요트를 개조해서 만든 가게가 아닌 실제로도 요트로 사용하고 있는 거 같았다. 그래도 제법 가게답게 간판도 달려있고 앞에 메뉴판도 있었다. 메뉴판은 사실 봐도 잘 모르겠다. 우리나라 어종과 다르기도 하고 생소한 이름이 많았다. 이럴 땐 추천을 받으면 된다. 우린 스튜로 해 먹을 해산물과 회로 먹을 생선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추천받아 뭔가 사긴 했는데 이름은 기억이 안 난다. 횟감으로는 킹피쉬(King fish)를 추천받아 샀다.
숙소로 돌아가려고 차에 짐을 주섬주섬 싣다 보니 주차장에 몇몇 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큰 아이스박스를 챙겨 곧장 요트 해산물 가게로 향했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곳인 거 같았다.
숙소로 돌아와 사 온 해산물을 손질하고 마트에서 사 온 토마토소스를 넣고 끓였다. 숙소에 소금과 후추가 있길래 추가로 조금 넣었다. 회도 잘 손질해서 식탁에 올려두니 그럴싸해 보였다. 추운 겨울 차가운 바람을 맞다 들어와서 그런지 일단 스튜 국물을 맛보고 싶었다. 우리는 스튜 국물을 한 숟가락 먹어보고는 모두 놀라며 맛있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여기에 뭘 넣었냐며 엄마가 재차 되물었지만, 나는 마트에서 사 온 토마토소스 외에는 달리 넣은 게 없다고 했다.
해산물 자체가 워낙 신선해서인지 국물 맛이 바다 그 자체였다. 비린내가 전혀 안 나는 깊고 고소한 해산물이 국물에 진하게 베인 맛이었다. 킹피쉬 회는 탱글탱글하니 식감이 정말 끝내줬다. 그런데 생각보다 횟감을 적게 사 와서 그게 좀 아쉬웠다. 이렇게 맛있는 줄 알았으면 더 샀을 텐데 말이다. 여기에 와이너리에서 산 화이트 와인을 곁들여 마시니 이보다 더 완벽할 순 없었다. 맛에 취해 허겁지겁 먹다 보니 미처 사진을 못 찍어 그 부분이 좀 아쉽다.
이렇게 먹어보니 왜 식당에서 재료를 중요시하는지 다시 한번 더 깨닫게 되었다. 물론 요리에 재료가 중요한 건 당연하겠지만 내 입이 그리 고급이 아니라 그런지 크게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재료 자체로 음식 맛이 확연히 차이가 난다는 걸 느낀 순간이었다.
여행을 다니다보면 뜻밖의 순간을 만났을 때 기억에 많이 남는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기대 이상이고, 별 생각 없었는데 생각보다 좋은 걸 경험하면 그게 참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는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누구와 함께 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호주살이 11년 차이지만 부모님 두 분이 호주에 오셔서 이렇게 여행 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래서인지 그 어느 때보다도 뜻 깊었고 다행히 여행의 흐름과 운이 잘 따라주었다.
퀸스클리프에 다시 여행할 기회가 생긴다면 여기는 반드시 꼭 들를 것이다. 다음에 갈 땐 나도 큰 아이스박스를 챙겨가 더 넉넉히 사와야 할 것 같다. 이 밖에도 퀸스클리프에는 가볼 만한 곳이 많다. 다음 글에서는 바다와 양떼 목장, 큰 들판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경치가 정말 아름다운 퀸스클리프에 있는 레스토랑을 소개해 보겠다.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Queenscliff,_Victoria
Mi Shells Seafood
주소: 1 Harbour St, Queenscliff VIC 3225
운영 시간: 목, 금, 토, 일 8:30~17:00
일러스트레이터 여울(Yeouul)
<빈티지의 위안>, <멜버른의 위안> 저자
Instagram: @yeouulartㅣ@yeouul_illustrator
Website: https://yeouul.creatorlin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