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화기 너머로 j의 울먹임이 들려왔을 때, 나는 숨을 멈추었다. 친애하는 나의 친구 j. j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그냥 다 그만두고 싶다고.
j는 지난여름까지 일 년 간 계약직으로 일을 하다 다시 취업 준비생으로 돌아왔다. j는 해가 바뀌기 전에 정규직으로 취업을 해야 한다며, 20대 후반에 들어선 여자에게 공백기와 나이는 취업시장에서 치명적이라며 자기소개서를 필사적으로 써댔다. 지원서를 쓰고 또 쓰고 면접을 보고 또 보고. 그리고 떨어지고 떨어지고 떨어졌고.
j는 어느 순간 이 모든 과정을 기계적으로 반복했다. 탈락문자를 보고서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먹던 칼국수를 입안에 마저 넣었으며 면접을 보러 오라고 했던 회사가 실은 다단계 회사였음을 알아차린 후에도 개새끼들, 욕 한 번 하고 말았다. 그런 j가 물기를 머금은 목소리로 다 그만두고 싶다고, 이제는 아무것도 하기 싫다고 말을 했을 때, 내 마음도 어찌할 도리 없이 먹먹해지고야 말았다.
내가 21살이었을 적 28살의 지인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세상이 점점 살기 좋아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째 점점 어려워져만 가네. 내 집 마련도, 취업도 점점 어려워져만 가···.” 당시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막연히 그런가 보다, 생각했지만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 그 말은 나의 폐부 깊숙한 곳에 들어와 독기를 내뿜으며 움을 트고 있다. 그 7년 사이에 사회의 각 방면에서는 크고 작은 변화, 또는 혁신이라고 부를 만한 것들이 일었지만 결과적으로 개인에게 부과되는 삶의 무게는 더 무거워졌다. 특히 청년들이 품을 수 있는 희망의 크기는 점점 쪼그라들어갔다.
한때 유행이었던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욜로(YOLO)를 추구하는 삶은 취업절벽과 코로나라는 전무후무한 재난 상황을 만나며 급격히 빛을 잃었다. 욜로나 소확행은 돈을 벌 수 있는 상황에서나 가능한 말이었으므로, 취업 자체가 불가한, 고용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진 현 상황에서는 더 이상 유효하지 못한 언어가 되었다. 대신 그 자리에는 2030세대의 투자, 주식 열풍이 일었다. 앞날이 더없이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상황에서 청년들은 어떻게든 사라지지 않을 자신의 ‘자산’을 남기는 데 몰두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어린 20대들의 일상에는 ‘소확취(소소하지만 확실한 성취)’가 성행하고 있다. 하루에 30분 이상 운동하기, 일주일에 2번 요리해 먹기, 11시 이전에 잠자리에 들기 등 일상에서 실천 가능한 작은 항목들을 수행하며 성취감을 느끼려 한다. 다르게 말하자면 그만큼 뭔가를 성취해내기 어려운 시대가 된 것이다. 애초에 성취할 기회를 얻는 것 자체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되었지. 삶은 종종 그렇게 누구에게나 아주 못되게 군다. 사람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가, 너 이래도 계속할 수 있겠느냐고 숨통을 조이며 위협한다. 그래서 j는 그날 밤 눈물을 쏟아낼 수밖에 없었던 거라고.
하지만
하지만 이젠 정말 끝이라도 생각했을 때, 더 이상 버틸 수가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고 생각했을 때 삶은 슬쩍 손을 내밀기도 한다. j가 무너지기 직전, 모든 걸 포기하기 직전 극적으로 취업이 된 것처럼. j는 우리나라 3대 명문대학교 중 하나인 Y대학의 행정 직원으로 들어갔다. 2년 계약직이었지만, 전에 우리는 계약직이라면 이제 더 이상 신물이 난다고 학을 뗐었지만, 나는 j의 취업을 온 마음으로 축하해줄 수밖에 없었다. j가 얼마나 많은 탈락과 거부의 경험을 삼켜냈는지 알기 때문이다. 그의 무수한 눈물과 좌절, 그날 밤의 울먹거림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나는 j에게 축하한다고, 너 정말 잘됐다고, 너의 노력이 이제야 빛을 보는 것 같다고 두 손을 꼭 잡아주며 말했다. j는 계약직이라 아무한테도 축하받지 못했는데 네가 축하한다고 말해주니 이제야 실감이 난다며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두 손을 꼭 잡고 있었다.
I know that life is sometimes so mean - 아이유 unlucky 가사 중 -
때때로 삶은 너무도 못됐다고, 그런 말을 적은 걸 보면 아이유도 사는 건 퍽 쉽지 않은 모양이다. 모든 걸 다 가진 듯 보이는, 언제나 반짝반짝 빛을 발하는 그녀에게도 삶은 때때로 너무도 비열하고 못되게 굴었을 테다. 우리 모두에게 그러하듯이. 하지만 아이유는 말한다. 그러므로 말한다. It is true. So I’m trying. 맞아, 삶은 너무 못됐어. 그러니 나는 계속 시도해볼게, 라고. 길을 잃어도 또각또각 나의 보폭으로 걸어가 보겠노라고. 씩씩하게 노래 부른다. 나는 j가 길을 잃은 상황 속에서도 양팔을 힘껏 휘저으며 한 걸음 한 걸음 걸음을 옮겼기에, 결국 그 못돼먹은 삶도 그녀에게 손을 내밀어줄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j에게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삶은 아이유에게도 쉽지 않지만, 때로는 왜 저러나 싶을 정도로 우리에게 비열하게 굴지만, 그녀가 말한 것처럼 길을 잃어도 다시 또각또각 걸어가고 싶다. 그래, 맞아. 인생은 너무 못돼 처먹었어. 담담히 인정하며, 그렇기에 나는 계속 시도해보겠노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니까 세상의 수많은 j야, 삶은 너무도 비열하지만, 우리 끝까지 지구에 발붙이고 씩씩하게 살아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