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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꽃 May 12. 2024

시간이 약이라는 거짓말

계류유산 후 화학적 유산

유산을 하고 4개월 뒤,

내게 일이 좀 생겼다.

'좀'있는 게 아니고 이번에도 내 세상을 뒤집을 큰 일이었다. 그래서 한동안 많이 울었고 지금도 괜찮지 않다.

아마 시간이 지나도 괜찮아질 수 없을 거다.



생리 전부터 미열이 지속되고 PMS증후군과는 다르게 느낌이 이상해서 생리예정 4일 전에 해봤던 임테기가 희미하게 분홍색 줄이 보여서 놀랐었다.


유산 이후로 이 정도의 희미한 선도 본 적이 없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 후로 서서히 임테기가 진해진다 싶더니 생리예정일에도 분명 두줄이었다.

근데 일주일 후에 초음파를 보러 병원을 가려고 하던 찰나에 결국 다시 생리를 시작했고 생리가 시작됨과 동시에 며칠 내내 37.2-37.4를 유지하던 기초체온은 정상으로 돌아왔고 거짓말처럼 임테기는 다시 희미한 선조차 보이지 않았다.

찾아보니 화학적 유산이란다.

화학적 유산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많았지만 결론은

"임신이었지만 임신이 아니게 된 상태" 였다는 것이다.

몰랐더라면 차라리 괜찮았을 거다.

그냥 생리가 일주일 늦어졌나 보다- 이렇게 생각하면 지금처럼 죽을 만큼 괴롭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처음엔 진해지는 임테기를 보면서 막막했다.

임신을 마냥 좋아할 수 없었던 게

 달 전에 10주 계류유산으로 소파술을 했고, 이번에도 잘못되면 내가 정말 못 버틸걸 알기 때문에 너무 무서웠다.

내 이전의 임신과 유산과 소파술의 과정을 함께 지켜봐 준 나보다 먼저 엄마가 된 친구에게, 이번 임테기가 진해지는 사진을 보여주면서 제일 먼저 한 얘기가 "나 너무 무서워"였다.




맞다, 아직 준비가 안 된 게 맞았다.

유산 이후로도 매달 엽산과 영양제들을 챙겨 먹고 대추차와 흑염소즙 등 좋다는 건 다 샀다. 엽산을 삼 개월분을 샀는데 마지막통을 개봉하면서 허무한 감정에 사로잡혀있었고 그럴수록 더 병적으로 임신에 집착하고 매달 수십 개의 임테기와 배테기들을 쓰면서 내 탓만 했다.

내가 모자라서, 난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며 자책하며

매달 실패를 겪을 때마다 죽어버리고 싶었다.

근데 막상 성공했을 때도, 또다시 두줄을 봤을 때는 더 죽고 싶었다.

이번에도 못 지키게 될 것 같았다.

또 못 지키면 나는 쉽게 나를 포기해 버릴 것 같았다.

나는 아직 자신이 없는 게 맞았다-나는 할 수 없었다.

일주일 동안 걱정이 너무 심해서 잠도 제대로 못 잤다.

그래서 이번에도 떠났나 보다.

내가 못 지킬걸 진작에 알았나 보다.

아무한테도 얘기할 수 없었다.

계류유산을 하고 수술을 받았을 땐 그렇다 할 이유가 있었지만

화학적 유산이라는 게 있는데 이번에도 그렇게 된 것 같다,

하면서 위로를 받는 건 더 괴로운 일이었다.

그래서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않고 생리가 시작한 날 혼자 울면서 술을 마셨다.

통증이 너무 심했지만 그보다 더 내 마음이 위태로웠기 때문에 그날은 술이라도 먹지 않으면 버틸 수 없었다.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될까 봐 겁이 났다.

원래 남편을 보러 가기로 한 날이 아니었지만 다음날엔 혼자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남편을 보러 가서는 속상했지만 나보다 더 속상해할 남편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 얘기도 못하고 혼자 몰래 눈물만 흘리다 잠들었다.

그렇게 너무 괴로운 시간을 간신히 혼자 넘기고 있었다.

사실은 누구에게라도 말하고 싶었다.

나 너무 힘들다고, 이번에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나는 대체 왜 안 되는 건지,

어떤 종교도 없지만 유산 이후엔 처음으로 점도 보고 타로도 보러 다녔다.

"아기가 언제 생길까요, 제 사주에 아기가 무사히 태어날 수 있을까요"

물으면서 얼마나 비참했는지 모른다.

병원에서도 "10주엔 보통 유산이 잘 안 되는데..."

했던 얘기.. 바닥을 보며 웅크리고 있던 아기의 잔상..

유산 직후에 점을 보러 갔을 때  "얘가 잘못될 애가 아니었는데..."

했던 이 모든 말들이 요즘 자꾸만 머릿속을 맴돈다.

내 마음을 후벼 판다.

시간이 약이라고 하던데 나는 자꾸만 아기가 뱃속에서 심장을 멈춘 채 웅크리고 미동도 않던 그 초음파를 본 그 시간에 몇 달째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 운전하다가도 자주 울고, 길을 걸으면서도 울고, 자기 전에도 울고, 눈을 뜨면 울고..

사람들 앞에선 시간이 지날수록 애써 다 잊은 척 괜찮은 척 가면을 쓰고 웃는데 요즘은 그럴수록 더 미쳐버릴 것만 같다.

내겐 임테기가 진해지는 걸 보며 다시 희망을 가졌던 지금 이 시간도, 수술했던 그날의 기억도 평생 놓지 못할 시간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괴로운 기억일 것 같아 견딜 수가 없다.

어떤 시간은 선명하게 남아 낫지 않는 상처로 남아버릴 수도 있다. 시간이 약이라고,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는 말은 거짓말이다.

나는 떠나간 아기를 절대 놓지 못할 것 같다.

그 놓지 못하는 게 죄책감이란 것도 알고

나를 더 망가뜨리고 있는 걸 안다.

그래서 더 무섭다.

요즘 자꾸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다.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 힘든 일들이다.




다시 생리를 시작한 날, 유산 이후에 옷장 깊숙이 넣어놓고 꺼내보지 않은 아기물품을 담은 상자를 꺼냈다.

수술 전에 울면서 받아낸 초음파 사진의 마지막, 아기는 여전히 팔다리를 웅크리고 사진 속 그대로 남아있었다.

뱃속에서 아기의 심장이 멈췄던 그날부터 나도 매일 사라지고 싶던 순간들이 많았다.

그때마다 남편과 나를 응원해 주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아직은 안된다고 나를 다독이며 참았다.

참았다는 말 외엔 다른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참는 대신 손을 매일 피가 날 때까지 뜯었다.

아무래도 위험한 것 같다.

이대로는 안될걸 안다.

내가 괜찮아지고 싶어서 어떻게든 잊으려 발버둥 치며 지나온 시간들이 사실은 괜찮지 않은 채로 묻어두고 후에 더 큰 생채기를 남길 지 모르는 채.. 그렇게 지나왔던 거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그 시간들은 절대 괜찮아지지 않고 어떻게 해도 떠나보낼 수 없는 시간이라는 것도 이제 와서야 알았다.

이렇게 너무 늦게.




소파술 직후부터 수술 경과도 보러 가지 않고,

난 지금의 과정을 겪으면서도 아직도 산부인과를 한 번도 가지 않았었다.

나는 자격이 없으니까....

늦은 생리에 평소보다 더 많은 피의 양과 통증에도 당연한 과정이겠거니 했다.

당연히 자격 없는 내가 겪어야 할 일이겠지 하고 울며 담담하게 그 시간을 견뎌냈고 또다시 지나가는 시간이 되는 듯했다.

근데 이번일을 겪고 2주가 지난 어느 날 밤.. 갑자기 옷과 침대 시트가 흥건하게 젖을 정도로 왈칵, 피가 나왔다.

현기증도 심하고 생리라기엔 한 번에 꽤 많은 피의 양에 통증도 심해서 밤새 앓았다.

남편이 이번엔 정말 병원을 가보자고 했지만 무서워서 가지 않겠다 했고 피가 멈출 때까지 그저 참았다.

내 몸에 이상이 있을까 봐 걱정되는 게 아니라 산부인과에 가서 임산부들을 보는 게 두려워서...

내겐 직전의 임신이 지우지 못할 상처로 남은 건 분명했다.

아마 내가 갑자기 쓰러지거나 더 아프게 되어 누가 나를 병원에 끌고 가지 않는 한은 나는 임신이 아닌 상태로 제정신으로 산부인과는 절대 내 발로 가지 못할 걸 안다.




더 이상 임신에 집착하지 말아야겠다.

사실 나는 자신이 없다.

내가 더 망가지는 걸 보는 게 너무 고통스럽고,

내 밝은 빛이 아기의 심장이 멈췄을 때부터 꺼져버린걸 나도 안다.

그 빛은 다음 아기가 생기더라도, 내게 어떤 행복한 일이 생기더라도 빛은 다시 나타나지 않을 거란 걸 안다.

 더 이상 남들 앞에서 괜찮은 척 억지로 괜찮은 척 웃지도 않아야겠다.

곧 혼자 다시 여행을 떠나든 어디든 떠나야겠다.

그럼 그 어딘가에서는 살아가야 할 이유를 마주치지 않을까..

당장은 살고 싶지 않은 날들이 대부분이라 솔직히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혼자 사는 삶도 꽤 좋았고 나 혼자 나를 사랑하면서 잘 살아왔던 것 같은데,

아는 사람 하나 없이 혼자 낯선 타지로 이사와 살았던 1년 동안 남편을 만나 결혼도 하긴 했지만 그보다 더 큰 너무 괴로운 일이 많았다.

이렇게 괴로운걸 보니 이제 이곳도 떠날 때가 된 것 같다.

그동안 여기저기 살고 싶은 곳을 정해 이사를 다니면서 한 번씩 예전에 살았던 지역을 놀러 가곤 했는데,

이곳은 내가 떠나며 살아본 곳 중 제일 먼 곳이었고

그래서 더 외로운 시간이었다.

유독 다른 곳보다 이곳에서 일 년 동안 감당할 수 없는 힘든 일을 많이 겪었다.

이미 짧은 시간 상처를 너무 많이 겪은 터라 앞으로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도 괜찮아질 자신은 없다.

과연 시간이 약이 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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