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도는 내게 정말 힘들었던 해였다. 당시의 난 여러 힘든 상황들에 지쳐 충동적으로 연고도 없는 타지에 월세방을 구해 혼자 이사를 갔다. 고향에서 최대한 멀고, 아는 사람도 없고, 살면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으로떠나 기존의 내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충동적으로 여행을 떠났다가 문득 어느 한 곳의 강이 마음에 들어 직장도 구하고 이사를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당장 몇 개월 후에 결혼을 하게 될지도 몰랐고, 내 세상을 바꾼 사건이 일어나게 될 줄도 몰랐다.
지금의 남편과는 그 전의 연애와는 다르게 모든 게 순탄했다. 간호사인 나와 군인인 남편은 이 낯선 타지의 이방인들이었다. 처음 소개를 받아 만나게 됐을 때부터 우린 자연스럽게 결혼을 얘기했다. 우리 둘 다 오랜 타지생활을 혼자 해온지라 외로운 것도 컸고, 가족을 이루고 싶은 목표도 같았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대화가 잘 통해 헤어지기 아쉬운 마음에 24시간 카페를 찾아 초저녁에 만나 아침까지 얘기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우리는 자연스럽게 아기는 몇 명을 낳아야 한다는 식의 얘기를 했다. 어떻게 보면 첫 만남에 이상할 수도 있던 그 대화가 늘 외로운 삶을 살았던 우리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그렇게 몇 개월을 연애를 했고, 오래지 않아 서로의 부모님도 만나 인사도 했다. 정말 인연인 사람과는 결혼식장에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순식간에 결혼을 한다던데 그 말이 맞았다. 그리고 상견례를 하기 전, 우리에겐 정말 축복 같은 생명이 찾아온 걸알았다.
남편과 나는 정말 기뻤다. 처음 심장소리를 듣고, 작은 점 같았던 네가 팔과 다리가 생기고 점점 사람 같아지는 게 신기하고 벅찼다.
예정대로라면 올해 봄쯤에 하기로 했던 결혼식은 너의 존재를 알고 한참을 앞당겨 겨울에 치렀다. 남편과 내가 만난 지 불과 1년도 안 됐을 때였다.
넌 우리 가족 모두에게 축복이었다. 임신을 알았을 때부터 우리는 당연한 것처럼 혼인신고부터하고, 신혼집 물건들보다 먼저 너의 양말이며 배냇저고리.. 아기용품들을 샀다. 마치 기다렸던 것 마냥 모든 게 자연스러웠다.
그렇게 우리는 너를맞을 준비를 했다.
내내 외로웠던 우리의 삶에 선물처럼 찾아온 생명이었다.
아마 나는 너의 그 작지만 힘찼던 심장소리를,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거다.
너의 심장이 멈추기 전까지, 나는 정말 세상을 다 가진 듯했다. 네게 새싹이라는 태명을 붙이고는 네가 잘못될까 그 좋아하던 군것질도 끊고 싫어하는 두유며 채소만 먹으면서 일주일에 몇 번씩이나 심장소리를 들으러 병원을 가곤 했다.
네게 무리가 될까 잠깐 걷는 것도 처음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처럼 삐걱거리고 내 뱃속에 180 bpm의 심장이 뛰는 또 다른 생명이 있다는 생각에 항상 조심했다.
그런 소중한 너였는데 뭐가 그리 급했는지 넌 외로웠던 내게 가족을 만들어주고 안아보기도 전에 떠나버렸다.
힘찼던 네 심장은 어느 날 갑자기 멈춰버렸다.
웅크린 채 미동도 않던 너의 초음파사진을 붙잡고 몇 날 며칠을 울었다.
그날 이후, 나는 내내 자책하며 어둠 속을 걸었다.
'당연히 슬픈 사람'이 되어 늘 슬픔속에 몰입해 있었다.
널 떠나보낸 지 벌써 몇 달이지만 난 여전히 그 시간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널 떠올리면 마음이 너무 아프지만,
내게 선물같이 찾아왔던 너를 기억하고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기 위한, 너무 아프지만 내 생에 가장 행복했던 널 품은 지난날의 기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