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조금 더 행복하기
시골에서 임산부로 사는 건 여러모로 녹록지 않다.
병원도 멀고 근처에 마트도 없어 모든 게 불편하지만
지금의 나는 곧 엄마가 될 몸으로 뱃속의 아기와 이 시골의 계절을 함께 건너는 중이다.
예쁜 계절꽃들이 피어나고, 나무 그늘 아래로 햇살이 부서지는 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충만해진다.
이곳에서의 임신은 기다림이자 자연이 가르쳐 주는 가장 단순하고 확실한 삶의 속도다.
출산준비 말고는 매일 똑같고 별게 없는 일상이지만,
매일 자연 속에서 조금 더 행복하려 부단히도 노력했던 그간의 시골에서의 나의 기록들
우리 동네엔 작은 영화관이 있는데,
임신기간 내내 혼자서 종종 영화를 보러 자주 갔다.
아기가 태어나면 더 못 볼 거란 생각에 후기에 접어들어서는 한 달에 두세 번씩은 꼭 영화를 봤다.
시골이라 대체로 갈 때마다 혼자 영화를 본다.
평일 낮엔 전세 낸 듯 영화를 볼 수 있어서 혼자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기에 좋았다.
임신기간에 화천읍에 초음파를 보러 갈 때도 한 번씩 산천어시네마에 영화를 보러 가고, 토마토시네마에서도 보다 보니 쿠폰이 금방 다 차서 무료입장으로 출산 전 마지막 영화로 애니메이션도 봤다. 사실 공포영화나 스릴러를 보고 싶었는데, 자극적인 영화는 보면 안 될 것 같아서 잔잔한 영화만 찾아봤다.
시골의 영화관은 도시의 문화생활의 느낌을 낼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였다.
일주일에 다섯 권씩은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서 책도 읽었다.
작은 동네 도서관에 더 이상 읽을 게 없을 만큼 소설이든 에세이든 장르를 가리지 않고 많이 읽었다.
한 번씩 동네에서 장날이 열리면 매번 비슷한 걸 팔긴 하지만 어김없이 구경도 갔다.
규모는 작아도 시골 장날 특유의 정겨운 분위기가 참 좋다.
이 날은 피카추 돈가스나 핫도그로 조금의 일탈도 했다.
만삭으로 돌아다니니 어른들이 산달을 물으시며 여름이라 힘들겠다고 다독여주신다.
종종 동네 맛집들을 돌아다니면서 외식도 했다.
임신성 당뇨 이후에 식단조절 때문에 외식할 때면 현미밥, 오이를 싸들고 다니면서 먹어야 하고 튀김, 중식, 분식 등 못 먹는 음식도 많아
먹고 싶은걸 마음껏 먹지는 못했지만 한 번씩 일탈로 이런 외출과 외식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모른다.
식당에서 뭘 꼼지락거리며 접길래 봤더니 냅킨으로 예쁜 하트를 만들어주던 남편.
임당 기간 내내 남편은 든든한 조력자였다.
본인도 먹고 싶은 걸 참아가며 더운 날씨에 아랑곳 안
고 식후산책도 같이하고, 내가 먹을 수 있는 메뉴로만 함께 식사를 했다.
때문에 원래 마른 체질인 남편도 두 달 새에 3kg이나 빠지고, 나도 막달까지 임신 전보다 살이 빠진 상태이다.
평일 낮엔 종종 이웃의 친구의 강아지들도 보러 가고,
강아지 카페도 난생처음 가보면서 친구 덕분에 나름 행복한 태교도 했다.
출산 전, 더운 날씨에 충동적으로 전날 동네 미용실을 예약하고 확 짧게 레이어드컷으로 잘라버렸다.
길었던 머리를 자르는 건 조금 슬펐지만 아기가 태어나면 짧은 머리가 편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제 머리 손질을 할 시간도 없을 것 같아 머리를 자르며 파마까지 했다.
당분간은 못 볼 동네의 강아지와도 인사를 하고 왔다.
나만 보면 해맑게 웃으며 ( 강아지도 해맑게 웃는 줄은 이 강아지를 보고 알았다. ) 쪼르르 달려 나와 인사를 하는데 당분간 강아지를 못 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서 한참 쓰다듬어줬다.
오래 산책하는 게 힘들지만 식당가의 '토실이'도 보고 가고 싶어서 시골길을 걸어 언제나 밝은 토실이도 보고,
처음 보는 고양이도 마주쳤다.
사람을 좋아하는지 먼저 다가와 다리에 몸을 비빈다.
여기저기 길고양이들이 많은 터라 고양이 간식도 항상 들고 다녀서 간식을 주고 쓰다듬었더니 그 길로 주차장까지 꽤 먼 거리를 쫓아왔다.
출산을 앞두고 데려갈 순 없어 빠른 걸음으로 차에 오니 더 이상 따라오는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지만 자꾸만 눈에 밟혔다.
귀여운 동물들만큼이나 동네의 산책길에는 여유로운 풍경들이 늘 함께한다.
곳곳에 예쁜 계절 꽃들도 피어있고,
눈 돌리는 곳마다 싱그러운 풍경이 가득해서 열심히 사진에 담느라 바쁘다.
동네의 길가에 멈춰서 열심히 꽃사진을 찍는 사람을 본다면 아마 나일 거다.
날은 덥지만 더운 날씨 속에서도 예쁘게 빛나고 있는 이곳의 풍경이, 아마 오래 그리울 것 같다.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동네의 큰 축제인 올해 토마토축제도 어김없이 이틀 내내 구경을 갔다.
동네에서 바글바글한 사람을 구경하는 게 딱 축제시기 때뿐이라 축제구경을 간다기보다는 사람구경을 하러 갔다.
더운 날씨에도 낮부터 밤까지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물놀이를 할 수 있는 곳도 있고,
여기저기에 간식을 파는 곳도 많았다.
이것저것 구경하고 체험해 볼 수 있는 곳도 많다.
모처럼 활력 넘치는 거리와 들뜬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괜히 신나서 힘든 것도 잊고 땡볕에 몇 시간씩 열심히 구경하고 돌아다녔다.
축제가 끝난 뒤 이곳엔 다시 적막만 감돈다.
흐린 날씨에 비까지 내리니 더 스산한 것 같다.
벌써 시골에 산지도 2년, 못살겠다 울기만 하던 시골에서의 일상도 이제 어느 정도 적응이 된 것 같은데 출산 이후엔 곧 떠나야 한다니 괜스레 아쉬운 마음도 든다.
지나고 보면 지금의 기억들도 그리운 추억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