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캠 너머의 가족들

by 린꽃

남편은 보통 나와 아기를 홈캠으로만 만난다.
아기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쯤 남편이 타지에서 근무하기 시작하면서 주말부부를 하며 평일에는 보통 아기와 단둘이 생활하는데, 그 시간 동안 아기와 내가 아프거나 무슨 일이 생겨도 남편은 홈캠으로만 볼 뿐, 실질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따로 살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며칠간 이어진 고열을 버티다 못해 새벽에 너무 힘들다고, 집에 와달라고 전화를 한 적이 있다. 그때도 남편은 방 안의 홈캠과 거실의 홈캠을 분주하게 번갈아 보며 거실에 쓰러져 누워 있는 나와 방 안에서 자고 있는 아기를 확인만 했을 뿐, 끝내 오지 않았다.
거실에서 덜덜 떨며 약을 찾아 기어 다니던 내내 내 움직임을 쫓아 움직이기만 하는 홈캠이 그렇게 미워 보일 수가 없었다. 그 뒤로도 아기가 아프거나 뭔가 고장 난다거나 부득이하게 남편이 필요한 상황이 간간이 있었어도 늘 혼자 모든 걸 해결해야 했다.



처음엔 이런 상황들이 화도 나고 슬펐지만 요즘엔 체념의 과정을 거치며 점점 바라는 게 없어졌고, 그러다 보니 기대하는 것도 전혀 없어졌다.
남편을 따라온 낯선 화천에서, 이제는 아기와 단둘이 남겨진 이 상황이 처음엔 너무 힘들었는데 이제는 그런대로 익숙해져 가고 있다.
더 이상 남편이 필요한 상황에도 와줄 수 있냐 묻지 않고, 당연하게 모든 일을 나 혼자 해내려 노력한다.
가끔 아기를 재우고 난 밤에 이런 상황들이 너무 힘들어서 우울과 무력감에 사로잡혀 혼자 자주 울곤 했지만 아기에겐 내가 유일한 세상이고, 내가 아빠의 빈자리까지 채워야 했기에 언제까지나 나약하게 울고 있을 수도 없었다.
이런 현실이 괴롭긴 해도 앞으로도 무슨 일이 벌어지던 아기와 둘이서만 있어야 하는 상황에 나 혼자 해결을 하며 살 수 있는 연습을 하는 기간이라고 생각하면, 당장의 상황이 아주 나쁘지만은 않다고 스스로를 설득하게 된다.



남편과 하루 이틀에 한 번 정도 생존신고를 하듯 연락을 하면서 가끔 남편이 내게 먼저 전화를 걸 때는 홈캠이 버퍼링이 걸렸을 때나, 홈캠 시야 안에 내가 보이지 않을 때다.
아기는 자고 있던데 넌 어디 있냐, 홈캠 화면이 안 나오던데 건드린 게 아니냐는 말을 들을 때면
본인에게 아기와 나는 그저 화면 속에서 ‘정상 작동’하고 있는지만 확인하면 되는 존재인 것 같아 씁쓸해진다.
그도 그럴게 주말에 집에 와도 남편은 본인의 역할을 전혀 모르는 것 같다. 본인 볼일도 보고 헬스장에 운동도 하러 갔다가 자기 방에서 게임을 하다 밤늦게 거실 소파에서 잔다. 주말 남편의 계획엔 언제나 아기와 나는 없다.
항상 아기와 나, 단둘이 있는 홈캠 속에 본인이 함께 들어왔을 때를 한 번도 상상해 보지 않은 사람처럼, 아기 수유나 목욕, 그 밖의 모든 일과들을 남편은 아직까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요즘 아기가 이 앓이로 수유 거부를 하면서, 내가 그동안 버티고 버텨오던 어떤 끈이 끊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루 종일 칭얼거리던 아기를 겨우 재운 늦은 저녁에 종일 연락 한 통 없던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대뜸 화를 냈다.
아기가 며칠째 아무것도 안 먹고 울기만 하는데 걱정도 안 되냐고, 남 일이냐고, 난 병원 하나 없는 곳에서 아기랑 둘이 고립돼서 이 모든 걸 혼자 감당하고 있는데 왜 아무 신경도 쓰지 않느냐고.
미친 듯이 전화기에 대고 소리를 지르다 전화를 끊고, 휴대폰을 집어던진 뒤 바닥에 앉아 한참을 엉엉 울었다.
그러다 고개를 들었을 때, 내 시야에 들어온 건
내 쪽으로 방향을 틀고 말없이 나를 보고 있는 홈캠이었다.
내게 무슨 상황이 터졌을 때 직접적인 도움은 준 적 없지만 항상 나를 지켜보고는 있는 홈캠이 우리 가족에겐 유일하게 '가족'이란 이름 안에 속하게 하는 유일한 도구였다.



사실 누군가 와서 이 상황을 당장 바꿔주길 바라는 마음도 이제는 크지 않다.
그보다는 이 모든 시간을 내가 혼자 감당해야 하고 앞으로도 혼자라는 사실이 너무 선명하게 느껴져서 숨이 막힌다.
아기는 오늘도 하루 종일 먹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다 겨우 조금 먹다 말고 잠들고, 나는 한껏 지친 상태로 또 내일을 준비하며 쌓인 젖병을 씻고 자기 전 일과들을 마무리한다.
어둠이 찾아오면 홈캠은 빨간 적외선 불빛을 밝히며 여전히 켜져 있고, 한동안 홈캠의 불빛을 쳐다보다 핸드폰으로 홈캠어플을 켜서 화면 속에 보이는 나와 아기의 모습을 본다.
내가 보는 화면 속의 나는 늘 무표정하고 텅 빈 눈으로 외로워 보인다.
어둠 속에서 홀로 울고 있는 나도, 버티고 있는 나도 전부 기록되고 있을 텐데 정작 이 화면을 유일하게 바라보는 사람은 아무 일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이 집에서 내가 가장 자주 마주하는 어른은 남편이 아니라 카메라다.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않고, 울어도 다가오지 않는 존재.
그 앞에서 나는 오늘도 아기와 단둘이 버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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