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이 시작되자마자 화천에는 또다시 엄청난 눈이 내렸다.
2년 전 처음 화천살이를 시작했을 때도 이런 겨울이었는데, 눈만 오면 첩첩산중에 쌓인 높은 눈에 고립된 이곳의 삶에 적응하지 못하고 겨울만 되면 힘들어하곤 했다.
아는 사람도, 연고도 없는 이곳에서의 눈은 늘 고독과 외로움의 다른 이름처럼 느껴졌었다.
온 세상이 꽁꽁 얼어붙어 어디로도 나아갈 수 없게 만드는 풍경 앞에서, 자주 혼자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우울하곤 했다.
언제나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숨이 턱 막히고, 겨울만 되면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은 사람처럼 집 안에 틀어박혀 나오질 않았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많은 눈이 내린 아침, 익숙하게 현관에 놓인 제설 도구를 들고 바깥으로 향했다.
매년 해오던 일이지만 올해의 겨울은 딱 하나가 다르다. 방 안에 아기를 재워두고 나왔다는 사실이다.
한 손에는 제설 도구를, 다른 한 손에는 핸드폰을 쥔 채 수시로 화면 속 곤히 잠든 아기를 확인했다. 아기 한 번, 눈앞의 눈 한 번, 그렇게 시선을 번갈아 옮기다 보니 예전보다 눈을 치우는 데 훨씬 오랜 시간이 걸린다.
눈을 치우며 주변을 살피니 군복을 입고 출근 전에 하나둘 제설을 하러 나온 사람들의 얼굴이 모두 낯설다. 그동안 동네에 많은 사람들이 이사를 가고, 몇 집이 새로 이사를 오다 보니 이제는 이웃 중 처음 보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그래도 변하지 않은 게 있다면 군복 입은 사람들 사이에서 나만 여전히 잠옷 위에 패딩을 걸치고 눈을 쓸고 있다는 사실이다. 화천에 산 이후로 해마다 겨울만 되면 남편은 몇 달씩 길게 파견을 가 있었고, 이제는 남편이 타지에서 근무하며 아예 따로 살고 있으니 우리 집에는 여전히 나를 대신해 눈을 치워줄 사람이 없다.
내겐 너무 익숙한 일상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가족과 함께 돌아다니거나 남편이 대신 눈을 치우는 모습을 보면 괜히 마음 한쪽이 허전해지고 너무 부럽다.
한바탕 제설을 한 뒤엔 낮 동안 잠시 해가 떠 눈이 어느 정도 녹았길래 아기를 안고 혼자 바깥으로 나섰다.
집 앞 놀이터에 아무도 밟지 않은 채 소복이 쌓인 눈도 보고, 얼어붙은 집 옆 강가의 풍경도 바라보고, 사람을 봐도 피하지 않는 동네의 고양이들도 한참 구경했다. 겨울이면 늘 혼자 걸어야 했던 이 길을, 오늘은 아기와 함께 걷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온통 눈이 뒤덮인 풍경 속, 아기의 체온이 전해지는 품 안에서 자주 걸음을 멈췄다. 이곳에 아기와 함께인 이 순간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붙잡아두고 싶어서였다.
내 품에서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이 작은 존재가, 이 고요한 겨울 속에서 나를 가장 단단하게 붙잡아주는 유일한 존재라는 걸 그제야 실감했다.
예전 같았으면 이 고립감이 또다시 나를 잠식했을 텐데 이번 겨울의 눈은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여전히 차갑고 무겁지만 이제는 견뎌야 할 대상이라기보다 아기와 함께 차분히 건너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아기와 둘이 있는 겨울은 여전히 적막하고 외롭지만 이 겨울을 지나며 고독은 사라지지 않아도, 그 모양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화천에서의 외롭고 긴 겨울이 내게 남긴 것은 눈을 견디는 법이 아니라, 눈 속에서도 살아가는 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