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겨울엔 다정한 사람들이 있었다

화천에서의 마지막 겨울

by 린꽃

요즘엔 강원도의 지독한 한파에도 매일같이 아기와 둘이 외출을 한다.
살을 에는듯한 찬 바람이 불어오고, 숨을 내쉴 때마다 하얀 입김이 길게 번지는 날에도 우리는 어김없이 집을 나선다.

보통 내가 가는 곳은 30분 정도 운전을 해야 드문드문 보이는, 인근의 사람이 많지 않은 한적한 시골 카페나 예전부터 혼자 시간을 보내기 좋았던 조용한 공간들이다. 물론 아기와 둘이 외출을 하면 늘 정신이 없다. 운전하는 순간부터 뒷좌석의 아기 숨소리 하나에도 귀를 기울이며 긴장한 채 운전을 해 겨우 먼 길을 달려 카페에 도착하면, 아기 용품을 한가득 챙긴 묵직한 기저귀 가방을 메고 아기를 안고 카시트에 태웠다 내리고, 차 문을 여닫는 그 모든 순간이 분주하다.


때문에 외출하기 전부터 망설여질 때도 많지만, 서둘러 준비해 일단 밖으로 나오고 나면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낮 시간에 집 안에만 머물러 있으면 답답한지 집에서는 내내 칭얼거리던 아기도 카페에 나와 단둘이 앉아 있으면 금세 조용해진다. 창밖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카페에서는 사람들을 두리번거리며 구경하다가 따뜻한 실내 공기에 몸을 맡기듯 내 품에 기대어 잠이 들기도 한다.
아마 아기도 나를 닮아 밖으로 나가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출산하기 전까지 카페는 늘 혼자 가는 곳이었다.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거나, 가져간 책을 넘기거나 노트북을 열어 글을 쓰거나, 아무 말 없이 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시간을 흘려보내다 돌아오던, 여유롭지만 조금은 심심한 날들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같은 공간에서도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나는 양팔에 아기와 기저귀 가방을 들고 우왕좌왕 정신이 없는데 사장님들은 아기를 보자마자 너무 예쁘다고 해주시며 환하게 웃는다. 먼저 아기 이름을 묻고, 조심스레 안아도 되겠냐며 손을 내민다.

자주 가는 카페의 사장님은 손님이 오기 전까지 아기를 봐줄 테니 잠시라도 편하게 시간을 보내라며 아기를 안고 토닥이며 천천히 가게 안을 돌아다니기도 하셨다. 아기는 낯설지만 따뜻한 품에 안기자마자 세상모르게 잠이 들었다.

화천에 살던 2년 동안 자주 가던 카페의 사장님일 뿐, 그동안은 스몰토크 정도의 짧은 인사만 나누던 사이였는데 아기와 함께한 날은 달랐다. 사장님의 품 안에서 잠든 아기를 바라보며 우리는 사장님이 아기를 키우던 시절의 기억, 시간이 지나도 아기 때가 가장 그립다는 이야기들을 얘기했다.
집에서 아기와 단둘이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사람과의 대화가 그리워졌던 내게, 그 모든 순간들이 너무도 소중했다.

처음 가는 카페에서도 비슷한 일이 반복된다. 나는 늘 카페에 가기 전부터 아기의자가 있는지, 케어키즈존인지, 노키즈존은 아닌지, 다른 아기 엄마의 방문 후기가 있는지까지 검색을 하고 나서야 갈 채비를 한다. 아기의자도, 아기와 함께한 후기가 없어도 너무 가보고 싶은 곳에서는 카페 안에 사람이 많지 않은지 확인한 후에 아기를 데리고 들어가곤 한다. 하지만 내 걱정이 무색하게 막상 들어가 보면 생각보다 많은 공간에서 사람들이 아기를 반겨준다.

아직 낯을 가리지 않는 아기는 처음 보는 사람의 품에서도 방긋방긋 웃고, 내 품에 안겨있을 때도 옆 테이블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보며 웃는다. 아기가 카페에서 까르르 웃을 때 아기의 시선을 따라가 보면 아기를 보며 눈을 맞추고 환하게 웃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항상 아기 표정만 살피며 긴장하고 있던 나는 아기를 바라보며 웃어주는 사람들의 얼굴과 마주 보며 웃는 아기의 표정을 보며 조금씩 긴장을 푼다. 세상이 아주 차갑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걸 이런 순간들에서 배우고, 이 시간들이 하나씩 쌓여 내겐 큰 용기가 된다. 아기와 함께 어디든 나설 수 있다는 작은 확신,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 그리고 오늘 하루도 괜찮았다고 말해주는 다정한 눈빛들.



오 개월 전 아기와 처음 둘이 남겨졌을 땐 혼자 막막하기도 했던 시골의 겨울이었지만, 아기와 함께하는 생활은 생각보다 잘 흘러왔다. 서툴렀지만 어찌어찌 하루를 넘기고, 그렇게 몇 달을 무사히 건너왔다.

아기와 단둘이 울고 웃으며 보냈던 이 겨울이 언젠가는 조금 그리워질지도 모르겠다. 이유 모르는 울음을 달래며 잠을 재우기 위해 아기를 안고 몇 번이나 집 안을 서성이던 밤도, 눈 덮인 길을 유모차 대신 아기를 안고 조심히 걸어야 했던 낮도, 도망치듯 나온 바깥세상에서 누군가의 품에서 평온하게 잠든 아기를 바라보며 조용히 숨을 고르던 순간도.


겨울 시골에서, 아기와 나는 그렇게 이 계절을 지나며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
겨울이 지나도 여전히 아기와 나 둘 뿐이겠지만 앞으로 아기와 함께할 미래가 예전보다 덜 두렵다.
이 겨울이 끝나고 따뜻한 봄이 와도, 아기와 단둘이 함께한 겨울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
눈이 내리던 날의 고요함과 카페 창가에 앉아 아기의 숨소리를 듣던 오후를, 세상 밖에서 만난 친절에 행복했던 시간들을.
아기와 나, 둘이서도 충분했던 화천에서의 마지막 겨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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