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 그 지독한 꼬리표에 대해서
낯선 타지살이의 이면
나는 내가 외로움에 최적화되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혼자 여행을 가고 혼자 살고 싶은 지역으로 이사를 다니며 살아보는 삶이 이미 오래전부터 익숙해져 있었다.
타지에서 나는 철저한 이방인이었고 모든 곳에서 적당히 잘 섞여서 그때 그때 알게 되는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다 떠나올 땐 원래 없던 사람인 양 내 모든 흔적을 지우고 그들과의 관계를 끊었다.
모순적이게도 혼자 살아가긴 했지만 어느 곳을 가든 항상 연애는 하고 있었고
누군가와 헤어져도 그 공백기가 늘 길지 않았다.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에 20대 초반의 연애들에서는 상처도 많이 받고 끝없이 좌절에 빠지기도 했다.
그래도 항상 누군가를 만났다.
상처를 받더라도 당장의 외로움이 더 무서웠다.
‘연인’이라는 관계 속에서 나는 한없이 불안했지만 그래도 내가 완전히 혼자는 아닌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어떤 안도감이 들었다.
어쩌면 나는 외로움이 너무 두려워서 항상 누군가의 사랑을 갈구했던 것 같다.
항상 날 따라다니는 외로움이 익숙했지만 그 존재가 조금이라도 고개를 들 때면 어떻게든 지우려 술을 마시거나 지금은 기억도 안나는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일 년 전 날 지독하게 괴롭혔던 장기연애를 끝내고 집에서 제일 먼 곳으로 도망치듯 떠나온 타지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고 지금은 집에서 더 먼 곳으로,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으로 이사를 왔다.
이 모든 일이 너무 속전속결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나는 지금도 모든 순간이 꿈이 아닐까?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자고 나면 이 꿈에서 깰까 봐 두렵다.
신혼집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꾸미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라는 남편 덕에 내가 좋아하는 게 뭘까 생각해 볼 시간도 있었고 좋아하던 글도 마음껏 쓸 수 있는 시간도 늘었지만 이전부터 나를 괴롭혔던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은 꼬리표처럼 나를 쫓아다녔다.
아니, 결혼을 하고 그제야 외로움은 날 잊지 말라는 듯 존재를 내비치기 시작했다.
내가 사는 곳은 사람도 없고 하다못해 편의점이나 작은 읍내도 차를 타고 꽤 나가야 한다.
내 또래인 사람도 없을뿐더러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 있는 카페도 근처에 없다.
그저 외로움뿐인 시골에서 숨 쉴 곳이 없다.
그나마 이 시골이 푸르러질 계절이라 낮이면 돗자리를 들고나가 나무 밑에 누워있거나 개울가에 앉아 시간을 보내다 보면 잠시 행복하긴 하지만 밤이면 정적뿐인 이곳의 어둠이 두렵다.
최근에 남편은 바빠서 집에 며칠씩 들어오지 못하거나, 주말이면 하루종일 근무를 하러 나간다.
아침에 일어나 눈을 떠도 혼자, 잠들 때도 혼자, 다음날 늦은 아침이면 남편이 들어오긴 하지만 쓰러지듯 잠든다. 그럼 그날 하루도 난 혼자다.
혼자 시간을 보내다 보면 내가 말을 하는 법을 잊을 것 같다.
괜히 한 번씩 잠긴 목소리를 내보며 내 목소리가 아직 유효하다는 걸, 내게도 낼 목소리가 있다는 걸 다시금 상기한다.
여기가 내 집인데, 나는 집에서 끝없이 외롭다.
집에 가고 싶다.
결혼을 하고 세 시간 넘게 운전해야 하는 친정집이 너무 멀어서 한 번도 가질 못했다.
오랜 친구들과도 너무 멀어져 만나지 못했다.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여전히 타지를 떠돌며 일하고 있었더라면 내 삶은 이렇게 외롭지 않지 않았을까.
지금 이 시간에도 누군가를 만나거나, 일을 하거나, 내가 좋아하는 예쁜 카페를 찾아가 혼자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텐데.
괜히 내가 선택하지 않았으면 여전히 혼자 살고 있을 삶을 그리워한다.
이런 생각들에 빠져 있다 보면 외로움은 또다시 고개를 든다.
텅 빈 집에 홀로 앉아 그저 허공을 바라보다 보면 어느새 외로움이 내 곁에 앉는다.
이제는 외로움의 존재를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어쩌면 나는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외로움과 친해지고 싶었던 걸지도-
외로움이 익숙했지만 그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려 발버둥 쳤던 것 같다.
그럼 내가 정말 외로워질 것 같아서.
앞으로의 시골살이는 외로움과 어떻게 친해지느냐의 문제일 것 같다.
싸워서 이긴다라고 하기에는 외로움의 연속인 이곳에서 나는 앞으로 외로움과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