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참 연습 중인 것들이 있다.
-많은 생각을 하지 않기
-타인의 행동에 의미를 두지 않기 = 상처받지 않기
-힘을 빼고 살기
내 mbti가 INFJ라서 그런 건지
현대 사회에서 mbti가 유행하기 시작했을 땐 난 정말 mbti의 수혜자였다.
힘들 이유가 없는데 늘 힘들고 모든 게 어려운 나를 항상 이해하지 못해서 발버둥 쳤었는데
희귀한 INFJ가 보편적으로 나와 같은 이런 심오한 어려움을 겪는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부터 나는 나를 제삼자의 입장에서 대하려고 했다.
그러고 나니 내가 나를 대하는 게 조금은 편했다.
INFJ는 모든 유형 중 제일 이해하기 힘들고 미스터리하다고 했는데, 지금도 나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니 그건 맞는 말인 것 같다.
오래전부터 왜 나는 늘 이렇게 불안하고 긴장된 상태인 건지 몰라서 늘 혼란스럽고 힘들어했었다.
그래서 오래전엔 이런 답답한 마음을 나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하고 표출할 길이 없어서 글을 쓰거나 내게 상처를 남기는 방법을 택했었다.
그래서인지 난 꼬마였던 시절부터 죽음에 몰두해 있었고,
좀 더 커서는 한 달에 한 번씩 혼자 여행을 가는 방법으로 풀었다.
혼자 떠난 여행지에서 글을 쓰거나 책을 몇 권 가져가 읽는다거나 호텔에서 하루종일 누워 바다를 바라보는 것 외에 달리 뭘 하진 않았지만, 사실 별 걸 하지 않아도 행복했다.
내가 온전히 쉴 수 있는, 르네블루바이워커힐
나도 나를 이해 못 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렴 상관없었다. 나는 지금도 나를 잘 모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나를 모를 수밖에 없다.
다만 내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남들 하는 것처럼 공부도 하고, 남들 하는 것처럼 적당한 때에 적당한 사람을 만나서 결혼을 하고, 주변에 적당히 사람들을 남겨두는 정도로 관계들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쯤은 알았다.
그래서 지금까지 그렇게 살았다.
그렇게 살면서도 "언제든 떠날 수 있다"라는 전제 하에 내 주변의 모든 것에 정을 붙이지 않았다.
늘 항상 언제든 정리하고 처분할 수 있게 준비를 해 두고 살았다.
사람들 사이에 적당히 숨어들어 있는 듯 없는 듯, 과하지도-그렇다고 모자라지도 않게 그저 당연한 부품처럼 살다가 금방 잊힐 존재, 난 항상 그렇게 살고 싶었다.
항상 사람들과 어울리고 그중에 친한 사람도 많았지만 떠나올 때마다 모든 인연을 끊고 새로운 관계들을 맺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게 초등학교 때 졸업하면 제일 연락이 안 될 것 같은 사람 투표 같은 걸 한 적이 있었는데 그게 나였다.
(지금생각하면 그런 투표를 왜 했었나 싶다)
그리고 역시나 초등학교 때 함께 놀았던 그 누구도 기억나지 않고 연락을 하지 않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개명을 했기 때문도 있겠지만 누군가와 놀았던 기억은 있는데 그 누구의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
졸업하고 2-3년쯤 후인가 길을 걷던 중에 누군가 마주쳤는데 멀리서부터 웃으면서 내게 다가왔다.
낯선 사람은 사이비일까 봐(?) 경계하는지라 애써 무시하고 지나가는데 내 옛날 이름을 반갑게 불렀다.
알고 보니 초등학교시절 반장이었는데 난 걔가 누군지 몰라서 다시 생각해 내는데 꽤 오래 걸렸다. 형식적으로 요즘은 뭐 하고 지내냐 묻다가 헤어지고 나서는 또다시 금세 그 아이를 잊었던 게 생각난다.
근데 그 아이의 동생이 내 동생과 제일 친한 친구여서 본의 아니게 본가에 가면 가끔씩 동생에게 걔의 소식을 듣는다. 그 애의 동생은 결혼을 서울의 무슨 호텔에서 했고, 결혼식에 누구누구도 왔고, 그 애는 무슨 공부 중이라고 신나게 얘기하는 동생에게 그때마다 "근데, 걔 이름이 뭐였다고? "하면서 물어놓고는 다시 금방 다시 잊는다.
성인이 되자마자 독립해서 혼자 살면서 이사도 자주 다녔다.
20살이 되면서부터 항상 연고도 없는 타지에서 자취를 하면서 살았기 때문에-근데 어느 곳에서든 오래, 그곳의 일원으로 살아가진 않았다. 2년 전세계약도 내겐 너무 긴 시간이었기에 어느 지역에서든 비싸도 월세계약으로 1년씩 돌아가면서 살았었다. 아마 지역별로 살면서 이벤트들을 쓰기만 해도 책 한 권씩은 쓸 수 있을 거다.
그런 연유로 혼자인 삶에는 충분히 적응해 있었다.
결혼 전 마지막으로 살았던 곳도 평생을 여행도 와 본 적이 없는 곳이었는데,
이전의 긴 연애를 끝내고 충동적으로 함께 가지 않은 곳 중에 제일 먼 곳을 떠올리다 오게 된 곳이었다.
내가 타지에서 살겠다 선택하는 이유는 항상 근처에 바다&강이 있는가 정도면 충분했다.
이곳은 바다도 한 시간 반이면 가고, 지금 살고 있는 집은 강 바로 옆에 있다.
순전히 오분정도 걸어가면 나오는 강 때문에, 지금 사는 집이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연고도 없는 지역에 와 어찌어찌 남편도 만나 두 달 전엔 결혼도 했지만 현재 집의 남은 계약기간 때문에 아직 나는 혼자 살고 있는데,
이렇게 혼자 있는 시간이 나는 여전히 너무 좋다.
아마 지금 남편과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다음엔 바다 옆으로 이사를 갔을 거다.
그 와중에 다행인 건지, 이사를 자주 다녀야 하는 사람과 결혼을 했는데, 한 곳에 오래 살기 싫어하는 내겐 최고의 반려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정이 없는 날에는 아침부터 술을 마시면서 책을 읽다가 밤에는 베란다 문을 열어두고 클래식을 잔잔하게 켜 둔 채로 강릉에서 사 온 자개모빌이 부딪히는 소리를 들으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여행 에세이를 쌓아놓고는 술을 마실 때마다 가볍게 몇 장씩 읽는다.
그럼 멀리 떠나지 못할 때도 여행 와있는 기분이어서 행복하다.
요즘엔 힘을 빼고 깊게 생각하지 않는 연습을 하고 있다.
내가 힘을 빼는 연습을 하면서 에너지를 채우는 이유는
내가 이사 가는 신혼집이 읍내와도 떨어진- 정말 산으로 둘러싸인 곳인데,
남편은 본인 일도 바빠서 내가 혼자서도 잘 지내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자꾸만 강조한다.
지금까지도 혼자 잘 살았고 난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해서 도시보다 시골을 좋아하는 사람인데 왜 자꾸 혼자가 어려울 거라고 하는 건지 잘 이해되지 않는다.
나는 진작에 이사 후의 계획을 세웠다.
그곳에서 차근차근 다시 글을 쓰려고 한다.
내 삶의 챕터별로 풀어낼 얘기가 많다는 걸, 오래전부터 그 이야기를 언젠가는 풀게 될 거라는 걸 알았다.
당연하다. 인풋이 방대하니 아웃풋은 더 많을 수밖에 없다. 언젠가 쓰게 될 거란 건 알았지만 시도하기엔 글에만 전념해야 하는 에너지와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는 핑계로 미뤄왔다.
그리고 정말 진심으로 내가 나를 마주할 수 있을 때 써야겠다고 늘 생각해 왔다.
학창 시절에 글을 쓰기만 하면 상을 타와서 상들을 쌓아놓을 정도였는데 그러다 보니 언제부턴가 글에 진심은 없이 기교만 들어갔다.
기교만 들어가기 시작하니 더 이상 상을 받지 않았다.
그리고 나조차도 글을 쓸 때 "이렇게 쓰면 상을 받겠지? 다른 사람이 보면 내 글은 이렇겠지?" 하면서 순전히 글을 쓰는 게 좋아 쓰던 때와는 다르게 오직 상을 위한 글들을 썼던 것 같다.
그런 나를 인지하고부터는 대학교에 진학함과 동시에 아예 글을 쓰지 않았다.
언젠가 내가 정말 진심으로 글을 쓸 수 있을 때, 날 위한 글을 쓸 수 있을 때 써야겠다 다짐했었다.
이제 곧 그 글을 써야 할 때구나, 산속으로의 이사가 결정되고 집이 채워지면서 직감했다.
시작하면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마음이 아플까 봐 묻어두고 돌아온 내 과거를, 이제는 다시 꺼내보고 정말 위로해 줄 때가 된 것 같다.
아니, 적어도 정리를 해야 할 것 같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진 모르겠지만
곧 시작하기까지도 많은 생각들을 정리하고, 오롯이 집중해서 내 지난 시간들을 되짚어보는 과정들을 지나고 나면 다시 앞으로의 나의 삶을 잘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신혼집엔 방이 세 개라서 안방 외에 남편과 내가 각자 쓸 방을 만들었는데, 남편이 내방을 본인 방보다 더 큰 방으로 양보했다. 내 방은 볕이 잘 들어 겨울에도 밝고 따뜻하다. 은은한 분홍색 커튼과 내 방에 놓을 테이블과 편한 의자, 생각할 때 앉아있을 흔들의자와 밑에 깔아 둘 러그를 직접 매장에서 한참을 골라보고 샀다.
신혼 물품 중 제일 신경을 쓴 게 내 방에 채워질 물품이다.
그곳에서의 내가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게, 나는 미리 힘을 빼고 에너지를 비축하고 있다.
나는 앞으로의 시간들이, 내가 마주하게 될 나의 이야기들이 정말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