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

우울과 함께 살아가는 삶

by 린꽃

그동안 끝없는 우울 속에 심취해 있으면서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에 대해 몰두해 있었다.
우울한 이유? 딱히 이유는 없다.
이미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유 모를 우울과 함께 살고 있다.
우울과 적당히 거리를 두면서 동고동락하는 방법을 이제 어느 정 익혔다.
우울은 부정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 날 괴롭게 할 뿐이라는 건 진작에 깨달았다.
마음은 늘 우울해도 누구보다 잘 웃고 사람들 앞에선 항상 밝은 얼굴인데 그건 내가 타인을 대할 때 늘 장착하는 가면이고 페르소나이다.
우울한 사람이 마냥 우울해 보이면 다른 사람들도 힘들다.
난 내 우울이 남편을 포함한 누구에게도 전염되길 원하진 않는다.
우울은 그 무엇보다 전염력이 매우 강하다.
서서히 스며들어 결국 치명적인 상처와 흉터를 남기고 결국엔 잠식되어 버린다.



사람들이 보면 나는 보편적으로 행복해 보이고 두 달 전엔 결혼도 했다.
결혼=행복은 절대 필수 불가결한 뜻임은 분명하지만 난 결혼을 해도 행복하진 않다.
남편이 바빠서인 것도 있고 우리는 각자의 삶이 너무 바쁘고 힘들다.
그렇다고 남편이 나를 신경 써주면 행복할 것 같냐 묻는다면 그건 더 아니다.
내 우울은 너무 깊어서 평소의 난 우울 속을 헤엄치다가 달에 한 번씩 잠깐 물밖로 호흡하러 나왔다가-
(그래서 혼자 여행을 가든 근교로 바람을 쐬러 간다.
나한테 오롯이 혼자 집중할 시간이 필요하다.)
또다시 우울 속에 깊이, 더 깊이 잠식되고 만다.
그래서 나 혼자 내가 더 깊은 우울에 빠지기 전에 페이스 조절을 해야 한다. "아-이쯤 되면 위험한데? 다시 숨 쉴 곳을 찾아야 해!"
그래서 늘 그렇게 혼자 여행을 떠났었고 남편도 연애하면서 달에 한 번씩 2-3일씩 여기저기 혼자 여행 다니는 날 이해해 줬다.
그리고 여행지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책을 읽었다.
그 짧은 시간이 지나면 나는 다시 자연스럽게 우울에 스며들었다.
그래도 그렇게 힘들진 않았다.

이렇게 살다 보면 달에 한 번쯤은 내가 살아야 할 이유를 마주치게 될 테니까.
요즘엔 차라리 우울 속에 있는 게 안정감이 들 때도 많다.
잠깐 행복을 느끼려나 싶으면 금세 찾아올 우울이 그렇게 두렵고 아플 수가 없다.


오늘은 여행을 가거나 멀리 떠나지 않았음에도 그 이유를 마주했다.
가까운 지인이 결혼선물이라며 22년도에 담근 과실주를 선물해 줬다.
나는 이 선물을 받아 들고 이 글씨를 봤을 때 울컥했다.
생각해보니 난 지금까지 누군가의 시간이 담긴 선물을 받아 본 적이 없다.

이 마음이 너무 소중하고 따뜻해서 집에 와서 이 술을 마시면서 오랜만에 한참을 울었다.
소중하게 선물 안에 시간을 담았을 지인의 마음이 느껴져서 한 방울 한 방울이 너무너무 소중했다.
그 와중에 술을 마시면서 '나도 앞으로 선물을 하려면 과실주를 담가야겠다.. 이렇게 감동적인 선물이구나..'

하면서 과실주 키트를 찾아봤다.
하필 오늘이 유독 힘든 날이었는데 어떻게 내가 이렇게 힘들 줄 알고 딱 맞춰 내게 이런 선물을 줬을까.. 하고 종교도 없고 믿는 것도 없지만 뭔가 설명할 수 없는 강력한 의미들이 나를 살게 하는 건 아닐까 싶었다.
꼭 삶을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이런 소소한 의미들이 생겼다. 그래서 오늘도 살아볼까 싶었다.


따뜻하고 평화로웠던, 사랑할 수 밖에 없던 그 날의 바람.

불과 두 달 전에 나는 괌이었다.

문득 이 따뜻한 바람이 그리워지는 밤이다.

여기서 이렇게 바다를 그냥 바라보고 있을 때마다 그래도 살다 보면 이런 풍경을 한 번은 더 마주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 이 바다를 보면서 남편과 다음엔 태교여행으로 꼭 다시 오자 약속했다.

지독한 우울과 함께 살면서 원래 미래에 대한 약속은 잘하지 않는 편인데 이 약속은 지키고 싶다.

혹시나 내가 행복할 수도 있을 미래에 다시 꼭 기억하고 싶은 풍경과 바람과 시간이었다.




제목의 폴 발레리의 시 "해변의 묘지"에 있는 이 문구를 나는 늘 생각해 왔다.

이 구절에서 시인이 말하는 바람은 변화의 바람이다.

갑작스럽게 시작된 변화는 적응할 시간을 주지 않고 몰아치고, 힘든 상황의 연속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한다는 뜻을, 왜 구태여 힘든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난 오랫동안 생각해 왔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힘든데도 왜 이렇게 계속 살아가고 있나 늘 의문을 가졌었다.

오늘 지인을 만나고 집에 오는 내내 이 구절이 떠올랐다.




내게 불어온 오늘의 바람은 살아보라는 바람이었다.

오래 생각해 온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하는 이유"를 마주한 날이었다.

살다 보면 이렇게 따뜻한 날들도 있으니 삶이 마냥 힘들지 않을 거라는 위로였다.

내 삶에 숱한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난 갈대처럼 흔들리고 흔들리다 못해 여기저기 부딪혀 망신창이가 되었다.

항상 무방비하게 작은 바람에도 휩쓸리다 결국 지쳐 어디로 가는지도 모를 곳으로 휩쓸리던 내게

오늘 뜻하지 않게 불어온 바람은 그래도 조금 더 살아보라 말한다.

바람이 마냥 아픈 바람만 있지는 않다고,

내가 행복했던 시간 속에 마주했던 괌의 따뜻한 바람처럼 날 살게 하는 바람도 있다고. 그렇게 말해 주는 것 같아 마음 한편이 따뜻해진다.

내일도, 모레도, 장담할 수 없는 미래도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갔으면 좋겠다.

우울과 함께하는 삶도 이미 오래전부터 받아들였으니

내 삶을 통째로 흔드는 비바람 속에서도 한 번쯤 따뜻한 바람이 불어올 날도 있다는 걸,

내가 항상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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