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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꽃 Aug 30. 2024

날 살게 한 그때의 너에게

내 삶에 빛이 되어준 사람


예전에 정말 죽어버리겠다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죽기 위해 별의별 노력을 해도 죽지 않았던 시기였다.
내겐 세상에서 동떨어져 오직 죽기 위한 나날을 보냈던 시기가 있었다.
별 다른 이유는 없었고 지독한 사춘기를 겪었던 건지 그때의 나는 그냥 내가 너무 힘들었다.
고작 내 나이 열다섯이었다.
내 주변의 상황은 전혀 나쁠 게 없었지만 당시의 나는 자꾸 내 안의 어둠으로 파고들었다.
이대로 사는 것도 고통스러울 거라 생각했고 내가 일찍 죽는 게 모두에게 좋은 일일 거라 생각해서 나는 어린 나를 자꾸 다치게 만들었다.
학교도 잘 가지 않았고 가끔 학교를 가서도 아무도 모르게 나가 화장실에 하루종일 숨어있곤 했다.
그때마다 늘 나를 찾으러 다녔던 친구가 있었다.
이미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 그 친구와 어떻게 친해졌는지도 희미하지만 그 애는 내가 없어지면 항상 나를 찾아 학교를 헤맸다.
늘 죽으려고 하는 내가 무섭지도 않은지 날 먼저 찾고, 내 곁에 있어줬다.
 
 

맞다, 너는 내가 무섭지 않다고 했다.
내가 너의 친군데 왜 무섭냐 했다.
늘 나를 먼저 걱정해 줬다.
눈물도 많고 마음도 누구보다 더 여린 친군데,
내 앞에선 항상 강했다.
제일 힘든 시기에 나타난 그 친구는 내 삶 속에 빛이었다.
늘 어둠만 가득했던 내 삶에 한줄기 빛으로 등장해 이내 내 세상의 모든 불을 밝혔다.
어둠 속에 파고들려는 나를 자꾸 끄집어 내 다른 사람들과도 어울리게 했고 그 친구의 노력 덕분에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나는 다른 친구들의 앞에서 어둠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어울렸다.
내게도 다른 세상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때도 그 친구는 여전히 내 뒤에 한 발자국 뒤에서 나를 늘 응원해 줬다
내가 힘들어하면 어느샌가 내 바로 앞에 나타나 내게 위로를 해 주고 항상 내 편에 서 있었다.
대학교에 진학하고, 각자 다른 직장을 가지고, 나는 먼 타지로 이사를 가면서 우리의 삶은 참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그 친구는 늘 그 자리에서 항상 나를 응원해 줬다.
내가 우울한 날엔 귀신같이 먼저 알고 뭐 하냐고 물어주고, 먼저 안부를 물어줬다.
내게 너는 시간이 지날수록 감사하고 소중한 친구였다.
 
 

내 결혼식, 신부대기실에서 우리의 사진

 


연락하는 중학교 동창이라곤 그 친구밖에 없어 내 결혼식에 그 친구는 혼자 와서 자리를 지켰다.
눈물이 날까 봐 친구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결혼식에 와 날 처음 봤을 때부터 친구는 내내 울고 있었다.
그 눈물의 의미를 알기 때문에 너의 눈을 똑바로 마주치면 나 또한 눈물이 터져 걷잡을 수 없을 거란 걸 알았다.
그렇게 우리 둘 다 촉촉해진 눈을 하고 웃으며 신부대기실에서 사진을 찍었다.
우리가 흘리는 눈물이 처음 슬프지 않고 흘리는 눈물이었다.


엄마는 내 결혼식에 내내 싱글벙글 웃다가 그 친구가 결혼식이 끝나고 이제 내려간다고 엄마에게 인사를 하러 왔을 때 친구의 얼굴을 보고 처음 눈물을 흘렸다.
'네가 내 옆에 있어줘서 내가 이렇게 잘 자랄 수 있었다, 네 덕이다, 고맙다'라고.
친구와 엄마는 같이 울었다.
나도 결혼식이 끝나고 친구에게 연락해서 고맙다고.. 네가 아니었으면 나는 지금껏 살아있지 못했을 거라 했다. 그 말을 하는데 울컥했다.
감정이 치밀어 결혼식을 다 마치고 나서야 그날 제일 많이 울었다.
눈물은 꽤 오래 멈추질 않았다.
그 말이 맞았다.
그 친구는 열다섯에 죽어버렸을지도 모를 어린 내게 미래를 만들어줬다.
내가 아니라, 그 친구가 날 지금까지 살게 만들었다.
지금도 한 번씩 어둠이 치밀어올라 죽고 싶다 생각이 들 때면 그때 그 친구가 나를 찾아 화장실 문을 두드리다 구석의 잠긴 문을 보고 라디에이터에 올라 구석에 웅크린 나를 바라보며


‘너 여기 있지? 같이 나가자.. 이제 그만 나와 내가 있잖아..’


하던 잔상이 떠오른다.
내가 용기를 내 화장실 문을 열었을 때 그 친구는 늘 말없이 울며 날 안아줬다.
또 내가 날 다치게 하진 않았는지 나를 살피면서.
그 친구의 행동에는 대가가 없었다.
내 가족도 포기했던 당시의 나를 대가 없이 진심으로 걱정했다.
 

오늘도 나는 여전히, 그 친구가 선물해 준 하루들 중의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 친구가 만들어 준 삶이 이어지기 시작할 때는 내게 가족이 생길 줄도 몰랐는데, 나는 어느덧 결혼을 해 내가 꿈꾸지 못한 미래를 살아가고 있다.
 


나는 계속 살아갈 거야,
네가 내게 선물해 준 이 시간들을 소중히 생각하면서.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
네가 선물해 준 시간들이 헛되지 않게, 정말 행복하게 살게.
 


그때의 어린 날 살게 해 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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