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은 올챙이
시골 산책길에 마주한 자연의 섭리
강원도 끝자락의 우리 동네는 읍내와도 떨어진 첩첩산중의 시골이라 산책길에도 자연 속에 다양한 생물들이 함께한다.
나는 보통 산책을 할 때 바닥을 보며 다닌다.
꽃구경을 하는 것도 있지만 산책하며
밟혀 죽은 생물들을 많이 보는 탓에
'나의 사소한 발걸음에 그 작은 생명들이 으스러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지나가는 개미를 밟거나 달팽이를 밟을까 봐 노심초사하며 바닥을 보며 걷는다.
시원한 물소리가 들리고 푸른 자연이 함께 하는,
이곳에 있는 것 만으로 평안을 찾게 하는 나의 산책길,
며칠간 한바탕 비가 많이 온 뒤 어느 날,
오랜만에 집 근처 둑길 옆을 산책하다 물가 옆의 도로 옆 고인 물에 올챙이가 엄청 많이 있는 걸 봤다.
아직 뒷다리도 나오지 않은 작은 올챙이들.
폭우로 불어난 물살에 아마 길을 잃은 개구리가 비가 많이 오던 날 어디가 물인지 분간하지 못하고 적당히 물웅덩이가 많은 곳에 알을 낳은 건가 싶었다.
올챙이들을 보다가 바로 옆에 흐르는 물가를 바라보는데 올챙이가 개구리였더라도 물가까지 가기엔 너무 멀었다.
바로 다음날부터는 며칠 화창한 날이 지속된다 하여 그대로 뒀다간 다리도 없는 올챙이들이 말라죽을게 분명했다.
산책을 하다 말고 고민했다.
'올챙이들을 물가로 옮겨줄까?
아무래도 죽을 것 같은데.'
하지만 편하게 집 앞 산책을 나온 내겐 도구도 뭣도 없었고,
나는 개구리와 올챙이의 물컹한 촉감을 너무 싫어해서 만지는 건 불가능했다.
한참을 망설이다 불편한 마음으로 다시 가던 길을 가는데 길가에 버려진 플라스틱 커피컵이 보였다.
컵을 집어 들고 다시 아까의 올챙이들이 있던 곳으로 향했다.
엄청난 수의 올챙이를 옮겨주진 못하더라도
내가 올챙이를 본 이상
몇 마리라도 옮겨주어야 그나마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컵 안으로 들어오는 올챙이 몇 마리를 떠서 바로 옆의 물로 옮겨줬다.
그 순간에도 컵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수많은 올챙이가 자꾸만 눈에 밟혔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거기까지였다.
그다음부턴 올챙이들의 운명이고 자연의 섭리였다.
다음날부터의 쨍쨍한 날씨가 마음에 걸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음날에도 와봐야겠다, 하고 저녁 즈음 찾았을 때 하루 종일 내리쬐는 폭염에 물은 가물어 있었고 올챙이들이 말라죽은 흔적 정도만 남아있었고,
한 이틀 폭염이 지속되다 다시 비가 오던 며칠이 지나고 찾았을 땐 다시 물은 고여있었지만 올챙이의 형태조차 없었다.
고작 며칠 새에 텅 빈 웅덩이를 보며
하필 그날, 왜 올챙이들을 봐서는 며칠간 이렇게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하나 싶었다.
나는 올챙이를 봤던 그 순간부터 하루에도 몇 번씩 그때로 돌아가 남은 올챙이들을 물가로 더 옮겨주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다.
물웅덩이가 잠시 고인 물인 줄 몰랐던 개구리의 실수로 개구리가 될 수 있었던 수많은 올챙이들의 삶이 그렇게 사그라들어버렸다.
자연은 무섭게도 개구리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았다.
올챙이가 며칠 만에 사라진 걸 보고 난 후 내가 사랑하는 자연이 너무 무섭게 느껴졌다.
마치 소리 없이 거대한 심판자 같았다.
올챙이에겐 선택지가 없었는데.
강까지 향할 다리가 없었고, 너무 약한 존재일 뿐이었는데 자연에겐 약한 존재를 배려할 작은 아량도 없었다.
밤중에 창을 넘어 개구리 소리가 들린다.
어쩐지 그 소리가 자연 앞에 무력한 개구리들의 울음소리인 것 같아 오늘 밤은 조금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