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통을 쓰고 싶지 않다.
고통의 한가운데에서 나를 지키기 위해
몇 달간의 나는 고통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고통이 너무 커서 미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한순간 정신을 놓으면 미쳐버릴 딱 그 시점에서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아등바등 버텨왔다.
유산 이후에 나는 몇 달간 반쯤 넋을 놓고 살았다.
사람들 앞에선 괜찮은 척도 하고 나름대로 괜찮다고 할 수 있을 모습이었지만 마음속엔 커다란 구멍이 뚫린 채였다.
간간이 글을 쓰고 시골에 살며 산책도 하면서 괜찮아지려 노력하긴 했지만 커다란 구멍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내 모든 걸 집어삼켜버렸고
불면증은 갈수록 심해져 겨우 잠들었을 때 꿈속에선 늘 날 쫓는 무언가에 시달리다 깼다.
오래전부터 개운하게 일어나 본 적이 없다.
교대 근무를 하지 않으면, 내가 조금 더 부지런하게 살면, 좋아하는 책들도 많이 읽다 보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악몽은 더 심해졌다.
이상했다. 나는 괜찮아져야 하는데 괜찮아지려 할수록 괜찮아지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고통 속에 있는 상태를 체념하고 받아들여 지옥 속을 유영하는 상태에 머물렀다.
차라리 그 편이 편했다.
아, 언제는 내가 행복을 알았던가-
생각해 보면 나는 행복을 느껴본 적이 없었기에 고통 안에 머물 때 편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나는 대체로 글을 쓸 때 고통을 썼다.
그게 날 더 고통으로 빠트리는 길인 걸 알았지만 폭발할 것 같은 감정을 터놓을 곳이 필요해 다른 방법이 없었다.
대체로 사람들은 고통에 열광한다.
내 블로그가 유산이나 우울과 관련된 글들을 특히 많은 사람들이 보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더 슬펐다.
나의 아픔과 상처는 누군가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위로가 될 테지만 어떤 사람에겐 그 위로가 저 사람보단 내가 낫다는 마음의 '저 사람'을 내가 담당할 뿐이라는 걸 나도 알고 있었으니까.
나는 반복된 유산으로 오직 임신을 위해 직업도 포기하고 내 인생에 가장 큰 도박을 걸었지만 여전히 아직도 임신하지 않은 상태이고
점점 임신에 대한 집착과 스트레스가 커져 손은 피가 날 때까지 뜯고 대부분의 시간을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특히 고통이 깊어질 때는 누군가의 임신 소식이나 SNS에 꽤 자주 뜨는 아기들의 사진을 봤을 때,
그때마다 느끼는 절망이나 슬픔의 감정들은
글로 쓰는 것도 힘들 만큼 너무도 괴로웠다.
그저 피가 날 때까지 입술을 뜯고 손을 뜯으면서 버텼다.
죽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버텼다.
최근의 나는 끝을 알 수 없는 고통 속으로 내달리는 중이었다.
사실 7월은 내가 제일 힘든 달이었다.
임신이 유지되었더라면 내가 출산을 했어야 하는 달이었고
유독 7월에 누군가의 출산 소식을 많이 접했다.
그래서 더 괴로웠다.
내가 어쩔 수 없이 들어야 할 누군가의 임신 소식에 괴로워했다.
일면식도 없는 유튜브의 누군가가 올린 아기 모습을 보고 밤새워 울었다.
내게 고통의 트리거는 유산, 오랜 우울이다.
이제 정말 잊고 싶지만 잊을 수 없는 고통인 걸 알아서 속수무책으로 늘 고통스러워했다.
그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브런치에 유산에 대한 과정들을 연재하면서 마음이 더 힘들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유산에 관한 글을 쓸 때마다 고통 속으로 내 발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나는 더 이상 고통받고 싶지 않다.
고통을 쓰고 싶지 않다.
고통은 쓸수록 나를 더 괴롭게 하고 망가뜨린다.
잊고 싶지만 잊지 못하는 기억을 굳이 끄집어내기보단 내가 잠시라도 묻어두길 원한다.
고통을 벗어나 행복이 있을 거라 생각하진 않지만
꼭 행복하지 않더라도 나는 한순간이라도 평온한 삶을 살고 싶다.
난 더 이상 날 고통에 빠트리는 글을 쓰지 않을 거다.
내가 써오던 유산에 관한 글을 유산에 대한 과거에 나에 대한 원망과 후회가 아닌 앞으로의 준비와 내일을 향해 가는 앞으로의 발걸음으로 쓰려고 한다.
난 그저 내가 어떤 식으로든 과거의 일에 사로잡혀 더 이상 고통받지 않길 원한다.
이제야 7월이 지났다.
올해는 유독 길고 괴로운 7월이었다.
8월에 접어드니 어쩐지 마음 한편에 큰 돌덩이 하나가 빠진 기분이다.
더 이상 고통을 쓰지 말아야겠다-
다짐해 놓고 얼마 못 가 또다시 고통을 쓸 나일걸 알지만 나는 항상 고통을 쓰면서도 쓰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그 자체만으로도 고통스러웠던 7월이 지났으니 덜 고통스럽길 바란다.
나는 아직 조금 더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