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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꽃 Aug 08. 2024

트라우마를 극복하면 그만이라는 오만

상처의 무게

얼마 전에 내 생일이었다.

행복만 가득해야 할 생일이었지만,

이번 생일은 내겐 제일 슬픈 생일이었다.

그날 너무 슬퍼서 울었고 밤새워 술을 마시면서 술에 취해 잠들길 바랐다.



내가 내 생일에 운 이유는 다름 아닌 내 생일 케이크 때문이었다.
남편이 인근 도시에서 유명한 빵집의 케이크가 궁금하다 해서 내 생일 전날 약속이 있어 도시로 나가는 김에 사 오겠다 했는데,
그날 갑자기 직장에서 연락이 와서 케이크는 못 사고 바로 올라왔었다.
다음날 내 생일에 그 도시에 꽃이랑 케이크도 사고 모처럼 힐링하고 오자며 길을 나섰는데
남편이 그 빵집의 케이크가 꼭 먹고 싶다는 거다.
절대 그 빵집 근처는 가기 싫어서
마침 받은 기프티콘도 있었고 남편에게 이번 생일은 그냥 프랜차이즈 케이크를 먹자고 설득했는데 예전부터 궁금했던지라 이번엔 꼭 그걸 먹어야 한단다.
워낙 즉흥적이고 본인이 하겠다고 생각한 건 꼭 하고 마는 성격인 남편의 고집은 웬만해선 꺾기 힘들단 걸 알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함께 그 빵집으로 향했다.



내가 그 빵집을 가기 싫어한 건
그 빵집의 바로 옆 건물이 그 지역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큰 산부인과가 있는 곳인데
내가 몇 달 전 유산했을 당시에 믿기지 않아 지역의 산부인과들을 다 돌아다니며 제발 초음파 한번 봐달라고,
진짜 아기 심장이 멈춘 거냐고,
울며 돌아다닌 곳 중의 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남편과 타 지역에 따로 살고 있어 부랴부랴 내 연락을 받고 반차를 써서 남편이 도착했을 땐 이미 나 혼자 여러 병원들에서 아기가 잘못된 게 맞다고, 최대한 빨리 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을 재차 듣고 온 후였다.
나는 그 순간에도 믿기지 않아
이미 심장이 멈춘 작은 아기 초음파 사진을 붙들고 분명 지난번 보다도 자랐고, 어떻게 팔과 다리가 있는데 잘못됐다고 하냐고,
다시 한번만 봐달라고, 그럴 리가 없다고..
수백 번 애원하며 눈물바람으로 자꾸 병원들에서 잘못됐다고만 한다고, 다른 지역의 병원을 또 가보겠다 떼를 썼다.
그때의 기억은 내게 시간이 지나도 고통, 그 자체였다.



멀리서부터 그 빵집과 가까워질수록
그때의 기억들이 떠올라 숨통이 조여왔다.
호흡곤란이 오고 눈물이 차올라 끅끅 소리 내며 그저 울었다.
유산 이후로 밤낮 가리지 않고 종종 혼자 우는 나를 보는
남편은 내 눈물이 조금 지겨운 듯 내게 별게 다 트라우마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너 말대로라면 그 도시에 있는 산부인과 주변 가게들은 다 가면 안 되겠다고 말하면서.
몇 달이 지났는데 왜 아직도 그 시간에 매어있냐면서.
그 순간에 남편이 정말 미웠다.
그날, 혼자 울며 제정신도 아닌 상태로 운전해서 시내의 병원을 다 돌아다닌 내 심정은 왜 이해를 안 해주는 건지.
돌아다닌 병원들에서 자꾸만 아기 사진을 주지 않아서,
그 병원에서도 초음파 사진을 안 준다길래 제발 한 장만 달라고 애원해서 한 장 받아와서는 병원 주차장에서 내가 심장이 멈춘 아기 사진을 안고 얼마나 울었는지도 모르면서.
그날도 뒤늦게 와 놓고서는 내가 혼자 감당했던 일이 별것도 아닌 일처럼 얘기하는 남편이 너무 밉고 싫었다.
꼭 내 생일날 그 빵집에 기어코 갔어야 했는지도 아무리 이해해 보려 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남편이라는 사람이,
같이 그 일을 겪었으면서,
내가 그때 남편이 오기 전에 혼자 그 병원에 갔었다고 몇 번이나 얘기를 했고 그 근처에 가는 게 무섭다고 얘기까지 했는데  
그 작은 부분 하나 배려해 주는 게 그렇게 어려운 건가 싶었다.
남편에겐 이제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별게 다 트라우마'인 일일지라도
내겐 너무 깊은 상처로 자리 잡은 트라우마라 나는 유산 이후로 그곳 근처에 가지 않으려고 하고, 그곳에 지나가게 되더라도 의식적으로 그곳은 쳐다보지 않으려 노력했는데 그 모든 게 제일 가까운 사람 때문에 한순간에 무너져 버린 것 같았다.
그 후로 몇 달을 죄책감과 싸우며 한순간 내가 나를 포기해 버릴까 봐 죽지 않기 위해 버텨왔는데
결국에 내 트라우마는 케이크보다 별게 아닌 일이었다.



트라우마,
라는 이름으로 내 마음속에 새겨진 상처들이 이런 상황들과 마주칠 때면 여전히 마음을 후벼 판다.
나는 여전히 두렵다.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이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서 그 상황을 다시 들춰야 하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도 모르면서 직면해야 괜찮아질 거라는 강요도 싫고,
시간이 지나 괜찮아질 일인지는 결국 당사자의 몫인데 트라우마를 꼭 극복해야 한다는 어쭙잖은 위로들도 듣고 싶지 않다.
유산은 교통사고 같은 거였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사고.
내가 원치 않은 일에 기약 없는 고통 속을 헤매는 심정을 어떻게 알까,
아마 본인이 겪어보면 아무런 위로도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 텐데.
겪어보지 않은 일에 대해서 본인들의 방식으로 함부로 위로랍시고 하는 말들이 내겐 더 큰 상처가 될 때가 많았다.
겪어보지 않은 자들의 섣부른 위로와 충고는 듣는 자에겐 위선일 뿐이다.
직접 겪어보지 않았으면 내 트라우마를 '극복' 하고 '이겨내야 할 상처' 정도로 함부로 명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트라우마에 극복이라는 단어가 따라오는 걸 나는 이해할 수 없다.
나처럼 괜찮은 척, 다 극복한 척, 가면을 쓰고 어찌어찌 숨기고 살아갈 순 있겠지만 절대 극복할 순 없다.
내 트라우마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래야 괜찮아진다는 둥, 인생에 이런 고난은 한 번씩 오는 거라는 둥 폭풍이 온 후엔 해가 뜰 거라는 둥 뻔한 얘기는 너무 지겹게 들었고 이젠 다 싫다.



나는 더 이상 고통은 겪고 싶지 않다.
나는 고통을 원한 적도,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살고 싶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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