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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꽃 Nov 14. 2024

내가 포기해야 할 것들

내겐 너무 어려운 임신

이번달도 괜한 기대는 하지 말라는 듯 어김없이 야속한 생리는 시작되었다.
허탈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던 것도 잠시, 나는 곧장 한의원에 전화를 걸어 한약을 주문했다. 오픈 시간이 되자마자 전화를 걸어 긴 통화연결 끝에 연결이 되자마자 ‘잠시만요-’ 라는 말과 함께 얼마전의 나처럼 오픈런을 해서 그 곳에 대기하러 온 사람에게 대기시간 한시간 이상이라는 말을 건네고서야 내 전화를 받았다. 묵묵하게 기다리던 나는 숱하게 전화를 받았을 수화기 너머 상대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 궁금한게 많아도 꾹 참고 계좌번호와 약 도착일만 묻고 끊었다.
직원은 무미건조한 말투로 짤막하게 답을 해줬다.
아무렴 상관 없었다. 차가운 그 대답이라도 내겐 간절했으니까.
 
 
 
한약 복용시의 금기 식품은 술, 담배, 커피, 돼지고기( 정 먹고싶으면 살코기 조금은 가능하다고 했다.) , 닭고기, 맵고 짠 자극적인 음식, 인스턴트 식품과 밀가루 음식이다.
생각보다 제약이 너무 많았다.
다른건 몰라도 빵을 좋아하고 커피를 좋아하는 내겐 너무 슬픈 말이었지만 그래도 나름 잘 참아냈다. 처음엔 디카페인 커피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했다가, 의사 선생님의 커피 향도 맡지 말라는 말이 생각나 마시지 않았다.
다른 건 몰라도 커피에 금단현상이 생길 줄은 몰랐다.
오랜 병원 생활을 하면서 근무내내 커피를 달고 살던 게 습관으로 굳어진지 오래다.
그 습관이 지금의 결과를 만들었겠지, 생각하면서 커피 한모금이 간절할 때마다 이를 악물고 참았다.
그래도 참기 힘들때면 남편이 마실 때 향을 잠깐 맡고 한입 머금고 뱉었다.
 
 
 
한약이 도착하기 전 어느날 밤이었다.
한동안 식단도 잘 지키고 잘 참고있었는데 갑자기 삼겹살이 너무 먹고싶었다.
이제 막 잠이 들려고 하는 남편에게 삼겹살이 너무 먹고싶다고 했다.
한약이 오면 먹지 못할텐데, 마지막으로 삼겹살 먹는게 소원이라고.
삼겹살에 소주 딱 한잔만 하면 더 이상 소원이 없을 것 같다는 내 말에 남편은 다음날 내가 좋아하는 삼겹살집을 데려가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기분은 좋았지만 슬펐다.
‘마지막이니까’ 라는 전제가 붙어서 더 괴로웠다.
그게 뭐든 마지막은 언제나 힘든 것 같다.
 
 
 
다음날 저녁엔 퇴근한 남편과 삼겹살집에서 딱 2인분을 주문해 먹고왔다.
소주한잔이 간절했지만 참았다.
늘 둘이서도 삼인분은 거뜬했던 우린데 고작 몇 점 집어먹고 죄책감 때문에 먹지 못했다.
약을 먹기 시작하면 아예 먹지 못할테니 하나 더 먹어보라는 남편의 말에도 끝내 넘어가질 않았다.
불판을 보는데 참담한 기분만 느껴졌다.
‘이렇게 다 포기하고, 다 참고, 내가 좋아하던 일상을 포기했는데도 생기지 않으면 어쩌지?’
라는 생각에 눈물이 앞을 가렸다.
고기를 먹다말고 우는 나를 보는 남편은 덤덤하게 또 우냐며 휴지를 건넨다.
나도 내가 흘리는 눈물이 익숙하고,
남편도 우는 나를 보는게 익숙해졌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 깊은 슬픔에 익숙해져야할지, 이 참담함 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 같아서 불판 앞에서 이미 다 젖은 티슈로 눈물을 찍어내기에 바빴다.
마지막 삼겹살은 무슨 맛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한약이 올 날이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조바심만 났다.
어느순간부터는 내 목표가 아닌 목표를 좇고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나는 내가 어디까지 더 포기를 해야할지 모르겠다.
포기하다못해 내가 나를 포기하게 될 것 같아 무섭다.
교대근무가 임신에 좋지 않다기에 나의 직업도 포기했고, 커피며 빵이며 내가 좋아하던 것들도 포기했고,

내 모든 삶을 맞추려고 노력해도 되지 않는 일이 임신이었다.
과거의 내가 너무 원망스러웠다.
조금 더 일찍 일을 관둘걸, 조금 더 빨리 병원에 갈걸.
내가 바꿀 수 있는 상황은 아무것도 없는데도 그랬다.
이 상태로 앞으로의 내가 한약을 먹는다고 해도

그 전보다 더 나을거란 확신도 없다.
요즘은 매일 같이 가위에 눌린다.
유산 이후부터 꽤 오랜시간 잠을 잘 못잤다.
매번 악몽을 꿔서 자도자도 피곤하다.
울면서 일어날 때도 많고 잘때도 긴장을 해 온 몸에 힘을 준 탓에 자고 일어나면 쥐가 날 때도 많다.
간신히 잠들어도 새벽마다 무언가에 쫓기는 꿈을 꾸며 끙끙거리며 괴로워하는 탓에 남편이 나를 깨우는 빈도가 늘었다.
나는 이미 너무 지쳤다.
오랫동안 잠들고 싶다.
다시 일어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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