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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린꽃 Nov 07. 2024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이별

산책 중 마주친 그리움의 순간


햇살이 참 예쁘던 날, 오랜만에 동네 산책을 나섰다.
한낮에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도 좋고 가을 하늘이 눈부시게 예뻐서 떨어진 낙엽마저도 한 폭의 그림처럼 빛나던 날이었다.



노란빛으로 물든 은행나무도 보였고,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들도 꽤 많았다.
이제 만연하게 다가온 겨울을 실감하며 산책을 이어갔다.
산책을 갈 때면 동네의 강아지들을 늘 보러 가는 나라서 어김없이 곳곳의 동네 강아지들 앞에 멈춰 서는 강아지들에게 안부를 물으며 한참을 곁에 머물러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내 뒤에서

 '예쁘죠? 애들이 참 얌전하고 예뻐요,
  자기 예뻐해 주는지 얘들도 알아요. '

하고 함박웃음을 지은 아주머니가 내 옆으로 다가오시며 강아지들이 언제부터 여기 있었는지, 나보다 더 오랜 시간 강아지를 봐오며 생긴 에피소드에 대해서 얘기를 해주셨다.

 


이 강아지들을 일 년을 봐오면서 나도 몰랐는데,
얼굴이 하얀 강아지가 할머니고 노란 강아지가 손자라고 했다.
강아지들에 대해 얘기를 나누며 나는 철창 사이로 뻗은 강아지의 손을 연신 쓰다듬었다.
철창으로 잔뜩 기대오며 우리의 얘기를 듣는 듯 강아지도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아주머니께서 내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간식을 주면 얼굴이 노란 강아지가 하얀 강아지에게 양보하고 남은 걸 먹는다고, 얼마나 똑똑하고 착한지에 대해서 이야기하시다가 이내 키우던 강아지 얘기를 꺼내신다.



'나도 강아지를 키웠어요, 얘들보다는 작은 하얀 강아지였는데 정말 예쁘고 똑똑했어요.
지금은 죽었는데, 아직도 걔가 꿈에 나타나서 종종 울어요. '


아주머니는 강아지의 얘기를 시작하면서 조금은 슬픈 눈으로 내 곁에 기대어있는 강아지를 쳐다보며 다음 말을 이어갔다.

' 걔가 얼마나 똑똑했냐면, 내가 울기라도 하면 내 무릎에 이렇게 손을 올리고 그냥 쳐다봤어요.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서요.
걔는 내가 기쁘고 슬픈 걸 늘 알았어요.
마지막까지 대소변도 엄청 잘 가렸어요. 나이가 너무 많이 들어서 걷기도 힘들어했는데 한 번도 아무 데나 용변을 보는 일이 없었어요. 걔가 그렇게 똑똑했어요...  '


강아지의 얘기를 하는 아주머니의 눈에는 금세 눈물이 고였다.
툭, 건들면 눈물이 떨어질 것 같은 벌게진 눈에는 강아지에 대한 그리움이 담겨있었다.
순간 울컥해서 나도 눈물이 흐를 것 같아 서둘러 시선을 피해 내 손을 꼭 잡은 채 졸고 있던 강아지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강아지가 떠난 지 얼마나 되었는지 물었다.
벌써 십몇 년은 더 됐다는 말을 뒤로하고 아주머니는 급하게 손으로 얼굴을 닦으셨다.
십몇 년도 더 되었는데 지금도 너무 선명하다고,
아직도 그 애가 집에 들어서면 반기고 있을 것 같다고.
동네 강아지들을 보면 너무 예쁘고 키우고 싶은데
자신은 더 이상 강아지가 떠나는 걸 보는 게 너무 힘들어서 다시 키우진 못하겠다고 하셨다.
떠난 강아지를 딱 한 번이라도 더 보면 소원이 없을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그리운 마음에 이렇게 동네 강아지들을 그저 보고 다닌다는 아주머니의 말끝에 슬픔이 가득했다.



한참 강아지에 대한 말을 털어놓던 아주머니는
이제 먼저 간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어느새 철창 사이로 코를 내밀고 가만히 있는 강아지의 콧잔등을 톡 한번 만지고는 쓸쓸하게 떠나셨다.
어쩐지 먹먹한 마음에 바로 일어나지 못하고 강아지를 쓰다듬다 슬픈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어떤 이별은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다.
함께 한 모든 순간이 선물이었던 존재와의 만남은 더욱 그렇다.
행복했던 그 기억들이 사랑했던 존재를 잊지 않게 만들어주긴 하지만
그 존재를 계속 기억하면서 만들어지는 텅 빈 마음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나도 지난 유산 이후 마음속에 크게 자리 잡은 텅 빈 마음을 안고 사는데,
아주머니도 텅 빈 마음속 그리움의 공간을 아직 메우지 못한 듯해 보였다.
어쩌면 아주머니나 나나 그 공간에 다른 무엇도 채우지 못한 채 평생 빈 공간으로 남겨두게 될 것 같았다.



오늘의 아주머니의 애달프던 마음을 보며 살며 먼저 떠나보낸 누군가를 그리워할 공간 하나쯤 누구나 갖고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내게는 숱한 이별을 겪으며 점점 커지기만 하던 그 공간이 늘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 내 마음속에서 그 공간을 지우려 발버둥 쳤는데,
이제는 날 괴롭게 했던 공간을 잊지 않고 기억 속 한편에 남겨두려고 한다.
최소한 기억하는 자의 추억 속에서, 사랑하는 이의 존재는 언제나 함께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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